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 수집광의 변
키덜트 경력 10년.
사회생활을 시작해 스스로 돈을 벌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인형 수집광'이 되었다.
어딜 가든 형형색색 귀여운 인형을 판매하는 코너에 꼭 들렸고, 해외여행은 항상 인형 구입이 주목적이었다. 그렇게 점차 내 방이 온통 인형으로 가득 차게 됐을 무렵, 결혼을 하게 되어 신혼집의 방 하나를 인형방으로 꾸몄다.
인형방은 행복이다. 어릴 적 상상하고 꿈꾸던 인형이 가득한 공간. 커다란 쿠션에 등을 기대고 앉아 몇 년 간 수집해 온 나의 친구들 눈을 하나하나 바라보고 있자면 마음이 꽉 차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대부분의 어린아이들이 그렇듯 나 역시 어린 시절 원하는 장난감, 인형을 다 갖진 못했다. 어찌 보면 결핍이지만 사람은 부족함이 있어야 채워질 수 있고, 결핍이 있어야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인형을 모두 가질 수 있는 삶이었다면 인형이 가득한 방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지금의 삶은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내 인형방은 어린 시절 결핍을 겪은 모든 아이들이 꿈꾸던 '꿈의 공간'이자, '행복의 실체'다.
인형을 모으는 것은 추억이 떠나지 못하도록 붙잡아 두는 행위다. 데이트를 하거나, 여행을 갔을 때. 그러니까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에 그 행복함을 기억하기 위해 인형을 사곤 했다. 인형방에 있는 인형을 볼 때면 그 인형을 만났던 순간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언니와 단둘이 동유럽 여행을 갔을 때, 작은 마을에서 오래된 인형가게를 발견했다. 문이 닫혀 있어 유리창 너머로 빼꼼 바라보았을 때의 마음. 문 열었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가 1,2층의 인형을 한 마리 한 마리 바라보며 우리 집에 데려갈 아이를 고르던, 언니와 까르르 웃던 그 순간. 너무나 적당하게 비쳐오던 창가의 햇볕까지도 그 인형에 담겨있다. 인형은 언제나 나를 그 때 그 순간으로 데려다 놓는다.
인형은 누군가에게 헝겊쪼가리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몇 개의 헝겊과 실이 엉겨 인형이 되면 그 자체로 생명을 얻는다. 토이스토리 이야기처럼 '인형이 살아 움직인다'는 상상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인형이 처음 만들어지고 내 손에 오기까지 제법 많은 이야기들이 지나갔겠구나, 정도는 생각한다. 사람 한 명을 만나는 것은 하나의 우주를 만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처럼, 인형에도 그의 우주가 오롯이 담겨있다. 인형 하나에 거쳐간 무수한 사람들의 얼굴이 있다. 인형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내가 소장한 인형 중 절반은 빈티지 제품, 즉 중고다. 누군가 먼저 구입했다가 돌고 돌아 내게 온 것이다. 어찌 보면 찝찝하다 할 수 있지만, 인형에 남은 흔적을 보며 나름대로 상상해보는 재미도 있다. 어린 시절 인형들을 갖다 놓고 엄마니 아빠니 하며 소꿉놀이했던 그 시절처럼. 인형은 누구의 손에 들어오느냐에 따라 저마다의 이야기, 저마다의 우주를 갖게 된다.
나는 인형을 색깔 별로 진열하는 걸 좋아한다. 한 마리만 있을 때는 그저 그런 인형처럼 보이다가도, 같은 색, 비슷한 느낌의 인형들과 한 데 모이면 근사한 시너지를 낸다. 나의 수집은 인형들을 하나의 가족으로 연결시키는 작업이다. 전혀 상관없는 개별의 영화에 등장한 캐릭터, 평생 마주할 일 없을 머나먼 나라의 캐릭터들이지만 나의 인형방에서는 한 식구가 된다. 20시간 넘게 걸려 미국에서 사 온 캐릭터 인형과, 회사 앞 서점에서 사 온 곰인형이 한 데 어우러진 모습. 대량 생산된 흔하디 흔한 인형을 나만의 스토리로 엮어내는 재미는 인형 수집광만이 느낄 수 있다.
인형 수집이 내게 의미 있는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형을 모으기 전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는 그런 사람이었다. 생각 없이 술 마시고, 토하기 직전까지 맛있는 걸 먹으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러한 삶도 나름대로 재미는 있었겠지만, 귀여운 인형 모으는 행위가 내게 만족감과 행복을 준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에 몰두하기 시작하자 내 세상은 나의 인형들처럼 다채롭게 물들어갔다. 어디서든 나는 쉽게 행복을 찾을 수 있고, 힘든 일이 있어도 다시금 힘을 낼 수 있는. 회복탄력성 높은 건강한 사람이 되었다. 어디서 누굴 만나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꽤 재밌는 사람이 되었다. 존재만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을 주는 존재가 있다는 건 얼마나 행운인가.
인형 수집에 좀 더 거창한 의미를 부여해보자. 사진작가가 작품으로 시대를 기록하듯, 나의 인형 수집은 당대 문화들의 기록이다. 세월이 지나면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 하며, 이 캐릭터가 얼마나 인기 있었는지, 이 캐릭터 인형이 얼마나 다양하게 나왔는지 따위를 신나게 떠들어댈 수 있다. 인형들은 아주 귀여운 모습을 한, 시대의 기록물이다.
이런저런 거창한 이유를 갖다 붙이며 다음 달, 전시를 준비 중이다. 나의 수집품을 정식으로 세상에 공개하는 첫자리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작가들과 함께, 수집을 통해 나만의 세상을 만드는 수집가로서 전시에 참여한다. 마음속으로 좋아하는 것을 실제의 무언가로 표현하는 작품을 통해 마음속의 판타지 월드를 전시장에 구현할 예정이라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남편은 네가 직접 만든 것도 아닌데 작가라고 할 수 있냐고 했지만, 나는 이 시대의 미친 수집광, '인형 수집광이'로서 누군가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지', '누군가에겐 하찮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나만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 얼마나 재밌는 일인지'를 전하고 싶다. 인형을 수집하는 내가 그동안 얼마나 행복했고 지금 얼마나 행복한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