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리 Nov 30. 2022

언니와의 여행

언니와 3박 4일 여행을 다녀왔다. 코로나 이후, 아이를 낳은 이후 첫 해외여행이었다. 언니와 나는 각자 남편에게 아이를 맡겨두고 왔다. 탈육아의 시간이었다.


언니는 최근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 나는 언니의 우울증을 한 방에 낫게 해 줄 수는 없지만, 잠시라도 자신을 억누르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 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길 바랐다. 아이를 낳기 전 우리 둘은 여행을 많이 다녔다. 비슷한 취향을 가진 우리는, 세계를 누비며 귀여운 인형들을 모았다. 일본, 동남아, 유럽까지. 우리는 다른 사람과 여행을 떠날 때면 모든 면이 잘 맞았던 서로를 그리워했다.



나는 엄청난 계획주의자라 여행 전에 계획을 빼곡히 세우고, 수집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모으곤 했다. 스트레스 상황에 취약한 나는, 나의 계획에 어긋난 데다, 그 상황을 해결할 정보까지 가지고 있지 않을 때면 크게 동요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언니는 내 시선을 다른 곳으로 가져다 두었다.


언니와 떠났던 체코 여행에서 우리는 체스키크롬로프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내 예상과는 달리 아무것도 없는 기차역. 우리 숙소까지는 1km 넘게 걸어가야 하는데 대중교통은 물론이고 사람 하나, 불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저 멀리 보이는 불빛을 좇아 10kg이 훌쩍 넘는 캐리어를 드릉드릉 끌고 가는데, 나는 이 모든 상황이 당황스럽고 화가 났다. 말없이 캐리어만 힘겹게 끌고 있는 내게 언니가 갑자기 말했다. "밤하늘 좀 봐, 별이 진짜 많아" 숙소를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별 타령이라니. 철없는 언니 소리에 구박을 하려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언니 말대로 별이 정말 많았다. 그렇게 우리는 말없이 밤하늘에 가득한 별들을 바라보다 다시 숙소를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도착한 숙소는 전부 나무로 만들어진, 아담하고 운치 있는 숙소였다.


다음 날, 언니가 가보자고 해서 들렀던 골목에는 우리 취향의 인형이 가득한 작은 가게가 있었다. 굳게 닫힌 문 너머로 인형을 바라보며 우리는 군침만 삼켰다. 몇 시간 뒤, 그 가게에 다시 가보자는 언니 말에 길을 되돌아갔더니 가게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본 인형을 또 보고, 또 보고 하면서 열심히 인형을 골랐다.


언니는 내 인생에 항상 갑작스러운 행복을 알려주는 사람이었다. 미리 알아둔 길로만 가려하는 내게, 언니는 늘 새로운 길로 가보자고 하고 그렇게 우연한 행복을 만나게 해 주었다.

하루 3만 보를 걸어 너무나 피곤했던 이번 여행 둘째 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언니가 분위기 좋은 술집을 찾아냈다. 늘 그렇듯 갑작스럽고, 의외의 타이밍에서. 우리는 안주를 종류 별로 시켜놓고 커다란 생맥주를 한 잔 씩 들이켰다. 그러다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에 놀랐다.


언니는 항상 나를 '자신보다 모든 면에서 월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고, 나는 나 자신을 '언니보다 공부 잘하는 것 외에는 잘난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내가 바라본 언니는 항상 밝고 명랑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운동이든 노래든 미술이든 잘하는 사람이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공부를 그다지 잘하지 못했지만 대학교에 가서는 항상 성적장학금을 받으며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다. 언니보다 잘하는 것이 공부 하나였는데,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그마저도 언니가 월등히 잘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언니 뒤를 열심히 좇았다. 언니는 학보사 부국장이었는데, 나도 언니 따라 우리 학교의 학보사에 들어가 (의도치 않게) 부국장까지 하게 되었다. 언니가 디지털 마케팅으로 업무 성과를 내니, 나 역시 회사에서 디지털 마케팅 업무를 맡았다. 특별히 그 길로 가려고 노력하진 않은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언니가 간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어찌 보면 나는 언니 인생을 표절해서 좀 더 나아 보이는 결과를 낸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며 언니를 치켜세우자, 언니는 그다지 공감하지 않는 얼굴을 했다. 내가 생각한 언니의 모습은 일부 현실과 달랐을지도 모른다. 내가 상상한 '완벽한 언니의 상'으로 언니를 바라본 걸수도. 어찌 되었든 나는 내가 생각한 언니를 따라, 그 길을 나아갔다. 언니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자신보다 모든 면에서 월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서로로 인해 어떤 박탈감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통해 자신의 부족을 채우며 나아간 것이다.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참 많이 하는 사람이다. 남편이나 친구들과 여행하면서 문득 든 생각을 이야기하면 그들은 애써 대꾸는 해주지만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니’라는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이번 여행에서도 어김없이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 “저런 데서 살면 이럴 때 어떻게 할까, 이 사람들은 이게 평범한 출퇴근길이겠지, 한국으로 치면 여긴 xx 같은 느낌 아닐까?”와 같은 흘러가는 생각들을 되는 대로 내뱉었다. 내가 그런 말을 할 때면 언니는 “어? 나도 지금 그 생각 중이었어”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자주 말하는 것 중 하나가 ‘우리는 사고방식이 똑같다’는 것인데, 정말 생각의 흐름 자체가 같은 것 아닐까 싶었다. 그러면서도 가끔 언니는 “넌 정말 궁금한 게 많구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쇼핑을 미친 듯이 했다. 몇 년 전, 언니가 귀여운 것을 수집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슬금슬금 하나씩 모으다가 대단한 인형 수집가가 되었다. 언니가 토이스토리 캐릭터를 좋아한다며 인형을 모으자, 나도 그 캐릭터가 좋아졌고, 언니가 처음 독립한 원룸에 인형들을 깔 별로 전시한 걸 본 이후로 나 역시 인형은 무조건 깔 별 정리를 한다. 언니가 선물로 주는 인형들은 언제나, 내 최애 인형이 되었다.


결혼을 하면서 언니는 모든 수집 인생을 청산하고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다. 몇 년 전에는 같이 여행을 다니면 쉼 없이 쇼핑만 다녔는데, 이제는 내 쇼핑을 언니가 따라다니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의 이번 여행은 지극히 나를 중심으로, 내가 원하는 것으로만 채워졌다. 나름 '언니를 위한 힐링 여행'을 표방한 것이라, 언니에게 하고 싶은 것을 물었지만 언니는 '네가 원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언니는 아무런 불평 없이, 내 쇼핑 루트를 함께 다니며 이 인형을 사야 하는 이유를 덧붙여주었고, 신상 인형들을 대신 들어주기까지 했다. 내 인생에서 ‘인형 수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인데 하나씩 돌이켜보니 모든 시작과 과정이 언니로부터 왔다. 조금 과장해서 생각하자면 언니의 삶은 내 삶이 되었다.

한국에서와는 다른 자아가 튀어나와, 엄청난 체력을 소진하며 돌아다닌 이번 여행. 결국 3일 차 저녁, 둘 다 배터리가 방전됐다. ‘오늘은 별로 안 살 것’이라는 나의 결심은 또다시 부질없는 것이 되어, 언니와 내 양손은 내가 산 인형으로 가득했다. 설상가상 비가 오고, 배는 고픈데 문 연 식당은 보이지 않고. 어찌어찌 일찍 문 연 술집을 찾아 신나게 맥주를 들이켜고, 이후 계획은 모두 취소한 뒤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돌아와서도 맥주를 몇 캔 더 들이켠 언니는 기분 좋게 취한 것처럼 보였다.


여행 마지막 날 계획은 어찌해야 될지 고민하는 나를 보며 언니는 여러 번 말했다. “너 인형을 별로 못 봐서 어떡해? 내일은 정말 널 위한 코스를 짜” 3일 내내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가 좋아하는 인형 실컷 보며 다녔는데 무슨 소리 신지. 그렇게 스르륵 잠이 든 언니는 새벽에도 몇 번이나 말했다. “내일 돌아다니다가, 너 보고 싶은 거 생기면 또 보러 가자” 그 말에 나는 질린 듯이 “아니, 이미 많이 봤다고. 언니야말로 보고 싶은 거 없어?”라고 되물었지만, 언니는 답이 없었다. 잠꼬대였다. 자면서도 내 의견을 묻는 언니라니, 참 기가 막히다.


어느덧 언니와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 일주일. 아직도 내 정신은 일본에 있는 듯, 현실감각이 없다. 체력을 몰아 쓴 탓에 오늘까지 비실비실 상태. 언니도 나와 다르지 않은지 전화를 걸 때마다 누워있다. 생각부터 체력까지 비슷한 우리. 언니란 존재는 무얼까. 내가 태어날 때부터 내 옆에서, 내 앞에서 인생을 살아가면서 평생 서로 비교당하고 평생 양보하는. 나와 비슷하면서도 나와 다른 점이 너무나 많은 혈육. 내가 위해주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문득 돌아보면 항상 날 위하고 있었던 언니라는 존재. 언니와의 여행은 언니라는 존재가 내 인생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아마 당분간은 언니와의 여행에서 행복했던 기억으로 살아갈 것 같다. 언제나 언니가 나에게 주었던 예상 밖의 행복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할머니가 보고 싶을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