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워킹맘의 복직 준비 과정
나는 육아를 하면서 한 번도 울지 않았다는 것에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하루 12시간 넘게 홀로 아이를 돌보며 이유를 알 수 없는 울음이 1시간 넘게 이어질 때도, 아이 등하원을 가야 하는데 몸도 꿈쩍 못할 만큼 아팠을 때도, 반드시 입소 등록을 해야 하는 어린이집 원장과 상담하다 쫓겨났을 때도, 몇 시간 째 아이를 안고 걸어야 했을 때도 울지 않았다. 울음의 축축함이 목젖까지 차오르는 순간들이 무수히 많았지만, 우울의 묵직함이 온몸을 짓누를 때도 숱하게 많았지만 '난 너 키우면서 한 번도 운 적 없어'라고 아이에게 말해주기 위해 울지 않았다. 그런 나약한 마음으로 너를 기르지 않았고, 너를 잘 기르겠다는 부담감이나 쓸데없는 죄책감도 가져본 적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사실 나는 항상 나약한 마음으로 아이를 길러왔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아프거나 이상행동을 보이면 곧장 인터넷에 검색하고, 난처하고 힘든 상황이 되면 가족, 친구에게 당장 하소연했다. 내 힘든 상황을 내 주변 사람들이 모두 알게끔 했고, 나에게 공감하도록, 나를 위해 배려해주길 바랐다. 나는 강단 있게 육아를 해내고 싶었지만 누구보다 줏대 없이, 부담감만 한껏 가지며 게으르게 아이를 키우는 중이었다. 아이가 밥 먹지 않는 걸 걱정하면서도 반찬을 아이의 입맛에 맞게 다양하게 만들 생각은 하지 않았고, 아이가 등하원길에 떼를 쓰는 모습에 짜증을 내면서도 아이가 어떤 점이 불편한 것인지 고민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아이와 함께 하는 휴직 기간이 너무나 행복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귀여운 아기가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아기 핑계로 내가 갖고 싶어서 사온 인형과 장난감으로 아이와 놀아주고, 적당히 좋은 날씨에 아이 손을 잡고 산책하는 조그만 일상들이 눈물 날 정도로 행복했다. 그래서 너무나 나약하게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 유지되어야만 나의 조그만 행복이 유지될 것 같아서 퇴사를 버릇처럼 생각하고 어떻게든 도망칠 궁리만 했다. 나 자신을 애처로운 상황에 몰아넣고 싶지 않았다.
그제는 처음으로 육아 중에 눈물이 터졌다. 아이를 재우기 위해 온 방의 불을 다 끄고, 아이가 좋아하는 조명을 틀어주고,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를 같이 부르며 조잘조잘 노래를 따라 부르는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눈물이 났다. 뱃속에서 10달, 태어나고 나서 26개월. 나와 온전히 3년을 붙어지내면서 곁에 엄마가 있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저 작은 얼굴.
하지만 사실은, 아이가 나 없는 일상을 잘 적응할 거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아이는 어린이집 적응도 어렵지 않게 해냈다. 몇날며칠 낯가릴 거라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달리, 첫날부터 마음 맞는 친구까지 사귀면서 빠르게 적응했고 불안해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3박 4일 여행을 떠났을 때도 단 한 번도 엄마를 찾지 않고 아빠와 오붓한 시간을 보낸 아이다.
문제는 너무나 유약한 내 마음이다. 복직하는 걸 2년 내내 두려워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가차 없는 타인의 평가를 받는 것,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못난 사람인지 깨닫게 되는 회사라는 곳이 무서워 도망칠 생각만 했다. 새로운 부서,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서 어색하고 소외되는 상황을 견딜 수가 없었다. 아이에게는 있지도 않은 분리불안과 낯가림을 엄마인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 단단하고 당당한 우리 아기는 엄마 없이도 잘 지낼 거 아는데, 엄마가 잘 지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 너와 함께 늦잠도 자지 못하고, 못생기고 성격 나쁜 아저씨들의 냉정한 말을 견뎌내야 하고, 어색한 사람들 사이에서 친해져 보겠다고 억지로 웃어야 하는 상황들이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무서워. 아직 퇴근하려면 한참 남았는데 너와 함께 했던 이 작은 행복들이 그리워지면 어쩌지? 차갑고 무거운 공기가 가득한 사무실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 대신 너의 작고 말랑하고 따뜻한 손을 잡고 싶어지면 어쩌지?
아이와 웃으면서 같이 노래를 부르다가 돌연 눈물을 닦아내고 있으니 아이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그러다 "엄마, 기분이 안 좋아요?"라며 걱정스레 묻는다. 요 근래 사람의 감정에 관심을 갖게 된 아이는 곧잘 '친구가 기분 상했어', '엄마가 나한테 화를 냈어'라며 타인의 감정을 읽어내곤 했다. 웃지 않았을 뿐인데 엄마가 화났다면서 과잉해석을 하던 아이가, 이번에는 정확히 엄마의 마음을 읽어냈다.
"응, 엄마가 다음 주부터 일을 해야 하는데 네가 보고 싶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돼. 엄마가 슬아 보고 싶어서 어쩌지? 일 안 하고 슬아랑 놀고 싶어지면 어쩌지?"
"엄마, 나랑 놀고 싶어요? 나랑 놀자~"
아이는 곧장 어두운 거실로 달려 나갔다. 낮에 나와 재밌게 가지고 놀았던 자동차 장난감들을 내 손에 쥐여주면서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고 알려주었다. 단단하디 단단한 나의 작은 아기는 몸뚱이는 크면서 나약한 엄마를 위로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고, 못 견디겠으면 도망쳐도 괜찮다고.
아이와 자동차 장난감으로 놀고 나니 아이 뜻대로 나의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항상 나약한 마음으로 육아에 임했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지킬 줄 알았다. 불안을 줄이기 위해 여러 정보를 찾아내고, 슬픔이 쌓이지 않도록 사람들과 대화하며 풀어내고, 아집에 얽매이지 않도록 나름대로 융통성 있는 육아를 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저리 단단한 아이를 잘 길러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아이와 나를 잘 보살폈다. 매 순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쉼 없이 움직였다. 글을 쓰고, 내 미래를 고민하고, 새로운 일을 발굴하고, 나를 성장시키는 일도 놓지 않았다. 아이만큼이나 나는 단단한 사람으로 잘 성장했다. 분명 앞으로 내게 눈물이 나는 상황도 많고, 우울감에 휩싸이는 상황도 왕왕 생기겠지만, 그럴 땐 한 번 울고 이겨내면 된다. 내가 울면 내 손에 장난감을 쥐여주고 함께 놀아줄 아이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