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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학기 첫 날, 우리는 서클로 만나요.

회복의 교실, 존재로 만나는 시간

어느새 새학기가 시작되는 날이 되었다.


새학기가 시작되는 날에는 아이들처럼 교사도 긴장과 떨림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평온하고 안정되어 있는 듯한 모습으로 아이들 앞에 서있지만 사실 교사도 새로운 아이들과의 만남과 변화를 맞이하는 것이 두렵다. 일주일간 잠을 설치는 분, 새학기 전 날 뜬 눈으로 밤을 새고 등교하는 분, 며칠 전부터 입맛이 없어지는 분 등 증상은 다양하다.


나는 주로 새학기 전 날 뜬 눈으로 밤을 새고 등교하는 쪽에 속했다. 초임 교사가 되어 1학년을 맡게 되던 날에도 잠을 자지 못했고, 처음으로 6학년을 맡게 된 후 긴장과 걱정에 밤을 새고 출근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지만, 그만큼 교사도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학생으로 학교를 다닐 때에는 선생님은 너무나 걱정 없어 보이셨다. 새학기 친구 걱정, 공부 걱정에 나만 걱정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새학기는 교사, 아이들, 부모님들 모두에게 큰 변화이고 모두에게 심리적인 부담이 되는 시기인 것 같다.


전날 밤 긴장은 되었지만 편안한 찬양을 틀고 잠에 들었다. 6시가 되고 알람이 울리자 눈이 떠졌다.


'드디어 이 하루가 시작이 되었구나. 이 하루 잘 흘러가겠지?'


물을 마시고 책상에 앉아 마음을 정화하는 글을 한편 쓰고 등교 준비를 시작한다. 월요일 출근 길에는 다들 마음이 바쁜지 차들도 빠르게 지나간다. 초보를 갓 벗어난 운전 실력으로 마음을 진정시키며 학교로 향한다. 교실에 있는 층에 올라가니 학년 선생님들께서 이른 시간에 모두 출근을 하셨다. 다들 나와 같은 마음이셨나보다 생각하며 교실 자리에 앉아 하루를 위해, 아이들을 위해 기도 후 첫 날 수업 준비를 시작한다.


등교 시간이 되기도 전, 한 아이가 문을 스르륵 열고 들어온다. 쭈뼛쭈뼛 긴장된 모습으로 교실로 들어와 자신의 자리를 찾는다.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아이의 이름을 묻는다. 아이와 인사를 나누고 나니 신기하게도 분주하고 긴장되었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안심이 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 아이, 한 아이 들어와 우리가 함께할 교실을 채우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내게 와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고 자리로 들어간다. 크지 않은 학교이기에 이미 서로를 잘 알고 있는 아이들은 인사를 하며 활발한 에너지로 아침 시간을 채운다.


교실에 아이들이 모두 도착한 후 우리는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하며 마음 챙김의 시간을 갖는다. 설레고, 긴장되고, 분주했던 마음들을 느리게 호흡하며 잠시 진정시킨다. 눈을 뜨고 칠판에 붙여져 있는 다양한 감정 카드를 응시한다. 처음 짝꿍이 된 옆자리 친구에게 질문한다.


"오늘은 네 기분이 어때?"


아이들이 질문에 다양한 감정들이 들려온다.


"나는 오늘 설렜어."

"나는 오늘 기분이 좋았어."

"나는 오늘 즐거웠어."

"나는 오늘 그냥 그랬어."


짝꿍이 감정을 이야기하면 옆에 친구는 그 마음을 읽어주며 공감을 해준다.


"아, 오늘 너의 기분이 설렜구나."


이렇게 서로가 연결되는 시간을 가지며 첫 시작을 여는 것이다. 선생님에게도 질문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선생님 오늘 기분이 어때요?"


밝고 귀여운 목소리로 나의 기분을 물어주는 아이들. 어디서 이렇게 사랑스러운 존재들의 관심을 듬뿍 받을 수 있을까. 내가 교사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순간들이다.


"오늘 선생님은 긴장되고 떨렸어요. 하지만 여러분의 빛나는 눈빛을 보니 설레고 기쁜 감정이 생겨나고 있어요."


나의 말 끝에서 아이들의 표정도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한다. 나에 대한 소개를 하기 전 아이들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회복의 교실에 대한 믿음을 나눈다. 아래 신념은 <서클로 나아가기> 책에 소개되는 회복적 교육의 5가지 믿음이다.

'회복을 위한 우리의 믿음'

                           모든 사람의 내면에는 선하고 지혜롭고 강한 자아가 있다.

                           우리는 깊이 연결되어 있다.

                           모든 사람은 좋은 관계에 대한 깊은 갈망이 있다.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우리는 진정한 자아로 살아가기 위한 연습이 필요하다.



"선생님은 우리의 내면에 선하고 지혜롭고 강한 자아가 있다고 믿어요. 그리고 우리는 깊이 연결되어 있죠. 서로 떨어져 개인으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우리는 사실 연결되어 있어요. 서로의 감정과 에너지를 서로 공유하고 있죠. 그래서 누군가 아프고 고통스러울 때 우리는 그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어요. 타인의 감정과 연결되지 않고 단절되다면 그것 또한 고통이 되죠. 그래서 우리는 함께 행복하고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또한 함께 슬퍼하고 아파하게 될 수 있어요. 우리가 그 시간을 함께 하게 될거에요. 그리고 선생님은 모든 사람은 좋은 관계에 대한 깊은 갈망이 있다고 믿어요.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어요. 다만 그 방법을 모를 뿐이죠. 그래서 우리는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친구들을 위해 함께 그 방법을 고민하고 나누고 실천해갈거에요. 그리고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여러분이 되고 싶은 모습이 있을거에요. 나는 올해 이렇게 살아가고 싶어다는 소망. 우리 모두 그 내면의 소리를 가지고 있죠. 하지만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해요. 우리 회복의 교실이 그 안전한 공동체가 되어 여러분이 충분히 연습해갈 수 있도록 도울거에요."


이해가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를 눈을 반짝이며 듣는 아이들. 앞으로의 시간들이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가 함께 해갈 것이기에. 우리의 내면에는 선하고 지혜로운 자아가 있기에. 그 믿음을 가지고 걸어가보는 것이다.


'선생님 나이는 몇 살이에요?'

'무슨 음식 좋아해요?'

'취미는 뭐에요?'


이제 아이들 다운 질문을 쏟아낸다. 내가 대답을 해주고 싶은 질문에만 대답을 해준 후 오늘의 중요한 순서인 첫 만남 공동체 서클을 시작한다. 아이들에게 책상을 뒤로 밀고 둥글게 앉아 달라고 부탁한다. 가운데에 센터피스로 우리의 시작을 알리는 공간을 꾸민 후 이미지 카드와 토킹 피스를 준비한다. 그 주변에는 서클의 약속인 서클의 주춧돌과 서클에 대한 소개의 글을 배치한다. 우리는 센터피스를 중심으로 둥글게 둘러 앉고 호흡을 하며 서클을 준비한다.


서클은 자기 자신과 타인을 환대함을 통해 참여자들이 친밀하게 연결되도록 돕는 구조화된 의사 소통이다.

_케이 프라니스


"서클을 시작 하기 전, 여러분을 마음을 모으는 침묵으로 초대하겠습니다. 서클에서는 침묵을 오히려 환영하고,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시간으로 사용합니다. 침묵을 하시면서 천천히 호흡에만 집중을 해주시면 됩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내면을 돌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서클을 위한 준비


그리고 함께 준비한 시를 통해 공간을 열어간다.


서클에 함께한 사람들은

둥글게 앉아 그들의 이야기,

가치, 꿈을 함께 나누고

 

뭇 생명들의 일치를

만들어 내며

한 사람도 버려지지 않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소망과

 

마침내 하나로 결합된

우주적 지혜를 만들어 갑니다.

_서클의 꿈


자신의 목소리로 돌아가며 시를 함께 읽고 시의 이야기 중에서 자신의 마음에 와닿는 문장에 머무른다. 나누고 싶다면 서클 안에서 나누어도 된다.


"저는 마침내 하나로 결합된 우주적 지혜를 만들어간다는 말이 마음에 남아요."

"저는 서클에 함께한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 꿈을 나눈다는 문장이 좋아요."

"뭇 생명들의 일치를 만들어 내며... 여기서 뭇이 뭐에요?"


시 하나로 아이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서클의 약속인 주춧돌을 함께 읽어간다. 첫 서클에서는 학급에서 서클의 주춧돌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서클의 주춧돌

깊이 있게 듣습니다.       

가슴으로 말합니다.    

사적이야기를 보호합니다.   

침묵도 서클의 한 일원임을 압니다. 서클에서 침묵이 흐를 경우 어색해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호기심으로 질문합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목소리가 서클에서 들릴 때 호기심으로 질문하며 듣습니다.


"토킹피스는 우리 모든 사람의 목소리가 중요하며, 한 사람이나 권위자에게 이야기가 집중되지 않고 모두가 동등한 힘을 갖는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 토킹피스를 가진 사람만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은 집중할 수 있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 학급에서 토킹피스를 선택하여 의미를 함께 나누고 사용합니다. 오늘은 우리 서클의 상징인 벌새 인형을 토킹피스로 사용하도록 할게요."


체크인, 여는 질문으로 자신의 오늘 감정을 이미지 카드를 활용해서 나눈다.


"여러분 오늘 감정이 어떤지 사진 카드를 활용해서 이야기를 해볼거에요. 센터피스 주변에 놓여있는 사진 중에서 나의 오늘의 기분과 어울리는 사진을 선택해서 이야기를 해볼게요. 먼저 마음으로 사진에 잠시 머물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시간을 갖고 살펴본 후 마음에 와닿는 사진을 한장씩 선택한다. 네 명씩 천천히 나와서 사진을 고른다. 아이들은 꽤나 신중한 모습으로 사진을 선택했다.


"저는 반찬 사진을 골랐는데요. 오늘의 기분이 이 반찬들처럼 다양해요."

"저는 밝은 해가 비추는 사진을 골랐어요. 우리의 앞날이 밝을 것 같아요."

"쇠로 된 열쇠가 가득한 사진을 골랐는데요. 새학기가 되어 마음이 복잡하고 다양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전구가 빛나는 사진이에요. 왠지 따뜻할 것 같아요."

"톱니바퀴가 굴러가고 있는 모습이에요. 방학처럼 좋은 시간도 흘러간 것 같이 새학기의 시간도 잘 굴러갈 것 같아요."


서클에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아이들의 언어가 참 신비롭고 아이들은 자신의 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것을 보게 된다. 눈을 마주치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깊이 마음으로 들어본다. 경청은 서클을 할 때 참 중요한 훈련이기도하다. 말하는 것은 잘 하지만 이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는 타인의 말을 깊이 듣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 이 시간을 통해서 내가 말하는 것 만큼,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해간다. 같은 사진 카드로 자신의 성격도 함께 나눈다. 아이들의 사진과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이 가진 다양한 성격을 조금이나마 예상 해본다. 전구처럼 성격이 밝다는 아이, 북을 치는 모습처럼 장난 치는 것을 좋아한다는 아이, 길이 깔끔하게 나있는 것처럼 나의 성격은 깔끔하다는 아이. 어느 아이 하나 같은 아이들이 없다.


다음 연결 질문은 내가 우리 공동체에서 생활 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대한 질문이다. 이 질문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가 중시하는 가치가 다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만큼 친구가 소중이 여기는 가치도 알아가는 것이다.

공동체 생활에서 중요한 가치


"저는 공동체 안에서 경청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꼭 필요하니까요."

"저는 협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친구들이 나와 같이 협력해서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저는 이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싸우지 않으려면 서로가 이해할 수 있어야죠."

"도움이 중요해요. 사회가 이루어지려면 서로 도와야하는거잖아요."

"끈기가 없으면 안되죠. 도전하고 실패한다고 해도 끈기가 있으면 해낼 수 있을거에요."


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것이 필요할까? 선하고 지혜로운 자아가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한다는 서클의 믿음처럼, 아이들 안에는 이미 지혜로운 자아가 존재한다. 교사는 서클 안에서 질문을 던질 뿐, 아이들 안에 있는 지혜를 통해 우리는 배움과 성찰을 얻어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제 마음껏 상상해봅시다. 우리반이 어떤 반이 되었으면 좋겠나요? 여러분의 상상과 실천으로 우리 반을 만들어갈 수 있어요."


-생기있는, 너그러운,책임지는, 예의있는, 사랑이 넘치는, 공평하고 치우치지 않는, 정직한 우리반


"우리 반이 생기있는 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반이 너그러운 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반이 사랑이 넘치는 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 안에 가득한 우리 반에 대한 꿈. 아이들을 도와 우리가 함께 이루어갈 꿈이자 공동체이다. 사회에 나가기 전 경험하는 작은 사회인 교실에서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것을 돕고 싶다. 이상적일지 모르는 아름다운 가치들이 실현되는 교실. 그런 교실을 경험한 아이들이라면 자신이 나아갈 사회도 더 아름답게 가꾸어갈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서클의 소감을 다섯 글자로 나누는 체크아웃(닫는 질문)을 진행한다.


"뿌듯했어요."

"설렜어요."

"감사합니다."

"공감됐어요."

"완전 재밌다."

"행복했었다."


아이들의 마음에 아름다운 단어들이 새겨지고 서클 안에서 서로에게 들려졌다.

1년간의 시간 동안 아이들의 마음에 더 아름다운 문장들과 추억, 그리고 감정들이 새겨지기를 소망해본다.


우리 안에 있는 선하고 지혜로운 자아를 믿으며.


서클, 존재로 만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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