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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Sep 29. 2024

어둠이 아니라 그늘로 가야 할 때


요 근래 두 달. 일이 너무 많았다. 많아도 너무 많다.

평생 일복이 넘쳐 일이 없었던 때가 없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했다.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내가 선택한 일이었다. 일을 과도하게 주어도 마다하지 않았고, 무리한 일정에도 이것을 해내겠다고 나선 것이다. 거기다 대학 졸업 후 시험공부는 절대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음에도 얼떨결에 자격증 시험까지 준비해야 했다. 역대급 많은 업무량에 시험공부, 육아에, 인플루언서로서의 삶까지. 나는 기어코 고장이 나고 말았다.




지난주는 나의 모든 부정적인 기분이 임계치에 달한 시기였다. 나는 한 달 만에 프로젝트를 완료해야 했고, 내 계획을 어지르는 것들에 민감하게 대했다.

갑자기 대행사에서 “과장님이 얘기하신 협력업체가 갑자기 작가를 못 구하겠다고 하네요, 어쩌죠?”라고 연락이 왔다. 이미 진행이 확정이었던 터, 갑자기 작가가 없다니? 당장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따지듯 물었고, 어떻게든 작가를 구해달라 당부했다. 잠시 후 대표는 어떻게든 작가를 구하마 얘기하며, 나의 신경질적인 전화가 매우 불쾌했다고 말했다. 아니, 비즈니스 적으로 봤을 때 원인제공은 그쪽이 아닌가?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말씀드린 건데 본인 기분은 왜 나한테 말씀하시는지? 얼굴에 열이 확 오르며 분노가 차올랐다. 차오른 대로 팀원들에게 나의 억울함과 분노를 호소했다. 다들 별말 없이 나를 위로했다. 그리고 한 분은 내가 하소연의 운을 떼려고 하자, “네가 잘못한 것이니 사과말씀 드리라"라고 답을 하셨다. 듣는 내내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아니, 제 억울함은 아직 말씀도 드리지 않았는데요. 듣는 내내 나는 다시 얼굴에 열이 올랐다. 분명 진심 어린, 나를 위한 조언을 해주시는데 나는 왜 이리 서운하고 속상하고 억울하기만 한 건지. 나 자신이 너무나 미숙하게 느껴졌다.


이제는 누군가에 대한 분노에서 나 자신을 향한 자책으로 마음이 이어졌다. 나는 또 해내지 못했다. 내가 복직을 앞두었을 때, 평판 체크를 했는데 어떤 사람이 나를 안 좋게 평가했다고 뒤늦게 들었다. 내가 커뮤니케이션할 때 친절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스스로 커뮤니케이션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부탁도 거절하지 못하는 성정이니. 그러나 나는 무언가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나를 무시하거나 당연하다는 듯 요구할 때 불쾌함을 제대로 감추지 못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대체로 당황하고, 분노했다. 안 좋은 평가를 듣고 더욱 친절해지려 노력했다. 분노의 마음이 들 땐 숨을 한 번 더 쉬려 했고 말끝을 친절하게 올리며 나의 감정을 감췄다. 그런데 이번에는 숨기지 못한 모양이다.


애써 복잡한 마음을 감추고 일을 마무리했다. 힘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들어서 나를 맞이하는 아기의 얼굴을 마주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 슬아야, 엄마 너무 힘들어, 다 그만하고 싶어, 나는 또 실패하고 말았어.




우리 아기와, 아기를 돌봐주던 친구는 말없이 나를 안아주었다. 아이는 내가 다 울 때까지 기다렸다가 진정이 되는 듯하자 얼굴을 구기며 “엄마 내 얼굴 좀 보세요, 웃기죠"라고 말했다. 친구는 내 얘기를 들으며 같이 분노하고 내 편을 들어주었다.


밤에는 혼자 여행을 떠난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는 글쓰기 선생님을 만나러 혼자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가는 길, 선생님이 새로 내신 책을 읽었단다. 내가 울적했다는 이야기를 하자 언니는 책 이야기를 했다. 자신을 평가할 필요도 없고, 남이 말하는 대로 바뀔 필요도 없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그저 인지하는 것이다. 내가 이런 얘기를 들었을 때 불쾌감을 느끼는구나, 화가 나는구나. 그래서 실패했다거나, 스스로를 못났다고 평가는 하지 말고 그저 인지하기.


다음 날, 아이와 뮤지컬을 한 편 봤다. 이상하게 태어난 주인공은 많은 사람들에게 변종 취급을 당했다. 친구는 없고, 용기 내어 제안해도 항상 거절을 당했다. 주인공은 스스로를 싫어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는 것처럼. 그러나 엄마, 아빠, 동생만큼은 그를 한없이 사랑하며 곁을 지켰다. 끝내 주인공은 “나를 사랑하는 가족들의 소중한 마음을 쓸모없게 만들 순 없어. 나는 나를 사랑해!”라고 외쳤다.


뮤지컬을 보고 난 뒤 저녁에는 남편과 산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왜 또 자책을 하고 있을까, 당신은 이런 적 없어? 남편은 자신에 대해 별다른 감정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싫지도 않고 좋지도 않고, 그냥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라고. 잘하느니 못하느니 생각하지 않는단다. 누군가 나에게 부정적인 말을 할지라도 그 순간 기분 나쁘고 말지, 그 말에 연연하며 자신을 깎아내리지 않는단다. 참 부럽다, 당신.


자기 전에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옆에서 꼬물대는 아이에게 물었다. 너는 네가 좋니?라고 묻자 아이는 단번에 대답했다. “나는 나를 믿어” 고작 4살짜리 아기의 답이었다.




나는 자기학대적인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나에게 많은 과제가 있고 이 모든 과제는 내가 선택했거나 내가 받아들인 일이다. 내가 이러한 삶을 살기로 선택했다. 왜냐면 남들이 나를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으로 평가했으면 좋겠으니까. 그러므로 인해 흔들림 없는, 공고한 사랑을 받고 싶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아빠에게 인정받기 위한 삶을 살았다. 좋은 대학도, 좋은 성적도, 좋은 회사도. 부모님이 어디가서든 나를 자랑스럽게 말해주길 바랐다. 결혼한 후에는 그러한 인정욕구는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목적지 없는 폭주기관차처럼 달리기를 선택했다. 누군가가 나를 싫다고 말하면 “세상에 이런 일이” 싶은 마음에 큰 충격을 받곤 했다.


흔히 말하는 ‘미움받을 용기'가 내겐 없었다. 타인의 대부분은 내게 관심이 없다. 그중 일부는 나를 좋아하고, 일부는 나를 싫어한다. 나를 죽도록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그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있다. 뮤지컬의 주인공에게 이상한 뿔, 이상한 꼬리가 달려도 한없이 사랑하는 엄마, 아빠, 동생처럼. 내 곁에는 내가 무엇을 하든 한없는 사랑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일어났는지, 앉았는지, 잠들었는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 계속적인 관심을 주는 아기가 있다. 내가 힘없이 누워있어도 내 할 일을 대신해주는 남편이 있다. 내가 나 자신을 잃어갈 때 옆에서 단단히 잡아주려 하는 언니와 친구가 있다. 나의 못난 모습을 보여도 그들의 마음은 달라지지 않는다.




나는 완벽하지 않고 완벽할 수 없는데 하나의 균열이 생기면 그 균열을 확대해서 바라본다. 마치 그 균열이 내 인생의 대단한 흠결인 것처럼. 며칠 지나면 생각도 나지 않을 작은 균열임에도 그 순간에는 나의 모든 문제인양 그것을 대한다. 모든 균열은 채워진다. 촘촘히 메꿔진 균열은 새로운 소재로 채워져서, 그렇게 나를 만든다.


우리는 어둠 속에 있는 것을 두려워하며 햇볕아래 자신의 그림자와 싸우지만, 결코 그림자를 이길 수 없다. 그림자와 싸우기보다는, 잠시 그늘에서 쉬어보면 어느새 그림자는 사라지고 없다. 어둠이라고 생각했던 이곳이 이미 그늘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잘하려고 태어난 게 아니다. 내 삶에 목적은 없다. 그냥 살면 되는 것이다. 잘할 필요도 없고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도 없다. 그저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도 사랑하면 된다. 왜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지, 나를 사랑하자고 염불을 욀 필요도 없다. 그냥 내 앞에 주어진 일을 하고, 가끔 생기는 균열을 천천히 메꾸면서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이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잠시 후엔 내게 무관심해진다. 그는 그렇게 되도록 그대로 두고, 그의 생각을 바꾸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한 나를 믿을 뿐이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무언가를 마주했을 때 즉각적으로 답을 내리지 말고, 5초만 멈추어보자. 목적지도 없는 폭주기관차가 끝없이 달리다 고장 나게 두지 말고, 곁으로 보이는 풍경들을 바라보면서 길이 나오는 대로 가보는 것이다. 그때그때 마주하는 나의 여러 장면들을 그저 바라보면서. 막다른 길이 나왔을 때 구태여 다른 길을 찾지 말고 그냥 그대로 주저앉기도 하면서. 그러다 어두워져서 무서워질 때면, 잠시 그늘에서 쉬어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왜 길을 잃었는지, 맞는 길이 어딘지 생각하지 말고 그대로 잠시 쉬면서. 나를 평가하지 않고 그냥 그런 나를 바라보고 그저 나의 여러 순간들을 쌓아가보자. 내가 별 걸 하지 않아도 나를 사랑하는 아이처럼, 나를 그렇게 마냥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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