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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KSa Mar 20. 2021

일본 애니메이션 연출가의 소소한 넋두리

일본 애니메이션은 시스템으로 만들어진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시스템으로 만들어진다.


연출가도 그 시스템의 일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연출가에 따라 하는 일은 천차만별이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그림을 그리면서 컨트롤하는 연출가가 있는가 하면, 필요한 부분만 조정하면서 각 스태프에게 맡기는 연출가도 있다.


내가 연출로  참여한 일본 TV 애니메이션의 제작 과정은 아래와 같다.


먼저 작품 기획과 콘셉, 시나리오 작업이 진행된다.


주로 프로듀서, 감독, 시리즈 구성(각본 총괄) 등이 참여한다. 동시에 메인 스태프(캐릭터 디자인, 총작화 감독, 배경 설정과 배경감독, 색채 설계, 촬영, 음향, 음악, 편집 등)의 캐스팅과 프리 프로덕션(캐릭터, 배경, 소품 설정 등)의 작업이 병행된다.


TV시리즈는 주로 1 쿨(3개월)(12-13화 완결),2 쿨(6개월)(24-26화 완결)등으로 제작되며 기획단계에서 정해진다. 시나리오가 완성되면 바로 그림 콘티 작업에 들어간다.


1화는 주로 감독이 맡고, 감독이 대략적인 작품과 캐릭터의 이미지와 연출방향을 정한다. 감독이 그림 콘티를 하지 않을 경우, 콘티 담당이 감독과 그림 콘티 미팅을 하고 콘티 작업에 들어간다. 내가 참여한 작품 대부분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림 콘티가 완성되면, 감독의 체크를 거쳐서 결정본이 나온다. 프로듀서나 스폰서에서도 체크가 들어간다. 콘티가 결정되면 본격적으로 각화 제작이 시작된다.  참고(http://shirobako-anime.com/about2.html)


각화 제작은 연출 미팅으로 시작한다.


연출 미팅을 통하여 감독은 작품 설명과 캐릭터의 이미지, 각 씬이나 컷의 의미 등을 담당 연출가(이하 연출)에게 설명한다. 그림 콘티를 담당한 연출일 경우, 얘기가 빠르다. 연출은 감독의 이미지를 화면으로 구현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한다. 물론 이러한 전반적인 과정을 관리하는 제작진행과 같이 움직인다.


연출이 하는 최초의 일은 작화 미팅이다. (작화 감독 미팅도 따로 한다)


작화 미팅을 통해 애니메이터(원화맨;원화를 그리는 분)들에게 담당 컷을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콘티를 기반으로 구체적인 이미지를 원화맨에게 전달한다. 원화맨은 배경원도(선 그림)부터 캐릭터의 연기, 화면처리의 연출 등 화면에 보이는 모든 것을 설계하는 레이아웃 작업에 들어간다.


작업된 레이아웃을 연출이 체크하고, 이 과정에서 캐릭터의 복장이나 연기, 공간의 위치나 시간 등이 미팅했을 때의 내용과 맞게 작업했는지 확인한다. 연출 체크 중에 레이아웃 체크가 가장 시간이 걸리고 중요하다. 화면의 퀄리티를 결정하는 중요한 설계이기 때문이다.(스케줄이 없을 때는 원화 체크 때 해도 되는 타임시트 체크도 완성해야 한다)


연출 체크가 끝나면 작화감독에게 컷이 전달되고, 작화감독은 배경원도, 캐릭터의 표정이나 포즈, 연기의 정확성 등이 연출의 지시나 내용에 맞게 레이아웃의 모든 것을 수정 체크한다.


연출의 전체 레이아웃 체크가 마무리될 즈음에, 미술감독(배경)과 색지정 담당과의 미팅에 참여해서, 각 씬의 시간대나 설정, 그리고 각종 소재를 확인한다.(예를 들어 교실 장면에서 책상이 나오면, 작화로 하지 않았을 경우 미술팀이 그리게 된다)  작화감독 체크가 끝난 레이아웃은 총작화감독(캐릭터의 통일)의 수정을 거쳐서 원화, 배경, 3D, CG작업등 동시다발적으로 작업이 진행된다.


연출은 각 섹션에서 완료된 작업을 수시로 체크한다


그중에서 원화 체크가 가장 시간이 걸린다. 원화 체크에는 타임시트(각종 타이밍이나 촬영 지시를 종합한 시트)를 체크하는 게 연출의 중요한 역할이다. 원화의 연출 체크가 끝나면 다시 작화감독의 체크를 거치고 동화 작업으로 들어간다.


동화는 원화의 지시를 토대로 움직임의 중간 그림을 넣거나, 작화를 별도의 종이로 그리거나 선을 깨끗하게 트레스하는 작업을 하게 된다. 동화가 끝나면 동화 검사를 거쳐 채색작업에 들어간다.


완성된 동화를 전부 스캔을 떠서 컴퓨터 작업으로 진행된다. (채색 작업은 2000년 이후로 급속도로 디지털화가 되었다)


채색작업은 색채 설계를 기본으로 색지정하는 분이 각 컷마다 색지정을 하고, 지정에 맞춰서 다수의 인원이 색채 작업을 한다. 색채 작업은 일본에서 시아게(仕上げ) 작업이라고 하는데, 단순히 채색작업뿐만 아니라, 그다음 섹션의 촬영 작업에 필요한 소재를 완벽하게 준비하는 작업이다.


채색작업이 끝나면 색검사를 거쳐서 촬영 작업에 들어간다.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촬영은 컴포지트(합성)가 메인이다. 각 섹션에서 체크가 완료된 소재를 합성하는 작업과 감독이나 연출의 촬영 지시에 맞게 화면을 꾸미는 일을 한다. 촬영이 완료된 컷은 촬영감독의 체크를 거쳐서 감독과 메인 스태프가 모여서 최종 체크를 한다. 이 과정에서 감독이나 각 섹션에서 의도하지 않은 결과나 더 좋은 결과를 위해서 다시 수정 작업을 지시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컷이 완성된다. 컷이 완성되면 편집 과정을 거치는데,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부분의 제작과정에서의 편집은 음향 작업과 맞물려 있다.

성우 더빙(AR아후레코) 전에 중간 완료된 소재를 가지고 가편집을 해서 성우 더빙을 하고, 그림 작업이 조금 더 진행되면  성우 외의 음향과 음악 작업(DB더빙)을 하기 위해 다시 가편집을 해서 음향 작업이 이루어진다.


편집 과정은 편집담당과 감독, 각화 연출이 참여한다.


그림 콘티에서 초기 편집이 이루어지므로 전체적인 구성은 크게 변화가 없지만 대사의 타이밍이나 컷의 길이 간격, 순서 등을 조정한다. 음향 작업 이후에도 그림 작업이 완료되지 않는 경우도 많아서 편집은 음향과 그림의 세세한 타이밍을 체크하고, 최종적으로 연출의 타이밍 수정을 통해 재촬영되어서 컷이 완성된다. 성우, 음향 작업에서 연출도 참여를 하지만 전적으로 음향 감독과 감독이 주도를 하는 경우가 많다. 각화 연출은 세세한 부분에서의 그림과 맞지 않는 부분이나, 음향 작업 이후에 작화나 타이밍의 조정이 가능한 지에 대해 의견 제시를 한다.


음악에 대해서는 각화 연출은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완성된 스코어를 미리 음향감독이 필요한 씬에 배치를 하고, 음향 더빙할 때, 감독과 연출이 확인을 한다. 스코어를 넣는 타이밍의 의견 제시는 할 수 있다.


이렇게 완성된 컷과 음향 작업을 통해 최종 편집을 하고 '시로바코'를 납품하게 된다.


'시로바코(白箱)'는 '칸 파케(完パケ)'라고도 하는 데, 최종 완성품을 의미한다.


이러한 애니메이션의 제작 과정을 가상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우여곡절 스탶들의 고난과 역경을 코믹한 터치로 그린 작품이 'SHIROBAKO(이하 시로바코)'이다. ‘시로바코’는 P.A.WORKS에서 제작한 일본의 오리지널 TV 애니메이션으로서 2014년 10월부터 2015년 3월까지 방영한 작품이다.


대부분의 일본 애니메이션은 대략 방영 몇 달 전이나 1년 전부터 준비에 들어간다. 방영 시작할 때는 대략 5,6편은 완성된 채 들어가야 일주일에 한편씩 방영되는 스케줄을 맞출 수 있다고 한다.(그렇지 못한 현장이 대부분이다)



‘시로바코’의 작품이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을 때, 나는 다른 작품의 연출일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 제작 프로듀서인 S상(일본 호칭)으로부터 다음 작품은 애니메이션 업계를 무대로 하는 애니메이션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듣고,

“정말이요??”

다른 스탶들도 거의 같은 반응을 보였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현장을 그린다는 게 과연 재미가 있을까?

라는 의문은 사내 스태프들이 모두 가지고 있었던 거 같다. 하지만, 코믹 연출로 유명한 M감독과 베테랑 프로듀서 H상(PA 사장), 시리즈 구성(전체 각본 총괄)인 Y상이 의기투합한 기획이라는 것. 그리고, 실제의 어두운 부분은 완화하고 코믹하게 그린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장의 경험을 토대로 작품의 개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좋았던 것 같다.


그리하여, ‘시로바코’라는 작품에 콘티, 연출로 참여하게 되었다.


실제로 작품이 그리는 업계의 이미지는 많이 미화되어 있다. ‘시로바코’라는 작품을 좋아해서 업계에 들어왔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그리고, 현실을 알고 떠나간 신인들을 많이 봤다.


‘시로바코’ 작품을 만들며 생각했던 것들. 그리고 ‘시로바코’의 내용을 통해서 여러 작품에서 애니메이션 연출을 했던 경험들을 조금씩 풀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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