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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꾼의 목장 May 27. 2022

미국은 왜 총을 버리지 못하나

또 아이들이 죽었다. 얼마나 더 큰 희생을 치루어야 멈출 것인가.


오래 전 Smith and Wesson 리볼버 권총을 한 자루 가지고 있었다. 총알이 여섯 개 들어가는 총신이 짧은 38구경 모델이었는데 총알을 딱 한 발만 장전한 채 자동차 운전석 아래 넣고 다녔다. 위험한 상황이 오면 공포탄 한 발 정도 쏘고 도망갈 심산이었다. 아내에게도 말하지 않은 권총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는 1992년 4월 발발했던 LA 폭동 이후였다. 미국인들은 누구든지 권총이나 샷건 한 두 자루쯤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이 내 가족에게 닥치면 뭐라도 해야 된다는 불안감에 사게 된 권총이었다.


총을 손에 쥐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야릇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보기보다 무거워서 일단 긴장하고, 정말 이걸 쏘면 사람이 죽을까? 하는 생각부터 총을 쏘게 되는 상황이 정말 닥친다면 나는 영화에서처럼 자유자재로 총을 쏘며 나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구할 수 있겠나 하는 생각까지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신형 Smith and Wesson 22 구경 리볼버. 탄환이 열 개까지 들어간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 총을 한 번도 쏴보지 못하고 없애버렸다. 첫 번째 이유는, 어느 날 다운타운 근처에 있는 In-door 사격장에서 총알 두 케이스를 사서 사격을 해 본 이후로 권총은 위협용일 뿐이지 실전에서는 무용지물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고, 어설프게 총을 쏘다가는 오히려 총을 맞을 위험을 더 키운다는 것, 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그 총으로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일이 발생할 때 나라는 사람은 그 이후의 일을 수습할 깜냥이 안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숙달되지 않은 사람이 총신이 손가락 길이밖에 안 되는 리볼버 권총으로 25미터 정도 되는 거리에서 한 두 뼘 정도 직경의 과녁을 맞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성능이 좋은 피스톨도 마찬가지다. 두 손으로 단단히 쥐고 호흡을 멈추고 정성을 다 해 격발 해야만 한 두 발 정도 과녁 비슷한 곳에 맞을 뿐 나머지는 전부 타겟을 외면한다. 하물며 타겟이 계속 움직이는 상황이라면 하나마나 한 이야기다. 영화에서 보는 주인공들의 공중을 날아다니며 한 발씩 정확히 쏴서 맞추는 기막힌 사격술은 그냥 영화일 뿐, 실제로 총을 그렇게 잘 다루는 사람들은 없다.


어쨌든, 서른도 안 된 나이에 남들과 다른 자제력으로 총을 없앤 것은 지금으로서도 썩 잘한 일이라고 자부한다.

미국 텍사스주 남부 Uvalde Robb 초등학교에서 24일(현지시간)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으로 최소 어린이 19명과 성인 2명이 숨졌다.


잊을만하면 한 차례씩 터지는 묻지 마 총기사고가 또 발생했다. 텍사스주의 한 시골마을의 초등학교에 18세 청년이 권총과 반자동 라이플로 무장하고 들어가 수업 중이던 10살가량 되는 아이들 열아홉 명과 교사 두 명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이다. 전혀 이해관계가 없고, 방어능력이 전무한 열 살짜리 아이들이라는 데 경악하고, 술도 살 수 없는 열여덟 살짜리가 아무런 규제 없이 총을 구입할 수 있다는 데 놀란다. 자동소총으로 대충 난사한 것이 아니라 교실 안에서 한 명씩, 한 명씩 근접사격을 했다는 것에 이가 맞부딪힐 정도로 소름이 돋는다. 해당 지역인 우발데(Uvalde)는 텍사스의 대도시인 샌 안토니오에서 서쪽으로 85마일 정도 떨어진 평화로운 작은 도시이다. 학부모들과 해당 지역 사회는 너무나 큰 충격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National Center for Educational Statistics에 따르면 지난 2000년부터 2020년까지 20년간 총 886건의 학교 총기 사고가 일어났고, 그로 인해 383명이 사망하고 805명이 부상당했다. 미국의 학교 총기 사고는 3분의 2 가량이 고등학교(543건)에서 발생했지만 초등학교(175건)와 중학교(102건)에서도 결코 적지 않다. 학교 밖에서 발생하는 것까지 포함한다면 미국의 전체 총기 사고는 그야말로 엄청난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 수의 미국인들은 총기 규제에 자주적인 자기 보호 목적을 제한한다면서 적극적인 반대의 목소리를 낸다. 그렉 에보트 텍사스 주지사는 이번 사고 직후, 교사들을 무장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했고, 총기 소유자 협회는 미국의 수정헌법 2조를 들어 [개인의 총기 소유 및 휴대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총기 소지 권리는 정부도 침해할 수 없는 국민의 기본 권리이다]라는 주장을 여전히 반복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에보트 텍사스 주지사는 오는 6월 3일 텍사스에서 열릴 예정인 Gun Show (총기 박람회)에 그래도 참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현 대통령이 24일 저녁 대국민 담화를 통해 미국은 NRA와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전혀 상반되는 입장이다.


총기 소유 권리를 주장하는 이익단체인 전미총기협회(NRA)의 막강한 로비도 무시할 수 없다. 500만 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한 NRA는 워싱턴 정가에 대규모 정치자금을 후원하며 연방 및 주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한 해 교육 사업, 총기 시설, 회원 행사, 후원, 법률 활동 등에 2억 5000만 달러 이상의 예산을 쓰는 이 조직은 총기 소유권 옹호를 위해 막대한 로비 자금을 뿌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선거운동에만 3천만 달러(한화 약 342억 원) 가량을 썼다고 한다. 총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표면상 애도만 하고 아무런 행동은 하지 않는 공화당 의원들 때문에 여러 총기규제 법안들은 의회에서 잠자고 있는 현실이다. 지난해 민주당이 다수인 하원은 총기 구매자에 대한 신원조회를 강화하고 온라인 공간이나 사적 거래로 총기를 구매하는 것을 막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역시 공화당의 반대로 상원에서 좌절되었다. 2012년 26명이 사망한 코네티컷 주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사건 이후 2013년에도 상원에서는 총기 구매 시 신원조회를 강화하는 법안이 상당한 지지를 받을 것으로 보였지만 결국 56명의 찬성표로 의결정족수인 60표를 채우지 못해 발목이 잡혔다. NRA의 강력한 로비가 있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전부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라고 보인다. 과연 자신들의 가족이 피해를 당해도 그럴 것인가.

2017년 네바다주 라스베가스 콘서트장에서 인근 호텔 32층에서 64세의 남성이 자동소총을 난사해 59명이 사망하고 530명이 부상당했다.


미국의 총기 사고율이 높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개인들의 총기 소유율이 놀랄 만큼 높다. 통계에 따르면 1명당 1.25 정의 총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니, 미국인들은 인구수보다 많은 총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엄청난 숫자의 총기들이 각각의 집안에, 차 안에, 차고에, 금고에 숨겨져 있다 보니, 총기사고로 한 해 45,000 정도(2020년 기준)의 미국인들이 목숨을 잃는다. 매일 123명씩 총에 맞아 죽는다는 이야기다. 부상당하는 숫자까지 합하면 엄청나다.


두 번째는 경찰들의 무분별한 총기 사용이다. 미국의 경찰이 가진 공권력은 그들이 가지고 다니는 무기로 대변된다. 위급한 상황 시에 본인의 판단만으로 발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아무 힘없는 나이 든 거지(homeless)에게 우산을 휘두른다는 이유만으로 수십 발을 쏘아 절명시키는 것을 정당방위로 인정받을 만큼 절대적 공권력을 가졌다. 실제로 지난 2021년 한 해 동안만 1,055명이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물론 상당수가 범죄자들이었지만 단순히 소수인종이라는 이유, 명령에 불복했다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한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러한 불안감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총기 구매가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미국인들의 상당수는 경찰조차 때로는 생명을 위협하는 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세 번째는 앞에서도 언급한 헌법상의 기본 권리이다. 이 참에 대체 수정헌법 2조에 무어라 쓰여 있는지 보자.


A well regulated Militia, being necessary to the security of a free State, the right of the people to keep and bear Arms, shall not be infringed. (잘 훈련된 지역 민병대는 자유를 보장하는 주의 안전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휴대하거나 보관하는 권리를 제한당해서는 안 된다.)


이 조항이 헌법상 추가된 시기는 1700년대 말 영국과의 독립전쟁이 한창일 때였다. 당시의 미국은 아직 중앙집권 국가가 형성되기 전이므로 헌법 조항에 민병대(Militia)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이다. 미국이 독립선언을 하고 영국과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던 상황이었으니 일반 시민군이 총기를 휴대하는 것을 헌법상 개인의 권리라고 명문화한 것에 대해 당시로서는 시비를 걸 일이 아니었다.


아이러니칼하게도 미국의 50개 주의 총기 소지법은 모두 이 케케묵은 헌법 조항에 근거한다. 지금은 전시도 아니거니와 개인의 총기 휴대가 주의 안전을 보장할 리도 만무하다. 그러나 텍사스 주는 지난 2016년 결국 개인의 공공장소에서의 총기 휴대 자유를 합법화했다. 가정주부가 어깨에 총을 메고 시장을 보는 사진이 뉴스에 나왔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총으로 총을 제압하려는 발상이 수백 년 전 서부개척시대에서 한 발짝도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또 다른 이유는 –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 미국인들의 [정당방위]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다. 나는 그것을 비겁함과 잔인성으로 해석한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죽어도 좋다는 지극히 원시적인 생존 본능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국가라는 미국인들의 의식 속에 깊숙이 뿌리를 박고 있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할리우드의 대로에서 사람이 죽는 사건 하나가 일어났다. 합기도인지 쿵후인지 모를 무술 유단자인 중국인의 돌려차기 한 방에 미국인이 절명한 사건이었다. 맨손이었다고 하지만 나는 그 중국인 무술 유단자는 무기를 든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무기를 든 사람이 맨손의 사람을 죽였다면 정당방위가 아니라 분명히 살인이다. 그러나 그 사건은 정당방위로 판결이 났고, 사람들은 맨주먹 하나로 사람을 때려눕힌 그 중국인에게 열광했다. 싸움이 벌어졌을 때 말리는 사람들 없이 둥그렇게 원을 만들어 구경을 했다고 하니, 이 미개한 민족의 원초적 전투 본능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정서는 내가 이 낯선 땅에 왔을 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요즘도 이종격투기장의 링사이드에서 광분하는 그들의 야수 같은 눈빛들은 공포스럽기만 하다.


1992년 폭동이 발발했던 여러 원인들 가운데 하나가 한인이 운영하는 리커스토어에서의 총격사건이다. 물건을 훔치던 아이가 제지하던 주인을 폭행하고 밖으로 도망치던 중에 주인이 쏜 총에 뒷머리를 맞고 사망한 사건이다. 도망가는 아이의 뒷머리를 쏜 사건이 정당방위로 인정될 수 있나? 답은 이미 알겠지만 정당방위로 판결이 났다. 모두 총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지난 2016년, 텍사스주는 공공장소에서 개인의 총기 휴대 자유를 합법화했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고 했다. 전형적인 공화당 주인 텍사스는 이번 사건 이후로 총기 규제를 강화하는 쪽보다, 교사들의 총기 휴대 의무화, 교내 무장 안전요원 배치 등 더욱 강경한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는 쪽으로 여론이 기울고 있다. 나는 그렇게 되면 이제부터는 아이들이 교사의 총에 맞아 죽는 일이 생길 것이다고 단언할 수 있다. 현장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이번 사건의 범인도 전혀 전과가 없는 순박한(?) 고등학생이었다. 교사가 무장한 채 수업을 한다고? 수업시간에 말 안 듣는 말썽꾸러기 학생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교사를 상상해 보라. 소름이 끼치지 않는가?


미국인들은 이번 참사를 또 잊을 것이다. 잊지 못한 사람들은 더 많은 총을 살 것이고, 아이들은 총소리가 들리면 숨을 것이 아니라 같이 총을 빼들고 맞서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체득하며 자랄 것이다. 미국은 병들어 있다. 그 병을 고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 더 절망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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