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존기
2021 년이 밝은 지 벌써 2달하고도 반이 지났고 나는 이로서 미국 이민자생활을 한 지 4년차가 되었다. (만으로는 약 2년 6개월 남짓.)
한국의 기본 교육과정을 마친 후, 어느 정도 알아주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의 컴퓨터공학과에 진학.
대학생활을 신나게 하고 휴학도 하고 카페알바도 해보고... 그렇게 모은돈으로 유렵여행도 다녔다.
복학 후에는 짧은 기간이지만 독일에서의 교환학생까지...
대학생 때 해볼 수 있는 건 거의 다 해보지 않았나 생각 될 정도로 다양한 경험을 했다. 이렇게 포트폴리오를 착착 쌓았고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에는 대기업 취업까지 성공했다. 남들보다 뛰어날 건 없지만 그래도 빈틈은 없다고 생각되었던 나의 26년.
듣기만 하면 조금 바빠보이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연애사업도 무사히 진행했고 요즘으로 치면 조금 이른 나이인 한국나이 27세 (만26세)에 결혼까지 골인했다.
여기서 내 커리어가 조금 바뀌기 시작하는데 남들이 보면 대기업에서 승승장구할 것 같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조강지처'의 길을 선택, 시민권자인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슝 이주한다. 그리고 2018년 12월, 본격적으로 미국생활 시작.
나는 딱히 '아메리칸 드림'을 꿈꾼 적은 없지만 항상 해외로 나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사실 남편을 처음만날 때, 그가 시민권자라는 사실이 나에게 좀 큰 매력 포인트 였던 것도 사실이다. 해외 생활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티파니의 아침 처럼 해외로 나가면 뭐 무조건 우아하게 살 것 같은 생각은 없었다. 그냥 막연하게 다른 나라에 살아보고싶은 생각 뿐이었다. 이러한 아메리칸 드림에 무딘 생각들이 오히려 미국 이민생활을 적응하는 데에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해외 여행을 많이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새로움'은 재밌다. 내가 알고있던 것 보다 더 나아보인다.
예를 들어 레스토랑에 가서 메뉴판을 보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던 그 메뉴도 영어로, 독일말로, 프랑스말로 써 있으면 더 고급스러워보이고 맛있어 보인다. 레스토랑의 시그니처 안심스테이크 대신 'The Signature tenderloin with homemade sauce' 를 주문하고, 단순 소고기맛이 아닌 스테이크의 본고장 뉴욕의 맛을 느껴 본다. 나 역시 그랬다. 유럽이든 미국이든 모든 음식은 다 맛있었고 심지어 슈퍼에 가서 장보는 일조차 즐거웠다.
하지만 이 모든것이 '새로움'이 아닌 '일상'이 된다면?
미국에 이민오고 초기에는 여행처럼 모든 것이 새로웠다. 심지어 내가 사는 살림살이들이 모두 '미제' 라니!! (하지만 Made in China의 늪은 여전하다.) 특히 식료품쇼핑하는 시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미국 슈퍼마켓은 정말 말그대로 'Super'라서 그냥 슈퍼마켓도 한국 이마트 크기는 된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유제품 코너, 베이커리 코너는 한국의 2~3배로 큰데 한국에서부터 장보기를 좋아했던 나는 미국 슈퍼마켓 한번 도는 것만 해도 최소 한시간은 기본이다. 초기에는 식품영양성분표까지 다 구경 하느라고 2시간은 걸렸는데 내가 슈퍼 한 번 갔다오면 같이 살던 이모가 넌 뭐 어딜 그렇게 오래 갔다오냐고 물으시면서 의아해 하셨을 정도이다. 3년의 시간은 이렇게 재미있던 식료품 쇼핑도 생활의 일부가 되게 만들었고 한번 본 제품은 이제 그게 그것이기 때문에 왠만한 신제품 아니면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또한 여행에서 하던 '식사' 는 주부인 나에게는 밖에서 돈 쓰는 행위가 되어버렸다.
나같은 경우도 외식은 지인들 만날 때 2~3달에 한번 정도이고 대부분이 집에서 해먹는 걸 선호한다. 그도 그럴것이 식재료비가 한국의 2/3정도로 저렴한 이유도 있다. 그러니까... '아메리칸 드림' 중 한 파트인 주말 오전 느긋한 'Brunch' 는 알뜰하게 살고싶은 이민자라면 비싼 이벤트정도 되겠다.
뭐 외식 얼마나한다고 그렇게 아껴? 라고 하기에는 미국은 월세도 장난 아니다. 한국에서 흔한 '전세'는 미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개념이라 집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이상 대부분 렌트생활을 해야하는데, 아주아주 질이 낮은 스튜디오(한국으로 치면 원룸)가 아닌 이상 1000불 이하의 집은 찾기 힘들다. 심지어 아메리칸 드림의 중심지가 되는 뉴욕 맨하탄이나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LA의 도심은 적어도 2000불은 줘야 원룸 크기의 괜찮은 스튜디오를 구할 수 있다.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월세가 한화 100만원 이상이다보니 월급의 반 정도는 이제 렌트로 빠지고 나머지 금액으로 저금까지 하며 생활하기 위해서는 아껴야 잘사는 것이 맞다. 즉, 아메리칸드림대로 살기는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빛좋은 개살구가 되기 딱 좋은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아끼는 게 또 외식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건비가 비싼 미국은 생각외로 서비스 비용에서의 지출이 큰데, 식당에서의 팁은 두말할 것 없고 미용실이 아주 비싸다. 다른 건 굳이 단점으로 꼽고싶지 않으나 미국의 미용실은 정말 별로다. 예를들어 여자 헤어컷 한번 하는데 80불은 기본인데 팁이 포함된 금액도 아닐뿐더러 한국처럼 손맛 좋은 샴푸서비스도 포함되어있지 않다. 마무리로 드라이해주는 것도 정말 별로.... 즉 가격은 한국의 2배, 결과는 한국의 1/2배 정도이다. 그래서 여기 있는 이민자들같은 경우는 한국 한번 갔다올 때 미용실을 해결하고 올 때가 많다. 여자의 경우는 기르면 그만이지만 남자같은 경우는 주기적인 머리손질이 꼭 필요한데 그래서 미국 이민자사이의 스킬 중 하나는 바로 기본미용기술이다. 나같은 경우도 미국 와서 처음으로 남자 바리깡을 사용해봤고 이제 제법 능숙하여 남자머리 다듬기는 기본으로 한다. 미국에서 머리 자르는 얘기는 나중에 더 해보도록 하고... 어쨌든 이렇게 미국이민생활은 '아메리칸드림'은 커녕 생각지도 못했던 생존스킬셋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생존생활에 더 가깝다.
머리를 하는 것 말고도 미국에서 배운 게 참 많은데 김장, 피클담그기, 가구조립 등...
아, 물론 내가 너무 극단적으로 힘든 얘기들만 늘어놓아서 그렇지 미국생활은 사실 내 기준에서는 한국생활보다 좋다. 이렇게 내 손으로 직접 하는 과정에서 늘어가는 스킬셋들도 물론 힘들긴 하지만 장점이고 미국에서 살면서 느끼는 나라의 문화와 생활방식은 과연 천조국이구나 할 정도로 좋다.
사회생활이 주가 된 한국과는 다르게 '가족'이 우선이라는 점이 가장 좋다.
가족사를 얘기하며 회사 행사를 빠지는 것이 말이 안되는 한국과는 다르게 회사행사를 연연하며 가족행사를 빠지는 것이 말이 안되는 나라이다. 사회생활이라는 명목 하에 회식과 술에 찌들었던 한국생활이 기억도 안날 만큼 미국은 정말 'Family-Oriented' 이다.
타인은 타인, 나는 나.
타인의 삶의 방식을 자기의 방식대로 강요하지 않는 점도 좋다. 한국에 있으면서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연연하는 나를 발견하고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미국이란 나라는 모든 문화권의 사람들이 모여서 생활하는 국가인만큼 '다양성' 하나는 제대로 인정받는 나라이다. 초반에는 적응이 안되었지만 어느순간 나 역시 다른사람들 역시 그사람들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 역시 눈치를 크게 보지 않고 있다.
아직 미국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
그리고 10년이 지나도 내가 미국생활이 한국보다 더 익숙해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느낀바로는 나는 미국생활에 꽤 만족하고 있다. 한국보다 땅이 너무 넓어서, 또 한국의 감성만큼 섬세하지 못해서 오는 불편함들이 가끔 있지만 그것은 또 내가 해결해야 할 몫으로 남겨두고 재미있게 알콩달콩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미국 주부 생활이 좋다. 흔히 생각하는 아메리칸 드림은 없을지라도 그 이상의 무엇인가는 반드시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아직 한참 남았지만 그 시간을 보람차게 살아내는 미국주부가 되는 것이 나의 아메리칸드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