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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RN Dec 13. 2021

정시 할까, 수시 할까

벌써 18년 전의 선택

 수능 시험 5일 전, 수시 최종 합격 통지를 받았다. 확실히 정시보다 더 나은 선택이었다. 짓눌렸던 압박감에서 해방된 기분이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다른 친구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남은 날도 등교해달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간 밀렸던 학급일지 작성을 부탁하셨다. 남은 5일 동안 MP3를 들으면서 열심히 학급일지를 정성껏 써 내려갔다.



 고등학교 3학년, 매달 모의고사를 보니 나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됐다. 내신 성적은 괜찮았지만 모의고사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나는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학생이었지만 응용력은 부족한 학생이었다.

 다행히 내신이 좋은 학생에게는 수시입학의 기회가 있었다. 어차피 떨어져도 수능을 보면 되니까 이왕 쓸 거 아슬아슬하게 커트라인에 맞춰서 3개의 학교에 지원했다. 경희대, 성균관대, 아주대 순서로 지원서를 작성했다.

 담임 선생님의 추천서가 필요했기에 면담의 시간을 가졌다. 선생님께서는 어차피 떨어질 거 괜히 마음 싱숭생숭하지 말고, 그 지원비로 반 친구들한테 아이스크림이나 사라고 하셨다. 실실 웃으면서, 그래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몇 번이나 더 질척거렸다. 선생님은 그 대신 열심히 해보는 조건으로 승낙하셨다.

 예상대로 1차 서류 전형에서 성균관대, 아주대는 바로 떨어졌다. 남은 건 경희대였다. 이마저도 1차 3 배수 커트라인에 걸린 듯했다. 2차는 논술, 3차는 면접전형이 남았다. 논술 준비를 위해 평소 보지도 않았던 책을 읽고 독후감도 써보고, 생전 처음 면접 준비도 했다. 막연한 기대였는데 준비하는 과정에서 희망이 더 선명해진 듯했다.

 2차 논술 전형은 학교에서 제시한 글을 읽고 2000자 원고지에 의견을 적어 내는 것이었다. 충격적인 건 본문이 다 영어였다. 가장 약한 분야인 영어가 나오니 눈앞이 캄캄했다. 어차피 떨어질 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하고 떨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는 단어라도 골라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DNA'  

눈에 들어온 단어는 바로 저 세 글자였다. 제한 시간이 1시간쯤으로 촉박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가만히만 있지 말자.'

 나와 DNA가 같은 쌍둥이가 있다면 나와 모든 것이 같을까?라는 주제로 글을 적어나갔다. 나름 구성을 갖춰서 서론, 본론, 결론으로 글을 적었다. 2000자 원고지의 끝을 아슬아슬하게 맞춰 글을 마쳤다. 이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수정도 불가했다.

 운 좋게도 2차도 통과했다. 마지막 관문은 면접 전형이었다. 면접은 대화하듯이 하면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데, 막상 그 순간이 오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첫 면접이었는데, 나는 말을 더듬었고, 다급한 듯 빠르게 내뱉었다. 교수님들은 이런 점을 잘 알고 계신 듯했다.

 긴장을 풀어주시며 간단한 1분 자기소개와 지원 동기를 여쭤보셨다. 그리고 즉석에서 과학 문제 5가지를 제시했다. 아무리 봐도 아는 답은 2개뿐이었다. 궁지에 몰리니 얄팍하지만 나름의 전략이 떠올랐다.


 그것은 아는 2가지 문제라도 집중해서 길게 답변을 드리는 것이었다. 교수님께서는 아는 거 알겠으니 다음 문제는 좀 짧게 해달라고 하셨다. 그래서 마지막 모르는 문제는 최대한 이해한 척 한마디로 답변했다.

 교수님들은 흐뭇해하시며 수고했다고 답변 주셨다. 전략이 먹힌 듯했다. 드디어 모든 전형이 끝이 났다. 교수님들이 지어주신 미소 덕분인지 마치 붙을 것 같다는 기분이 계속 들었다. 그리고 수능 5일 전, 정말로 최종 합격을 받게 되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서 좋은 결과로 흘러갔던 경험이었다. 수시 제도를 찾아봤던 것, 선생님께 질척거리며 추천서를 써달라고 매달렸던 것, 모르는 문제라도 최선을 다했던 것들이 행운을 가져온 게 아니었을까. 이렇게 공대생의 삶으로 가까워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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