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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RN Dec 14. 2021

화학과 갈까, 화공과 갈까

예전은 화학과, 지금은 화공과

 수능이 끝나니, 어른도 아닌 학생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되었다. 그동안 놀지 못했으니 뭐라도 하면서 놀아야 하는데 뭘 할지 몰랐다. 기회가 와도 잡지를 못하니 얼마나 비통한가. 어찌 됐든 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일단 돈을 벌면서, 하고 싶은 걸 찾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나의 첫 아르바이트는 대치동 영어 학원 조교였다. 수강생들이 지각했는지 결석했는지를 확인하고, 그날의 퀴즈 시험을 채점하고 선생님에게 피드백하는 일이었다. 인기 있는 영어 학원이라 생각보다 수강생이 엄청 많았다. 그리고 참 별난 수강생과 학부모, 선생님이 많았다.

 

 사람과 엮이는 일은 역시나 괴롭다. 아마도 같이 일한 동료가 없었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것 같다. 동료들은 나처럼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입학 전에 용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있었다. 또래 친구들이 많아서 일은 재미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급여를 주기에 좋았다. 첫 노동 수익이라 그런지 너무나 소중했다.


 2달을 일해서 번 돈으로 쇼핑도 하고 머리 염색도 하면서 탕진했다. 버는 건 길고 쓰는 건 짧았다. 아마도 이게 대학교 1학년 때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치였을 것이다. 그 당시 우리 집은 대학생 3명에, 할머니 간병비에, 대출금 등으로 가정형편이 여유롭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 1만 원으로 버텨야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껴 쓸 걸 그랬나 보다. 






 대학교 1학년을 어영부영 재미있게 놀지도, 보람 있게 보내지도 못하고 아깝게 시간을 버렸다. 성적도 그저 그랬고 앞으로 뭘 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런데 학과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나는 4개의 전공 중 1개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중, 화학과 또는 화공과로 선택지를 좁혔다. 


 화학과는 제약, 화장품 회사에서 연구직으로 일하는 선배들이 있었고, 화공과는 디스플레이, 전자 회사 등에서 생산관리직이나 영업직을 일하는 선배가 있었다. 그때는 막연하게도, 흰 가운을 입고 실험하는 미래 모습이 더 멋있어 보일 것 같아서 화학과를 선택했다. 나의 결정을 친구들에게 공유하니, 우습게도 친한 친구들도 화학과를 선택했다. 이유는 충격적이었는데, 친한 친구들이 많아서였다. 하긴 나의 선택 이유도 그다지 훌륭하지는 않았기에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화학과를 진학하는데 어려움이 하나 있었다. 연구직은 석사 이상의 학위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서, 대학원 진학을 거의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와 내 친구들은 석사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빨리 안정된 직장에 들어가서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게 목적이었다. 매년 최악의 취업난이었지만 다행히도 나를 포함한 친구들은 무사히 취업에 성공했고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게 되었다. 게다가 직군도 연구직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연구직은 모두 석사 이상을 요구하는 추세로 꼭 대학원 진학을 하기를 추천한다.)


 그 외에 화학과를 진학했던 주변 동기들은 동 대학원이나 타 대학원에 진학해서 석사를 딴 경우도 있다. 특이 케이스로 의학 전문 대학원이나 약학 전문 대학원으로 편입하여 의사나 약사가 된 경우가 있고, 전공과 아주 무관하게 승무원이 된 친구도 있다. 연구직 외에 생산관리직, 영업직으로 취업한 친구도 더러 있었다. 화학과의 정석 코스와는 거리가 있지만 이 길을 걷는 친구들도 부럽기 그지없는 삶을 사는 친구들이 있다. 화학과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화공과 친구들은 정유, 석유화학, 디스플레이, 전자, 건설, 반도체, 제약 회사 등에 생산관리나 연구직에 취업했다. 주로 생산관리가 더 많았다. 수도권 쪽에서 일하는 경우는 주로 설계 업무를 담당하고, 외부로 나갈수록 연구개발과 생산관리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설계는 스트레스가 많고, 생산관리는 오지에서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비교해보니 급여는 거의 모든 대기업이 비슷한 수준을 받는 것 같았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연봉보다는 삶의 질에 집중하게 된다. 그래서 높은 연봉을 포기하고 오지에서 벗어서 수도권의 작은 회사로 옮기거나 아예 창업하는 경우도 있다.






 나의 전공은 화학 및 신소재과학과로 선택했다. 모든 수업은 공대에서 들었다. 그래서 나는 공대생인 줄 알았다. 그런데 군 전역 후, 나의 전공은 응용화학과로 바뀌어 있었다. 이것은 아주 큰 차이를 만든다. 화학 및 신소재과학과는 공대 느낌이 나는데 반해 응용화학과는 자연과학대 느낌이 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졸업장에는 화학 및 신소재과학 공학사가 아닌 응용화학 이학사로 기재되어 있다. 실제로 취업 면접을 갔을 때, 공학사와 이학사는 질문의 결이 다르게 된다. (그 차이는 이후에 면접 후기로 적어보고자 한다.)


 그 설움을 씻을 기회로 37살에 화공과 대학원을 진학하면서 진짜 공대생이 되었다. 배우면서 느끼는 거지만 공대생이 할 일은 정말 많다는 것이다. 진로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참고가 될 수 있도록, 나의 사례를 들어, 공대생에게 주어지는 기회와 선택 그리고 결과에 대해서 글을 적고자 한다. 생각보다 다양한 기회들이 있었기에 나의 글은 공대생은 굶어 죽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단, 너무 할 일이 많아서 과로사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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