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리 Nov 17. 2024

기대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

지난 한 주는 내 마음에 무거운 추가 달린 듯한 시간이었다.

회사에서 내가 가장 의지한 두 사람이, 내게서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내가 지난 2년 간 가장 의지하고, 많은 것을 배웠던 선배. 두려움과 불안 가득한 복직 후 회사생활에서, 꼼꼼히 업무를 지도해 주시고 업무 외적으로도 모일 거리를 만들어주며 내가 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인물이다. 나에게 필요한 가이드를 적시에 주던 그에게, 나는 팬클럽 회장을 자처하며 나섰다.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가족들과 만날 정도로 가까워졌다. 비록 올해, 그와 함께 일하며 내 부족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어 자책에 빠져있긴 했다만. 그럼에도, 앞으로도 함께 성장할 것을 기대하며 매일 업무를 함께 했다. 어느 날 아침, 옆팀 선배들이 날 보며 물었다.

“그 선배, 나간다며?”

“무슨 말씀이세요. 선배가 어딜 나가요?”

“어.. 너 몰랐어?”

선배는 퇴직을 신청했고, 빠르게 승인이 났다. 그리고 퇴직 문서가 게시판에 오른 것이었다. 나는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며 당신은 알고 있었냐 물었다. 선배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퇴직을 신청한 것이다. 선배를 어떤 얼굴로 봐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 평소보다 빠르게 선배가 출근했다. 나는 한껏 서운한 얼굴로 “선배의 퇴직 소식을 옆 팀 사람에게 들어야 되나요?”라고 쏘아붙였다.

선배는 퇴직을 할만한 충분한 사유가 있었다. 퇴직은 그에게 큰 기회였고, 잘 된 일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나에게 퇴직 고민 중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지 않은 선배에게, 하루아침에 내 일상에서 사라지게 된 선배에게 큰 서운함을 느꼈다. 일주일 후에 퇴사하는 선배를 위한 회식이 이어졌다. 회식 때마다 나는 퉁명스럽게 따져 물었다.


주말에는 친정 가족 모임에 다녀왔다. 나의 무거운 얼굴에 가족들은 근황을 물었고, 나는 내 기분을 털어놓았다. “믿고 의지하던 선배가 말없이 퇴직을 신청했어. 나는 바보처럼 회사사람에게 마음을 열었고, 의지했어.” 내 이야기를 들은 언니는 말했다. “아빠가 서울에선 아무도 믿지 말랬어. 난 그래서 서울에 올라온 이후 사람들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 않아. 그리고 너 지금 또 자책하고 있잖아. 그냥 받아들여. 일어난 일 자체와 너의 기분을.”


내 이야기를 들은 다른 선배는 말했다. “솔직히, 그 선배가 너에게 퇴직 고민을 이야기할 이유는 없어. 그 정도의 관계가 아니니까.” 나는 언니와 선배 이야기에, 또 습관처럼 자책을 해버렸다. 선배에게 많은 기대를 했다. 회사에서 업무로 만난 선후배 사이에 얼마나 많은 정서적 교감을 원한 것인지. 내가 일방적으로 많이 털어놓았을 뿐인데 상대도 그럴 것이라 기대했다.




다른 한 사람은, 동기 언니. 몇 해 전 옆팀에서 일했고, 작년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서로의 집에도 자주 왕래하며 가까이 지냈다. 나의 고민을 가감 없이 털어놓곤 했다. 그녀는 나와 달리 눈치가 빠른 사람이다. 내가 눈치 없는 행동을 하면 그러지 말라고 일러주기도 했고, 나는 그런 그녀가 고맙고 부러웠다. 우리는 너무 다른 인간이었기에 서로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거나, 상처를 주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녀를 많이 의지하고 좋아했다. 누군가에게 그녀로부터 상처받은 이야기를 하고, 상대가 그녀를 욕하려 운을 뗄 때마다 나는 황급히 말했다. “그녀를 욕하고 싶은 게 아니야. 내가 이런 행동에 상처를 받았는데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고민이야. 그녀는 좋은 사람이야.”


선배의 퇴직에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그녀가 톡을 보냈다. 내 욕이 담긴 메시지였다. 대단한 욕은 아니었지만,  나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이 담겨있었고 나에게 보내려던 메시지가 아니란 건 명백했다. 실수를 알아챈 그녀는 황급히 다른 사람 욕을 이어갔다. 적당히 대꾸하며 넘어는 갔지만, 마음속 여진이 이어졌다. 며칠간 제대로 웃지도 못하고 멍하게 그 일을 떠올렸다. 웃고는 있지만 수심이 가득한 내 얼굴을 보며 아이는 “엄마 엄마 제 얼굴 좀 보세요! 방귀방귀! 똥!”하며 나를 웃겨주려 애썼다.


남편에게 털어놓으니, 본격적인 정신 교육이 이어졌다.

너는 모든 일에, 사람에게 기대치가 높아. 특히 자기 자신에게. 그래서 요 몇 달 그토록 힘들었던 거고. 회사 사람도 마찬가지야. 자기 실익 따지고 앞뒤 다르게 말하는 사람 천지인 곳에서 너는 천연기념물 같은 사람이지. 10년 간 너의 회사생활에서 잘못된 점을 깨닫고, 너도  현명하게 살아야 해.


곰곰이 내 회사생활을 돌이켜봤다.

나는 복잡하게 살기 싫었어. 눈치 보고 살기 싫어서 내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하며 살았고, 그냥 밝은 사람이 되는 게 나에게 가장 편한 일이었어. 회사 사람들이 하는 말도 꼬아들으면 나만 피곤하고 상처받으니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했지.


남편의 정신 교육은 효과적이었다. 나는 나의 회사생활을 객관적으로 돌아보았다. 나는 두 사람이 나를 배신했다고 생각했지만, 그저 나는 과한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회사 선배, 동기인 사람에게 대단한 정서적 교감과 본딩을 바랐다. 회사를 떠나서도 내 친구로 남아주기를 기대했다. 회사에서의 관계 외에도 서로에게 특별한 친구가 되어주기를 기대했다.


나의 무거운 마음을 치유하는 일은, 타인에 대한 기대를 버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며 살아갈 뿐이다. 나 이외의 인간에게 기대한다는 것은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인가. 상대가 나를 이만큼 생각해 주고 무언가를 해줄 거라 기대하는 일 자체가 자기중심적인 것이다. 모두들 그저 자신을 바라보며 살뿐인데. 당연한 진리를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깨달음 뒤 마음이 가벼워졌다.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을 것'이라는, 높디높은 과제를 스스로에게 주지 않는다. 그저 나는 눈앞에 주어진 과제를 해결해 가면 된다.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고 살겠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마음을 열고 싶으면 열면 되고, 사랑을 주고 싶으면 주면 된다. 무엇이든 마음껏 좋아하고  조건 없이 내어주되 돌아올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내가 인정받길 바라며 일하기보다는, 주어진 일을 나만의 속도로 해결하면 되고 그렇게 묵묵히 일하다 보면 한 뼘 성장한 나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묵묵히 일하면서 누군가 나를 알아보고 인정해 주길 바라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주변을 돌아보아야 한다. 남을 의식하며 눈치만 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들을 해내야 된다는 의미다. 조직생활에서 내가 원하는 것만, 내가 하고 싶은 말 모두 뱉으며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기.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사회적인 인간이 되어야 할 때가 있다.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을 기대하지 말자. 모든 이의 사랑을 받을 필요 없다. 그저 순간을, 매일을 살아가자. 내 마음이 무거워질 틈 없이. 그저 내 앞에 펼쳐진 하루하루를 기대하고 살자. 기대하지 않을 것이란 기대를 하면서 살자.



매거진의 이전글 어둠이 아니라 그늘로 가야 할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