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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핵폭탄과 유도탄들 Jun 25. 2023

미국의 외교에서 행정부와 입법부

미국의 외교와 외교정책 #2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답게 삼권분립을 지향한다. 따라서 외교와 관련한 권한을 대통령이 이끄는 행정부와 입법부인 의회가 나눠 가지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미국의 헌법은 대통령군을 통수하고 조약과 행정협정을 체결할 수 있으며 대사(embassador) 등 외교사절을 임명하거나 외국의 정부를 승인하고 외국의 외교사절을 접수하거나 신임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의회에 관해서는 입법권을 가지고 조약을 체결하거나 외교사절, 특히 대사를 임명할 때 동의권을 가지며 선전포고 등 군사 및 국방과 관련한 권한예산결의권을 가진다고 밝히고 있다. 가만히 살펴보면 일방이 일방의 권한과 권한의 행사를 적절히 견제할 수 있는 장치들을 치밀하게 마련해두었음을 알 수 있다. 외교와 관련하여서도 조약을 체결할 때와 외교사절을 임명할 때, 외국과 전쟁을 벌일 때 행정부와 입법부가 가지는 권한을 확실히 분리해두었다. 특히 조약의 체결 및 비준에 동의할 수 있는 권한은 의회가 가진 강력한 권한들 중 하나이다. (조약의 체결은 체결권을 가진 대통령이 직접 하는 것이고, 조약의 비준은 체결권을 위임받은 이가 체결한 조약을 검토하는 것이다.) 상원의원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지 못할 경우 조약의 체결 및 비준이 무효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또 대통령이 군의 통수권을 가지는 대신 의회가 선전포고할 권리와 병력을 모집할 권리, 부대를 지원하고 군령을 제정할 권리 등 군사 및 국방과 관련한 대부분의 권한을 가져 행정부가 독단적으로 무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의회는 예산결의권마저 가지기 때문에 전쟁과 관련한 예산을 편성할 권한까지 가진다.


그러나 미국의 의회는 행정부가 독단적으로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대부분 방관했다. 건국 이래 1971년까지 미군은 150회 이상 해외에 파병되어 전투 임무를 수행했는데, 이 중 의회가 개입한 사례는 1812년의 미국-영국 전쟁과 1864년의 미국-멕시코 전쟁, 1898년의 미국-스페인 전쟁과 양차 대전, 이렇게 다섯 차례뿐이며 이마저도 선전포고를 전송하는 일에 관여했을 뿐 전쟁과 관련한 모든 제반사항을 검토하고 집행할 권한은 행정부에 위임했다. 1970년대 초에 이르러 관행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리처드 닉슨 행정부는 십수 년간 펼쳐온 베트남 전쟁(1955-1975, 미군은 1973년 3월까지 완전 철수)에서의 패배를 인정했다. 그러자 엄청난 후폭풍이 불어닥쳤다. 초강대국의 자존심을 구긴 것은 물론 반전(反戰) 여론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밀어붙인 대가로 많은 젊은이의 희생과 대중의 상처를 받아들었다. 행정부의 권위가 땅으로 추락하자 의회는 1974년, 닉슨에게 의회예산국(CBO)을 신설하는 법안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 닉슨은 이 요구를 수용했고, 덕분에 의회는 행정부가 제출하는 예산안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예산안을 수립하고 심의해 의결할 수 있게 되었다. 예산에 있어서 그야말로 초월적인 권한을 확보한 것이다. 또 의회는 그동안 싱크탱크(Think Tank)로 존재했던 의회도서관의 입법참조국을 의회조사국(CRS)으로 개칭하여 매년 정책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함으로써 행정부의 정책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외교정책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행정부, 그 중에서도 대통령이 가지는 외교에서의 불가침성을 무너뜨린 것이다.


대통령이 가지는 외교에서의 불가침성,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1936년에 연방대법원이 내린 판결인 미합중국 대 커티스 사 판결(United States vs. Curtiss-Wright Export Corporation)이다. 당시 커티스 사는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사이에 벌어진 전쟁에 개입하여 양국에 모두 무기를 팔고자 했다. 이를 사전에 안 미국 정부는 압력을 행사해 커티스 사가 무기를 팔지 못하도록 막았고 커티스 사는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연방대법원은 미국 정부가 커티스 사에 행사한 압력은 외교적인 것인데, 대통령이 가지는 외교에 관한 권한은 과거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영국의 국왕으로부터 넘겨받은 것에 해당하므로 내정에 관한 기타 권한과 그 결이 다르며 따라서 헌법이나 법률이 대통령의 외교를 제한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를 통해 미국 정부가 커티스 사를 상대로 압력을 행사한 것은 정당해졌다. 해당 판결이 있은 후 의회는 판결을 존중해 행정부가 가지는 막대한 외교권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행정부를 견제하기 위한 마땅한 수를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앞서 보았듯 리처드 닉슨 행정부 시기에 이르러 노력이 빛을 보았다.


1972년, 의회는 케이스-자블로키 법(Case-Zablocki Act)을 제정해 대통령이 행정협정을 체결할 때 그 내용을 60일 이내에 하원에 속한 외교관계위원회와 상원에 속한 국제관계위원회에 통보하게 했다. 그동안 좌시하던 외교 문제에 의회도 목소리를 얹겠다고 선언한 셈이었다. 1973년에는 전쟁권한법(War Powers Act)를 제정해 대통령이 의회의 승인이 없이도 군대를 동원할 수 있는 기간을 (철수하는 기간을 포함해) 최장 90일로 제한했고 군대를 투입할 때는 의회와 협의하도록 했으며 투입하고 48시간 이내에 의회에 직접 보고하도록 했다. 또 선전포고를 완전히 의회의 권한으로 못박아 행정부가 간섭할 수 없도록 했다. 1974년에 앞서 본 의회예산국의 신설과 입법참조국의 의회조사국으로의 개칭 및 권한 확대가 이루어졌으며 1978년에는 케이스-자블로키 법을 강화해 행정협정과 같은 서면협정뿐 아니라 대통령이 말로 한 구두협정까지 의회의 두 위원회에 통보하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1980년에 정보감시법(Intelligence Oversight)을 제정하여 행정부가 설령 비밀리에 행한 조치라고 할지라도 의회의 유관 위원회에는 그 내용을 숨김없이 통보하도록 하여 행정부의 불가침성을 대폭 축소했다. 이상의 변화를 통해 역사적 상황에 따라 미국 행정부와 입법부의 위계와 그들이 가지는 권한의 범위 및 영향력이 변화해왔음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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