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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Dec 03. 2023

서로의 숨이 된다는 건


서로의 한숨이 아닌, 숨이 된다는 건 무얼까. 서로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가는 것일까. 어떤 존재로 다가가는 것일까. 어떻게 서로를 나누는 것일까.


   연말이 되면, 뭇 비정규직들은 생각이 많아진다. 특히 사업비로 채용된 이들은 더 그렇다. 어느 기관이든 내년에 너를 또 써주겠다는 장담을 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이맘때쯤, 우린 내년에 내가 있을 곳은 어디인지, 어떻게 또 한 해를 꾸려가야 할지 고민에 빠지곤 한다.


   독감에 걸려, 반나절 하고 이틀을 나오질 못했다. 그사이 부서에서는 D라마틱한 변화가 꽤 많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 내게 온전히 공유된 사항은 없었다. 그저 알음알음 눈치로 알아챌 뿐이었다.


   지난 잔기지떡 사건 이후, (참고: 잔기지떡이 아닙니다. 인간입니다. #예순여덟번째 글 참고) 나는 극강의 예민함과 소심함을 장착하게 됐다. 별거 아닌 이야기에도 혼자 빈정이 상하고, 위축되곤 했다. 심지어 물건을 잘 고르고, 체험학습 때 갈 식당을 잘 고른다는 칭찬조차 고깝게 들릴 지경이었다.


   그런 마음을 나또 님께 출근길에 잠깐 토로했더니, 진단은 역시나 같았다. 당신이 지나치게 예민한 것이라고, 상대방은 별거 아닐 테니,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란다. 역시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니, 감정마저 정상인의 범주를 다소 벗어나나 싶었다.


   어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나와 함께 일하는 강사 선생님이셨다. 이야기할 곳이 나밖에 없어서 쉬셔야 하는데, 죄송함을 무릅쓰고 전화를 하셨단다. 선생님의 고민과 최근 느끼는 감정이 나와 똑 닮아있었다.


   내년에 저는 여기 계속 있나요. 그건 제가 아이들을 못 가르쳤단 건가요. 저는 언제까지 있는 건가요. 저는 결국 그 시간에 필요 없는 거죠.


   안타까운 건, 그저 내가 하는 말이라곤, 죄송하다는 것. 그리고 사실, 저도 그래요, 선생님.  제가 뭔가를 해 드리고 싶은데 해 드릴 게 없네요. 이런 대답뿐이었다는 거였다.


   사실 내 인건비가 부족해져서, 이분들의 인건비를 뺏어와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었다. 그 상황만큼은 최후의 보루로 미뤄두고 싶었다. 그저 그런 상황을 만든 모든 것들에 화만 내곤 했다.


   결과적으로 그런 상황까지 치닫지는 않았다. 다만, 그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면서, 나 또한 어느 임계점이 지나면, 저렇게 제일 먼저 버려지는 카드가 되리라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그저 나의 쓸모란 역시 잔기지떡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 말이다.   


   그렇게 우린 그저 서로의 한숨을 나누었다. 명확한 해결책도, 찬란한 비전도 안겨드리지 못했다. 그저 한숨과 한숨이 맞닿을 뿐이었다.


   한숨을 나눴을 뿐인데,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꼭 서로의 숨을 나눈 기분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숨이 되어준 시간이었다.


   어쩌면, 서로에게 숨이 되어준다는 건, 이렇게 한숨을 나누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너의 한숨을 나의 한숨처럼 받아들여 주는 것. 너의 한숨이 나의 한숨이 되고, 서로의 한숨이 되어, 서로를 보듬는 것 말이다.


   누군가의 한숨이 되고 싶다. 아니, 그 한숨을 오롯이 품어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 그게 어쩌면 서로에게 숨이 되어주는 일일 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서로에게 숨이 되어주는, 그런 한숨이 되려 한다, 나는.



추신: 여담이지만, 선생님과의 통화 이후, 나또 님께 전화할 일이 생겼다. 내가 예민했던 건 아니었다고 말하려, 선생님과의 시간을 이야기했다. 나또 님 왈, 그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존재가 된 것에 감사해야 한단다. 역시 나또 님이다.


#쓰고뱉다

#100일의글쓰기시즌2

#아흔번째

#D라마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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