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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진영 Jul 13. 2021

2018 봄


[삿포로 1]
삿포로의 새까만 밤을 혼자서 걸었다.
눈, 거기 파묻힌 내 발, 입김, 드문드문 섬 같아 보이던 가로등 불빛.
외곽의 모에레누마 공원에서 돌아오는 길, 돌아오는 버스가 끊겨 시내까지 두 시간을 걸었다.
영화 러브레터의 오프닝이자, 이츠키의 기일에 울리던 'His smile'을 도시락 와이파이로 들으면서

[러브레터 1]
삿포로를 간 이유
영화 러브레터가 너무 재미있고 한동안 마음에서 떠나지를 않아서
눈이란 것은 쌓일수록 아래는 단단해지고 녹지를 않아
새로이 위로 쌓이는 것들에 가려질 뿐, 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내리고 흐르고 사라지는 비가 스쳐가는 인연들이라면
눈은 잠시 잊고 있을 뿐, 마음 깊이 자리하고 있는 지난 인연들 같아서
한 사람의 마음의 계절이 새로워지지 않는 이상 걷어낼 수가 없는 것들이 있다는 걸 문득 느껴서

나 너 우리의 계절은 기다리면 오는 것이고, 기다려줘야 하는 것임을 나는 안다.

[삿포로 2]

눈은 내리까는 것의 흔적을 식사하고 적막을 배설한다.
영화를 본 이후로 눈은 설렘보다는 침착한 우울이었다.
삿포로에선 오늘 이만큼 눈이 녹으면, 내일 다시 이만큼 눈이 내렸다.
빨리 아래의 것들을 녹여내야 하는데, 젖어가는 발걸음처럼 조바심이 들던 밤.

[러브레터 2]

여주인공 히로코의 마음은 설원이고, 죽은 후지이는 그녀가 맞은 첫눈이었다.
새로이 깔린 눈 탓에 아주 잠깐 잊고 지냈던
모종의 이유로 그의 흔적을 찾다 삿포로의 설원에 도착한 히로코는 뒤늦게 안부를 메아리로 울린다.
그녀의 마음에 봄이 찾아오길 기다리는 새로운 사람과 함께.
가장 아래의 것들을 마주해야 그것들을 녹일 수 있다.
삿포로 혹은 자신의 마음에 종착한 히로코의 울림은 땅 가장 가까이 내렸던 눈까지 닿았을까?
눈이 녹으면 봄이 온다던 누구의 시처럼 삿포로에 봄은 왔을까?

[2018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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