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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 Dec 23. 2022

영화 보고 글 쓰다, 영글 편집수기

(2021.02.27~2022.12.17)

홍자


  긴 시간이었다. 사실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이란 말을 쓸 것 같아서 한 번 적어봤다. 그동안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일들이 있었다. 코로나 초기에 시작한 모임이 이제 코로나와 함께 끝을 보이니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글의 정체성이자 모임 목표였던, 영화를 보고 나만의 글을 쓰는 것을 달성했다는 점이다.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영화였다. 그러나 우연히 읽고 있던 소설책의 한 문장에서 그 영화를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았다. 그런 식이었다. 영화를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을 때, 영화 외의 것들-삶, 책, 철학 등-에서 영화가 말하고 싶은 바를 이해할 수 있는 재료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설득력 있고, 공감될 만한 글로 개진시켜 나가는 과정이 그저 즐거웠다. 항상 이번이 최종본이라 생각했던 글에 또 다른 피드백이 달리고, 수정의 수정을 거듭할 때는 조금 지치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다듬어지는 내 글을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였다. 그렇게 영화를 이해하는 새로운 길을 찾고, 글의 빈틈을 메우는 과정을 통해 내 글이 완성되었다. 내 생각과 글이 영그는 시간이었다. 




레미 ; 영글을 마치며


  영화 밖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혀 영글을 제안한 것이 대략 2년 전의 일입니다. 오로지 마음으로만 시작한 일이기에 수많은 시행착오가 따랐지만 그 숙고의 시간 자체가 영글의 의미라는 것을 깨달으며 마무리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글은 다듬고 다듬어도 항상 부족한 것이지만 ‘완벽하게 준비된 때는 영원히 없다.’는 어느 영화의 대사가 생각납니다. 우리는 그저 보고 느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을 글로 옮겼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분명 있는데, 영글어 정리된 말로 내뱉지 못한 순간들이 기억납니다. 나오지 않는 재채기를 재촉하듯 생각을 곱씹으며 글을 완성했습니다. 막상 완성된 글을 세상에 내놓을 때면 재채기를 하는 것만큼 개운하진 않았지만 마음에 오래 남는 글이 되었습니다. 물론 독자에게 얼마나 깊이 닿은 글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생각하게 만들었기를 바랄 뿐입니다. 


  변화는 가시적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으며 <이름>에 대한 발화를 마칩니다. 우리의 이름처럼 영화를 느끼는 감각이 영글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영글 이전과 이후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지만 쌓인 것은 있습니다. 그것을 움켜쥐고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토디


  속이 다 시원하다. 애초에 계획했던 것과 다른 시간, 다른 모양이지만 어쨌든 끝이 났다. 영글과 함께 영화를 보고 글을 쓰면서 느낀 건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애당초 내가 영화 마니아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고, 별로 안 좋아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안 좋아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이 일을 했던 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것들을 다듬어 새로운 모양으로 빚어내는 과정이 즐거웠기 때문이며, 무엇보다도 글을 사랑하기 때문이었는데, 사실 내가 써놓은 글들을 다시 천천히 읽어 보면 또 그렇게 사랑스럽지도 않은 것 같다. 어떤 교수님이 작가와 작품은 정신적 탯줄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셨는데 내 글들은 어째 주워 온 자식 같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때 쓴 글들은 그때의 내가 쓸 수 있었던 가장 높은 수준의 글이었을 텐데. 푸념처럼 보이는 것이 유감스럽지만 이것이 내가 글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이렇게 고심해서 적는 글은 내가 남길 수 있는 가장 정제된 발자취이다. 과거의 내가 썼던 글이 사랑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지금의 내가 전보다 성장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되고, 혹 그것이 사랑스럽게 느껴진다면 그냥 그걸 사랑하면 될 일이다. 지난 2년여간의 고심이 이곳에 남아있으니 나는 언제든지 여기에 와서 아이가 벽에 대고 키를 재 보듯 내킬 때마다 내가 남긴 흔적을 들여다볼 수가 있을 것이다. 

  연말이라 그런지 하는 이야기가 꽤나 성찰적인데, 그냥 괴로웠고 동시에 즐거웠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함께 걸어와 준 팀원들과 우리 글을 한 번이라도 읽어 주신 독자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럼 안녕히!





  편집 수기를 쓰려고 하니 어쩐지 멋쩍은 마음이 더 크다. 이 수기가 영글의 마침표가 될지 쉼표가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무언가를 사랑하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일 수 있을 것 같아 기쁘다.

  영글을 하는 동안, 글은 제대로 쓰지 못했지만 그래도 내가 어떤 영화를 좋아하고 어떤 영화를 힘겨워하는지를 깨달았다. 낯설다고 생각한 무언가를 오래 통과하며 내 취향의 주름을 잡아가는 일이 생각보다 즐겁다는 걸 깨달았다. 

  2년 여의 텀이 있지만, 겨울에 시작한 영글이 겨울에 마무리되었다. 겨울도 무언가 탄생하기 좋은 계절이라는 걸 새삼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다음엔 뭐 할래 얘들아?




틸다


  벌써 겨울이다. 영글을 시작했을 때는 따뜻한 계절이었는데, 이렇게나 시간이 무색하게 흘러간다. 영글을 진행하며 써왔던 글,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 찾아다녔던 사진들, 그리고 팀원과의 토론을 통해 또 다른 이야기를 펼쳤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나는 영글을 통해 영화를 단순히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입시와 과제에 치여 영화를 영화답게 볼 수 없었던 내가 마음을 내려놓고 관객으로서 편안하게 영화를 바라볼 수 있었다. 또한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각자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마다 감회가 새로웠다. 또한, 이렇게 다들 영화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며 저절로 마음이 포근해졌다. 

  덧붙여, 우리의 글은 온도가 다른 계절을 맞이하며 글의 온도도 함께 변화했다. <윤희에게>를 쓸 때는 따뜻했고 <토니 타키타니>를 쓸 때는 차가웠다. 그렇다면, 이제 봄이 온다면 우리의 글은 또다시 어떤 온도로 변하게 될까. 기대가 된다. 





다섯 에디터의 편집 수기를 마지막으로 영글의 첫 번째 여정은 마침표를 찍습니다.

다음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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