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여다 보기 싫은 흉터가 있는가. 나는 꽤 많았다. 나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다 섯번의 이직을 하게 되었다.
주변에서 '무슨 일이 있어서 이직했냐'고 물어볼 때면 얼버부리기 바빴다. 그 과정은 내게 있어서는 실패의 과정이었고,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서 깨달았다. 상처는 감추기만 해서 나을 수 없다. 아프더라도 공기가 닿고 딱지가 앉아야 비로소 새살이 돋아난다. 나는 그렇게 과거의 나를 기꺼이 드러내기로 했다.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여러번 써봐서 어느 플랫폼에서 써야할지 가닥이 잡히는데 에세이는 도저히 모르겠다. 그래서 무작정 네이버 블로그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에세이는 처음이었다. 내 삶을 글로 옮기는 작업은 곤욕이었다. 소설을 쓸 때면 상상했던 걸 어떻게 채워넣을까에 대한 고민이었다면, 에세이는 그 방대한 사건과 감정을 어떻게 뺄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글의 양이 쌓여갈 무렵 에세이를 올릴 수 있는 플랫폼을 발견했다. 바로 여기 브런치였다.
생각해보니 처음으로 나를 '작가'로 인정해준 곳은 출판사가 아니라 브런치였다.
처음의 취지와 다르게 내 글은 변명과 자기 합리화의 일색이었다. 퇴사했던 상황들을 어떻게든 나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문제는 내가 읽어도 구차하고 지지부진한 글처럼 느껴진 것이다. 나중에는 글을 쓰는게 아니라 세상에 없어도 될 소음을 만들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처음 펜을 놓았다. 다시 글을 쓰게 한 건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내 브런치 글을 읽은 사람들이 후기를 남겨줬다. 부족하고 볼품없는 글이었는데 잘 읽었다고, 왜 다음 편은 올리지 않냐고 물어봐주었다. 그 말에 용기를 얻어 다시 펜을 들었다.
글을 쓰는 중 팔이 부러지는 사고도 있었다. 복합 골절이라 왼 손 하나로 작업을 해야했다. 그럼에도 끝까지 목표한 분량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자 욕심이 생겼다. 어떤 형태로든 책으로 펴내고 싶어진 것이다. 브런치는 출판사에서 종종 컨택을 한다고 했기에 연재 중 기대한 것도 사실이이었다. 하지만 출판사 컨택은 없었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책을 펴내고 싶었다. 두 가지 방식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출판사 투고였고 두 번째는 전자책 출간이었다. 후자는 허들이 낮았고, 언제든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나는 최대한 많은 출판사에 투고를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전자책을 출간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투고를 받는다는 출판사에는 전부 이메일을 보내봤다. 대부분의 출판사는 이메일을 읽지도 않는다. 한 달쯤 시간이 지났을까. 한 출판사에서 함께 일을 해보자는 제안을 해왔다. 독립 출판도 아니었고, 계약금도 준다고 했다. 나는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1월부터 시작된 탈고 작업은 3월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끊임 없는 수정의 과정이었다.
나를 가장 괴롭히는 건 과거의 나 였다.
나는 왜 이런 거지 발싸개 같은 글을 써놨을까.
수정하고 다시 쳐다보면 새똥 만도 못한 글이다.
수정하고 다시 쳐다보면 여전히 쓰레기 통에 있는 휴지 같은 글이다.
수정하고 다시 쳐다보면 길 가에 굴러다니는 돌 같은 글이다.
몇 번을 수정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이제야 좀 봐줄만한 글이 된 것 같을 때는 출판사도 더 이상 못기다려 준다는 말을 해왔다.
"이제는 출간 하셔야해요."
여전히 부끄러운 글이었지만 세상에 선보여야할 순간이 온 것이다.
교보/YES24/알라딘에서 22일까지 예약판매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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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쓰면서 신기한 일들이 많았다.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연이 끊어졌다고 생각한 에세이 속 인물들과 연락이 닿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한 것 보다 더 많은 분들이 응원의 메세지를 전했다. 부족한 글을 재밌다며 용기를 북돋아 줬다. 세상은 상상 이상으로 따뜻하다.
예상치 못한 분들이 출간을 축하해주셨고, 통 큰 구매 행렬에 동참해줬다. 정말 감사하다.
출간까지의 과정은 정말 고통스러웠다. 창작은 뼈를 깎는 고통이라고 하는데, 퇴고는 창자를 끊는 괴로움이었다. 하지만 결과물을 보니, 그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보상 받았다. 1분의 보상이 몇 년의 실패를 보상한다 했던가. 참으로 진실이다.
책 출간 소식을 알리면 주변에서 꽤 많은 분들이 자신도 책을 내고 싶어했다고 고백을 해왔다.
갑자기 분위기 고백타임. 나에게 이런 저런 조언을 구하는데, 내가 한 조언은 단 하나였다. 지금부터 글을 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