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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헤르 Mar 05. 2021

미국 가위손이 된 이야기


 미국생활은 꽤나 실용적인 것을 많이 배울 수 있다.


 대표적인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미용기술인데 나같은 경우 남편 머리는 경우는 무조건 집에서 잘라주고 있다.


 사실 미국에 오자마자 이발을 시작한 건 아니다. 처음 이민 온 건 지금 사는 달라스가 아닌 미국가족들이 있는 시카고인데 조카들 중 2명이나 헤어 디자이너였다. 그 당시에는 둘 다 견습생이였기 때문에 머리를 연습할 누군가가 필요 했고 남편 역시 머리를 잘라야 하니까 윈윈인 셈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6개월 정도 조카 덕을 보다가 둘의 살림을 위해 시카고에서 텍사스 어스틴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전용 미용사는 없어졌지만 텍사스에 살아도 머리는 계속 자라는 것이 당연한 자연의 섭리. 악착같이 살아보기로 결심한 우리 부부는 비싼 미용실 가는 일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고 결국 내가 직접 머리를 잘라보기로 결심했다. 아마존에서 적당한 가격의 트리머를 구매하고 교회 아는 집사님께 머리 자를 때 두르는 망토도 빌렸다. 다행히도 스타일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남편은 기꺼이 내 손에 머리를 맡겨주었고 이발은 커녕 남자 미용실 한번 안따라가본 나는 그렇게 처음으로 트리머, 바리깡을 손에 잡았다. 


 군대에 있을 때 이발 좀 해봤다 하는 남편의 진두지휘하에 트리머를 켰는데 처음에 남편 머리에 갖다 대는 게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어서 한부분 미는 데만 2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머리통이 남들보다 크긴 하지만 그래도 첫 미용이라 그런지 다듬기만 하는데 한시간 반이 걸렸다. 그래도 결과는 생각보다 나쁘지 아서 남편 회사 동료에게 칭찬까지 받았다. 이렇게 자신감이 한층 업그레이드 된 나는 적어도 2달에 한번은 남편 머리를 잘라주게 되었고 1시간 넘게 걸리던 미용시간이 30분으로 파격적으로 줄어들었고 머리 모양도 제법 예쁘게 자리 잡아갔다. 


 이렇게 헤어트리머로 머리를 다듬는 것은 미국 이민자들 뿐만 아니라 꽤나 흔한 일이긴 한데 우리 엄마는 이걸 그렇게 안쓰러워 하시는 거다. 딸 미국으로 시집 보내 놨더니 미용실 갈 돈이 없어서 집에서 그러고 있냐면서... 우리가 그런 것 아니라고 여기서는 이게 평범한 거라고 두세번은 설명하고 나니 이제 엄마도 그러려니 하신다. (사실 내 첫 작품이 꽤나 안쓰러울 정도였는지 요즘은 머리모양이 꽤 예뻐서 아무 말 안하는 것 같다.)


 사실 여기서 조금 더 오바해서 요즘은 집에서 파마까지 하고 있다. 남다른 직모를 가진 우리 남편은 관리를 안받으면 중구난방으로 촌스럽게 뻗치는 머리때문에 한국 미용실에서 파마가 필수였는데 머리 자르는 것도 그렇게 비싼데 파마는 Duh ... 만물상 아마존에서 파마약과 롯드를 사서 주기적으로 열심히 말아주고 있다. 


 처음에는 짧은 머리에 롯드를 말겠다고 애쓰다가 자꾸 풀려서 속이 터지고, 파마약을 잘못쳐서 파마약을 남편 눈까지 줄줄 새게 만들어 실명위기까지 초래했었다. 하지만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3~4번 해보니까 요즘은 제법 빨리 말아서 파마도 한시간 내로 끝낸다. 


 미용실 한번 가면 되지 뭐 궁상을 떠는 소리로 들릴 수 있겠지만 미국 미용실 가격과 실력을 한번 맛보게 된다면 미용실 가는게 꽤나 사치스러운 행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나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서 미용실 좀 다녀본 사람이라면 더욱 더 말이다. 그냥 쉽게 말해서 가격은 한국 미용실의 3배인데, 실력은 0.3배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겠다. 


 일례로 앞서 말했던 조카가 일하는 미국 미용실에 잠시 방문한 적이 있는데 발의 머리 긴 손님이 샴푸 후 혼자 드라이하는 것 보고 과한 충격을 먹었다. 꽤나 고급 살롱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실 한국에서는 왠만한 곳에서 5만원짜리 헤어컷 받으면 샴푸에 마사지까지 풀코스로 받을 수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비싼 시술을 받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다과를 내어주는 대부분의 한국 미용실에 비해 커피는 커녕 커피를 놓을 자리조차 없는 시설은 많이 실망스러웠다. 그 날 이후 한국 미용실 고갱님 출신으로써 나에게 '미국미용실 = 돈버림' 의 공식이 자리 잡았다. 


 궁상이라고는 하지만 벌써 머리 자르고 파마 한 게 10번 이상은 되니까 2년동안 적어도 200불은 아꼈다고 자부한다. 돈도 세이브하고 머리 자르면서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 하는 것들 역시 또 소중한 추억들로 남으니 나름 미국와서 얻은 큰 이득이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나름 기술까지 얻었으니 나중에 아이를 낳아도 머리는 왠만하면 내가 해줄 수 있을 것 같으니 이 또한 더블세이브! (즉, 개이득)


 단점 하나는 중이 제머리 못깎는다고 나같은 경우 한국에서 머리를 할 심산으로 방치해놓았는데 염색하지 못한 뿌리가 투톤염색 처럼 되어버린 건 옛날이고 머리길이는 어느새 허리춤이다. 작년에 미용실에 방문하려고 했는데 이놈의 팬데믹이 미뤄 놓은 숙제를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남편 머리는 예쁘게 잘라주고 나는 추노 마냥 머리를 틀어 올리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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