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핵폭탄과 유도탄들 Jun 25. 2023

미국의 외교이념

미국의 외교와 외교정책 #3

미국의 외교를 표현하는 두 개의 키워드로 외교 일방주의와 군사 조급증을 제시했었다. 그러나 미국이 건국 이후 25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외교 일방주의와 군사 조급증으로 대표되는 모습만 보여주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시간대에 따라, 또 행정부와 집권정당의 이념에 따라, 시대를 대표하는 학파에 따라 미국의 외교에 담긴 이념은 달라져왔다. 그렇다면 미국의 외교이념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1. 미국 예외주의(America Exceptionalism)

미국은 다른 국가들과 뚜렷하게 구분된다는 인식이 담겨있는 이념으로, 선민(先民)사상과 비슷하다. 미국이 스스로 다른 국가들과 구분된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먼저 종교이다. 미국은 영국에 거주하다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한 청교도(Puritans)와 그 후예들에 의해 세워졌다. 청교도는 신이 자신들에게 특별한 숙명(Manifest Destiny)을 안겼다고 믿는데, 그들이 영국에서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해 미국을 건국한 것 또한 특별한 숙명에 해당한다고 여긴다. 따라서 신이 부여한 숙명에 따라 건국한 미국은 다른 국가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정치이다. 오늘날 많은 국가의 정체(政體)가 대통령제를 기반으로 한 민주공화제이거나, 적어도 민주공화제에 해당한다. 미국은 세계 최초로 대통령제를 도입한 국가이다. 또 미국은 민주주의의 발상지는 아니지만 민주주의의 발전과 확산에 혁혁한 공을 세운 국가임에는 틀림없다. 따라서 미국은 스스로 세계의 정치를 선도하고 있다고 믿으며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마지막으로 지리이다. 미국은 자원이 넘치는 넓은 국토를 가지고 있으며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위치에 놓여있어 오랜 시간 큰 위기 없이 발전할 수 있었다. 미국인들은 위치마저 신이 점지해주었다고 믿게 되었다. 종교, 정치, 지리, 이렇게 세 근거가 시너지를 발휘한 결과물이 바로 미국 예외주의이다.


#2. 월터 러셀 미드가 제시한 외교이념 네 가지

월터 러셀 미드는 미국 외교사를 관통하는 외교이념을 크게 네 가지로 제시하였으며, 미국을 대표하는 위인의 성을 따서 각각의 이름을 지었다.


1) 해밀턴주의: 알렉산더 해밀턴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의 성을 따 이름 지어진 해밀턴주의는 1790년대를 대표하는 외교이념이다.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워 강력한 힘을 가진 중앙정부가 경제적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외교정책을 마련해 집행하고 통제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해밀턴주의자들은 사회 기반 시설을 육성해 경제성장의 초석을 다지고 보호무역을 시행해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할 것을 주문하는데, 이를 통해 해밀턴주의가 중상주의와 굉장히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 제퍼슨주의: 토머스 제퍼슨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이었던 토머스 제퍼슨의 성을 따 이름 지어진 제퍼슨주의는 해밀턴주의와 대척점에 서 있는 외교이념이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모든 것을 통제하는 정부를 소위 큰 정부(Big Government)라고 하는데, 제퍼슨주의자들은 큰 정부보다 모든 유형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사회 시스템에 내재된 보이지 않는 법칙에 운명을 맡기는 작은 정부(Small Government)를 지향한다. 대외적으로도 불간섭주의중립주의를 견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3) 윌슨주의: 우드로 윌슨

미국의 제28대 대통령이었던 우드로 윌슨의 성을 따 이름 지어진 윌슨주의는 20세기 초반에 등장해 전간기에 급부상했던 외교이념이다. 윌슨주의자들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라고 하는 가치를 세계에 전파하는 것을 미국, 그리고 미국과 뜻을 같이 하는 국가들의 거룩한 책임이라 여기며 이를 위해 세계 각국이 협력하고 각자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와 많이 닮아있다.


4) 잭슨주의: 앤드류 잭슨

미국의 제7대 대통령이었던 앤드류 잭슨의 성을 따 이름 지어진 잭슨주의는 외교적 일방주의와 닮은 외교이념이다. 잭슨주의자들은 미국의 이익과 명예를 지키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며, 이를 위협하는 세력이 있을 경우 그 세력을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때 가하는 응징은 회복할 틈이 없을 정도로 신속해야 하며 또 다른 적이 나타날 엄두조차 못 내도록 강력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앞서 살펴본 윌슨주의와 잭슨주의를 하나로 묶어 미국의 전통적인 외교이념의 전형이라고 설명한다.


#3. 현실주의와 자유주의, 국제주의와 고립주의의 짝짓기

외교이념은 현실주의와 자유주의, 국제주의와 고립주의가 서로 짝을 짓는 과정에서 분화하기도 한다. 현실주의와 자유주의에는 방법에 관한 내용이, 국제주의와 고립주의에는 범위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는데 설명하는 내용을 읽어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 현실주의적 국제주의

미국적 가치, 즉 신자유주의민주주의를 전 세계로 확산시켜야 하며, 이 과정에서 무력 또한 기꺼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는 외교이념이다. 보통 공화당의 전통적인 이념으로 일컬어진다. 현실주의적 국제주의자들은 세력균형군비 증강에 많은 관심을 가진다. 제국주의가 횡행하던 19세기와 20세기에 미국이 고립주의에서 벗어나 대외팽창으로 노선을 바꾸는 데 영향을 주었다. 또한 소련 등 공산권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 시행된 봉쇄정책(Containment Policy)에도 영향을 주었다.


2) 현실주의적 고립주의

미국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군비 증강에 뛰어드는 것은 필요하나 미국적 가치의 확산을 위해 외국에 개입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보는 외교이념이다. 현실주의적 고립주의자들은 반드시 개입해야 하는 지역, 즉 개입하지 않으면 미국의 이익에 막대한 손해를 가져올 수 있는 지역만 골라 선별적으로 개입할 것을 주장하며 자유무역을 반대하고 보호무역을 통해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3)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현실주의적 국제주의와 마찬가지로 미국적 가치를 전 세계로 확산시켜야 한다고 보지만, 이 과정에서 무력이 아닌 교류와 협력이라는 외교적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보는 외교이념이다. 보통 민주당의 전통적인 이념으로 일컬어진다. 민주당 출신 대통령들은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의 입장을 견지한 평화적인 정책을 많이 내놓았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전간기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 LN)을 창설해 다자기구의 초석을 놓았고, 지미 카터 대통령과 빌 클린턴 대통령은 인권의 국제정치를 강조하고 군축에 동참했다.


4) 자유주의적 고립주의

다자주의에 입각해 외국과의 교류와 협력을 지속하되 미국적 가치의 확산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히려 미국 안에서 가치의 고도화를 꾀해야 한다고 보는 외교이념이다. 군축에 찬성하지만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에서 말하는 것처럼 미국적 가치를 확산시키기 위해 솔선수범의 차원에서 행하는 군축에 반대하며 미국 안에서 자유와 평등, 인권을 증진하기 위해 국방 예산을 복지 예산에 투입하고자 행하는 군축을 지향한다. 1823년, 미국이 유럽의 팽창정책으로부터 대륙을 보호하기 위해 택했던 먼로 독트린(=유럽 대륙 불가침 선언)에 자유주의적 고립주의의 정신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미국의 외교에서 행정부와 입법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