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학 #11
#1. 미국
공공외교(Public Diplomacy)라는 용어는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 만들어졌으나 미국에서는 그 이전에도 공공외교로 볼 수 있는 정책들이 곧잘 시행되었다. 1948년 해리 S. 트루먼 행정부는 스미스-문트법(Smith-Mundt Act)을 제정했다. 미국의 대외 공보 정책이나 문화 정책 등을 모두 국무부의 소관으로 하여 국무장관의 지휘를 받도록 한 것인데, 미국에 대한 외국 대중의 이해도를 높이는 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함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법의 적용 대상이 외국 대중이라는 점을 확실히 하기 위해 미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게는 공공외교 활동을 펼칠 수 없도록 규정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초창기의 공공외교 정책은 오늘날의 것과 사뭇 달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스미스-문트법은 해외공보처(USIA)라는 공공외교 전담 기관을 설치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는데,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행정부 시기 실제로 설치되어 오늘날까지 운영되고 있다.
해외공보처는 상당한 부침을 겪은 것으로 유명하다. 1990년대 초반 소련의 붕괴로 말미암아 탈냉전의 시대가 도래하자 공공외교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 (당시에는 공공외교가 프로파간다의 동의어로 쓰였으므로, 이 말은 곧 탈냉전의 시대가 도래하자 프로파간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는 말과 같다.) 그러자 빌 클린턴 행정부는 1998년 외무개혁/구조조정법을 제정해 해외공보처와 국무부를 통합했다. 당시 해외공보처는 연 9억 달러 상당의 예산을 집행하고 약 1만 2천 명의 직원을 관리하는 거대 부처였다. 공공외교를 책임지는 거대 부처를 하루아침에 폐지한 근거는 아이러니하게도 공공외교의 발전을 위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의 외교를 총괄하는 부처가 국무부이므로 공공외교를 총괄하는 부처 또한 국무부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였는데, 언뜻 보기에 설득력이 있어 보이나 실상은 많은 예산과 인력을 잡아먹는 공공외교라는 괴물을 처치하고 싶었던 정치인들의 술수에 불과했다.
9.11 테러 이후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거치며 미국의 국가 브랜드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어 공공외교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미국 행정부는 국무부에 공공외교 및 공보담당 차관직을 신설했다. 또 공공외교특사라는 직책을 신설해 국무장관의 임명을 받도록 하고 정부의 주요 인사가 외국을 방문할 때 동행해 외국 대중을 만나도록 했다. 미국 행정부가 공공외교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2010년,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이 내놓은 4개년 외교/개발 검토보고서이다. 여기에서 그녀는 미국 외교정책의 두 축이 Military Power로 대표되는 경성권력과 Civilian Power로 대표되는 연성권력이라고 이야기하며, 전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성권력과 연성권력을 적절히 합친 Smart Power를 발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Smart Power라는 개념은 국제정치학자인 조지프 나이에 의해 1990년대에 등장한 것으로,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이르러 많은 주목을 받았다.
#2. 일본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처참히 패배한 과거가 무색하게도 서방 국가의 풍부한 지원 아래에서 경제성장을 거듭했다. 1960년대에는 10%대, 1970년대와 80년대에도 5~8%대의 경제성장을 지속하며 어느덧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어 미국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당시 미국은 고물가, 저성장이 계속되어 높은 실업률과 무역 부진에 시달렸는데 특히 대일 무역에서 많은 적자를 보았다. 반도체 등 고부가가치 산업의 주도권 또한 일본이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와 중국마저 경제성장을 지속하자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이 동북아시아 3국의 국가 모델을 적극적으로 참고해야 한다는 발전국가론마저 등장했다. 미국 내에서는 동북아시아 3국 중 가장 선두에 있는 일본이 미국의 가장 큰 위협이자 적이라는 인식이 퍼졌다. 그 결과로 미국은 1985년의 플라자 합의와 같이 노골적으로 일본산 제품의 제품 및 가격 경쟁력을 훼손하는 전략을 펼쳤고, 일본은 이로 말미암은 경제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무리하게 부동산과 주식 시장의 규모를 키우다가 이것이 한꺼번에 붕괴하며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이것이 그 유명한 버블경제(Japanese Asset Price Bubble)이며, 잃어버린 10년의 시작이다. (일본의 불황은 10년 이상 계속되고 있기에 잃어버린 30년으로 부르는 사람들도 다수 있다.)
계속되는 불황으로 본격적인 저성장 시대에 진입한 일본은 더 이상 경성권력만으로 국제사회의 중추국가로 도약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 게다가 오랜 불황을 겪으며 일본의 국가 브랜드 이미지 또한 많은 타격을 받은 상태였다. 실패한 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고자 일본은 연성권력과 관련한 외교자산을 많이 마련해 훌륭한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펼치고 있다. 일본의 공공외교는 외무성의 대신관방(우리나라의 차관보급 직책) 산하에 있는 외무보도관실에서 관리한다. 한편 구체적인 사업은 해외공보문화원과 일본국제교류기금에서 주로 집행한다. 이렇게 기획부터 집행, 관리의 역할이 한 곳에 집중되지 않고 분산되어 있는 것은 일본의 관료제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다. 일본은 공공외교뿐 아니라 개발협력(ODA) 분야 등에서도 분산된 체계를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체계는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빠르게 책임의 소재를 파악해 상황을 해결하기 수월하고 각 부처에서 특화된 사업을 발굴해 추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한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는 큰 단점이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일본 정부에 공공외교 정책을 총괄하는 부처를 따로 설치하여 체계를 일원화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3. 중국
과거에 일본이 미국의 적으로 규정되어 많은 공격을 받았듯이 오늘날에는 중국이 미국을 넘어 서방 국가들의 적으로 규정되어 많은 공격을 받고 있다. 그러자 중국 또한 이른바 중국위협론을 불식시키기 위해 공공외교를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중국은 주변 국가들의 주권과 평화를 수호하고 국제사회가 맞닥뜨린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장서는 책임 있는 대국(大國)의 역할을 맡겠다는 책임대국론과 새로운 초강대국, 이른바 G1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평화와 협력을 지향한다는 평화부상론을 스스로 생산해 퍼뜨리는 방식으로 공공외교를 실천하고 있다. 2010년,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이 공공외교를 주요 대외전략 중 하나로 삼겠다고 선언한 이래로 중국은 2012년에 중국어를 보급하고 중국 문화의 확산에 힘쓰는 중국공공외교협회를 설립하는 등 공공외교 정책을 힘있게 펼치고 있다. 특히 2004년에 첫 선을 보인 공자학원 사업은 크게 성공하여 현재 약 110개국에 450여개소를 두어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공자학원은 단순히 외국 현지에서 중국의 공공외교 정책을 시행하는 기관이 아니라 정보기관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외국의 주요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중국 정부에 전송하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어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공자학원을 퇴출시키고 있다. 중국의 공공외교는 지나치게 국익 중심적이고 정부 및 당 주도적인지라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중국은 보유한 경성권력 자산에 비해 연성권력 자산이 매우 부실하고 또 적으며 일대일로 사업, 동북공정 등으로 인해 국가의 브랜드 이미지 또한 좋지 않은 편이다. 진정한 공공외교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미지를 개선하고 양질의 연성권력 자산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펼쳐야 할 것이다.
#4. 프랑스
공공외교를 논할 때 프랑스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문화외교를 시행하여 오늘날까지 가장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2010년에 공공외교 정책을 총괄하는 부처로 전략방향위원회를 설치하고 2011년에는 프랑스어를 보급하고 프랑스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는 인스티튜트 프랑세 등을 차례로 설립했다. 인스티튜트 프랑세는 개발도상국의 문화예술산업을 지원하고 또 직접 영화를 배급하기도 하는 등 개발협력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영국과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국가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영연방(Common Wealth)와 같이 프랑스도 과거 식민지였던 국가들을 중심으로 프랑스어 공동체인 프랑코포니(La Francophonie)를 조직해 운영하고 있는데 이 프랑코포니의 회원국을 중심으로 공공외교 사업을 집행하기도 한다. 프랑코포니의 회원국을 대상으로 프랑스어 교육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알리앙스 프랑세가 대표적이다. 프랑코포니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프랑스는 디아스포라 외교를 펼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이러한 디아스포라 외교가 오늘날에 이르러 각광받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프랑스는 이 분야에서도 몇 발자국이나 앞서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