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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석 Jul 25. 2021

네 잘못이 아니야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생 때 이혼했다. 나는 그 이후로 형과 함께 쭉 어머니와 살았다. 주위를 둘러보면 행복하게 사는 편부모 가정도 많은 것 같지만, 우리 가족은 꽤나 불행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꽤 오랜 시간 동안 힘들어했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어머니는 무너져버린 당신의 삶을 지탱하기도 벅찼을 것이다. 남들처럼 화목한 가정까지 만들기에는 어머니가 짊어져야 할 짐이 너무도 많았다. 어렸을 때 틀어져버린 가족관계는 쉽게 되돌아오지 않았다. 대화는 점점 줄어들고 오해는 쌓여갔다. 대화가 없으니 웃음도 사라졌다. 서로 자신을 돌보느라 바빠서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도 사치가 되어버렸다.


이혼의 원인은 아버지가 제공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싫었다. 아버지의 잘못으로 행복한 가정이 사라져 버렸으니까. 내 인생에 한 가지 궁극적 목표가 있었다고 한다면 아버지처럼 살지 않는 것이었다. 학교 다닐 때 자기소개서에 '존경하는 인물'을 쓰는 칸이 있으면 아버지라고 쓰는 애들이 항상 부러웠다. 그 애들은 무슨 노력을 했기에 자랑스러운 아버지를 가질 수 있었을까? 반면에 나는 도대체 뭘 잘못했기에 남들 다 있는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없는 걸까? 내가 전생에 큰 잘못을 저질러서 누군가가 뺏어간 걸까? 누구나 존경하는 인물에 세종대왕을 쓸 수는 있다. 하지만 존경하는 인물에 아버지를 쓸 수 있는 건, 누군가에겐 특권이고, 나에겐 결핍이자 핸디캡이었다. 이런 식으로 하나둘씩, 어느샌가 나는 인생에 핸디캡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핸디캡이라는 사실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가끔은 하늘에 대고 물었다. '누군가 있다면 대답해주세요.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요?'라고.


나는 결핍이 치유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어딘가 마음에 큰 구멍이 뚫린 사람처럼 뒤틀린 구석이 많다. 대표적인 게 결혼관이다. 나는 내가 언젠가 결혼을 할 거라는 사실이 두려웠다. 결혼을 하면 내가 아버지가 되고 누군가의 남편이 될 텐데, 나는 아버지 같은 아버지가 되기 싫었다. 아버지 같은 남편이 되기 싫었다. 나는 의문이었다. 애초에 행복한 가정을 느껴본 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단 말인가? 나중에 내가 자식을 낳는다면, 좋은 아버지를 겪어 본 적이 없는 내가 어떻게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그리고 무서웠다. 안 좋은 아버지밖에 본 적이 없어서, 혹시 나도 안 좋은 아버지가 될까 봐.


내 주변에 결혼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가정이 화목하다는 것이다. 일 년에 한두 번씩 가족여행을 가고, 가족 카톡방이 있어서 사소한 일도 서로 공유한다. 그리고 가족들끼리 기쁨과 슬픔을 나눈다. 그래서 사사로운 일을 공유하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데 익숙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한테 내 가정사를 숨기라고 배웠다. 너를 드러내다간 불행한 가정의 모습이 튀어나올지도 모르니, 그저 숨기라고만 배웠다. 아마도 어머니는 편부모 가정에 대한 편견으로 내가 상처 받지 않길 바랬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요즘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내 가정사를 말하고 익숙해지는 연습을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나는 나를 숨기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가정사뿐만 아니라 내 감정, 취향, 생각 등 모든 것에. 혹시나 나를 드러내다가 나의 어두운 그림자가 튀어나올까 봐 두려웠다. 내 속 안에 있는 이야기를 해도 세상 사람은 그다지 관심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야기해도 된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젠 일종의 방어기제가 되어버려서 친구에게 사소한 고민상담을 하는 것도 어려워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10년을 넘게 본 친구로부터 나는 아직도 네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는 말을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본 친구에게도 나의 깊은 속까지 드러내 보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고민이 있어도 아무 문제없는 것처럼 웃으며 괜찮은 척했다. 나는 늘 나를 숨겼다. 숨겨야만 한다고 배웠으니까. 그래야 내가 다치지 않는다고 배웠으니까.


숨기는 버릇은 나 자신에게까지 넘어왔다. 나는 나 자신에게까지 숨기는 게 버릇이 됐다.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원하는지 나 자신에게까지 숨겼다. 그래서 내가 무언가 좋아하고 원해도 되는 사람인지 몰랐다. 아마 내가 어딘지도 모르는 곳까지 와버린 건 나 자신에게까지 솔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상처투성이가 된 나를 보며 생각한다.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숨겨야 하나. 왜 숨겨서 곪은 상처 때문에 아픈 건 내 몫인가.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나는 이런 내가 정말 불쌍하고 가엾다.


나는 가끔 아무 생각 없이 울고 싶을 때 <굿윌헌팅>이라는 영화를 본다. 어린 시절 상처 때문에 마음을 열지 못하는 반항아 맷 데이먼이 심리학 교수 로빈 윌리엄스를 만나고 점점 변해가는 내용이다. 나는 특히 로빈 윌리엄스가 맷 데이먼에게 위로를 건네는 장면이 좋다.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로빈 윌리엄스가 해주는 것 같아서 반복해서 보게 된다.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지만, 여태껏 살면서 단 한 번도 누군가 나에게 말 해준 적 없었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라도 반복해서 들었나 보다. 오늘은, 그냥 내가 나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네 잘못이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야.


다 잊어버려. 네 잘못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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