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다구요? 이래뵈도 씻은 손이예요 :D”

2016.12.12 / 천국의 알바 2차 미션작

by Haneul


“누나 그 손 지워지죠?” “아가씨 손이 이래서 우짤꼬..” 지난 한 달, 내 첫 영화 현장에서 의상 팀으로써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영화 설정 상 출연자들의 옷이 더러워야 해서 매 촬영 전 나는 그들의 옷을 더럽혔다. 그리고 동시에 내 손도 더러워져 갔다. 많을 때는 백 명이 훨씬 넘는 보조출연자들의 옷을 만져야 했고, 촬영 컷 사이 사이 빨리 작업하고 빠져야 하기 때문에 손을 씻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장갑? 막내인 나에겐 물티슈도 사치였다. 그래도 이 정도는 뭐. 내가 그토록 바라던 영화 현장인데!


준비기간에 촬영 시작하면 더 힘들어 질 거란 팀장님과 선배들의 말이 무섭게 한 달이란 짧은 시간은 나를 몰아가기에 너무나도 충분했다. 오늘 촬영이 있건 없건 다음 촬영 때 쓰일 의상을 준비하는 작업은 매일 있었고 잠 부족한 것은 일상이었다. 3일 동안 5시간을 자면서 버티기도 했다. 하지만 체력적인 것보다 나를 더 몰아간 건 정신적인 부분이었다. 그 동안 다양한 아르바이트와 일들을 해왔지만 ‘일 못한다’는 소리와 거리가 먼 나였다. 하지만 나는 ‘눈치가 없다’, ‘빠릿빠릿 하지가 않다.’ ‘열정이 보이지 않는다.’ 라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여기는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현장이었고, 실수를 하지 않으려 긴장할수록 나는 오히려 실수를 더 만들어 갔다. 현장 초반 나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나를 한 없이 깎아 내렸다. 매일 밤 거울 앞에서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 도 잠시뿐 넘치던 자신감이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았다. 그 때부터 갑자기 하루 하루가 너무 힘들었다. 사소한 일 하나에도 윗사람 눈치가 보이고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인지 자신이 없었다. 세상 밖에선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었던 나는 그렇게 바라던 공간에서 한 없이 작아져만 갔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이 짧은 시간으로 ‘나는 영화랑 안 맞는 것 같아’ 라고 선을 긋기엔 현장 경험이 너무 소중했다. 포기하긴 싫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냥 더 많이 움직였다. 아직 내가 현장을 큰 그림으로 보지 못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에 집중하기로 하고 현장을 뛰어다녔다. 가장 작은 일이지만 기본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 날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께서 “이 친구가 제일 열심히 움직여~ 쉬면서 좀 하지~”라며 말을 붙이셨다. 그 말에 “선생님~ 제가 막내니까 제일 많이 움직여야죠. 전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라고 대답을 하는 순간 깨달았다. ‘그래, 나 진짜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어.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왜 자꾸 남의 평가에 흔들리고 있었지?’라고,


그 때 내가 나를 다시 인정할 때 잃었던 나다움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히려 ‘실수하면 어때? 이렇게 배워가는 거지’라고 마음을 편하게 먹으니까 그 때부터 현장이 조금씩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매 촬영마다 실수를 했지만, 의기소침해지지 않고 그 실수를 바라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자책대신 개선점을 찾기 시작하니까 현장의 큰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안에서 내 일이 하나 둘씩 보였다. 보조출연자들의 옷이 횃불에 타지 않게 주의를 주고, 버선이 바지 밖으로 튀어나와있나 체크하고, 씬마다 필요한 소품을 먼저 챙겼다. 매 촬영 매 순간 여전히 긴장이 됐지만 11월 마지막 촬영 날, 나는 조금 더 여유롭게 현장을 대면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계약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지금, 지난 한 달을 돌아보면 난 완벽한 막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처음 보조출연자들의 소품을 챙길 땐 사이즈 체크에 시간을 너무 소비하기도 했고, 현장에 필요한 물품을 빠뜨린 적도 있었다. 처음 경험하는 현장이란 이유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매 순간 몰랐던 일을 새로 익혀나갔다. 그래서 더 선배들의 모습을 눈으로 쫓고 어떻게 일을 하는지 하나 하나 새기려 애썼다. 그래도 마지막 촬영이 끝나고 “이제 하늘이 없으면 어떡하냐”라고 말한 사수를 보면 아주 서툰 막내는 아니지 않았을까 싶다.


일을 하면서 참 신기했던 게 숙소에서 혼자서만 일을 할 때도, 좋지 않은 말을 들었을 때도, 잠을 못 잘 때 도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지? 아, 나 영화는 못하겠다” 라고 한 순간 도 생각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이번 일이 끝나면 다른 팀에서도 일 해보고 싶다. 다른 현장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만 생겼다. 그렇게 계약이 끝나고 영화에서 현실로 돌아온 지금 난 다른 영화를 경험하기 위해서 준비를 하고 있다.


다시 영화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요즘 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의상팀 중 한 곳에 지원하려고 포트폴리오를 작업 중이다. 또한 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 틈틈이 리폼이나 작은 소품들도 제작 하고 있다. 그리고 현장을 겪어보니 체력이 내 생각보다 더 중요했다. 이를 위해 촬영 동안 중단했던 운동과 식단 조절을 다시 시작해 기록 중이다. 특히나 막내인 나는 현장에서 뛰어다닐 일이 많아서 앞으로는 운동을 조깅 위주로 진행해보려고 계획 중이다. 마지막으로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영어회화수업을 다시 수강 중이다. ‘세상과 소통하는 영화 의상디자이너’가 내 비전인 만큼 영어는 끝까지 놓지 않을 생각이다. 최근에는 언어교환 자원봉사를 알아보고 있다.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 외국인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지난 금요일에 만난 친구가 “손 안 씻은 거 아니지?”라고 할 정도로 내 손은 아직 까맣다. 내 손 주름 사이 사이에 낀 염료는 아직 빠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손바닥에 생긴 굳은살은 세수 할 때 마다 거칠다. 부모님, 가족, 친구들 모두가 안타까워하는 내 손이지만 사실 나에겐 뿌듯함의 상징이다. 그 힘들다는 사극을 첫 영화로 내 맡은 바 끝까지 버텼다는 증거니까. 이 손이 언제 깨끗해 질지, 보들보들해질지 모르겠지만 아마 그 전에 난 또 다른 영화를 만들어 가고 있을 거고 그렇게 내 손은 여전히 더럽고 거칠지 않을까? 하지만 내 손이 더러울수록 거칠수록 그에 비례해서 나는 내 꿈에 가까워져 가고 있을 거라 믿는다. ‘세상과 소통하는 영화 의상디자이너’에



열정이 가득했던 그 시절의 나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패기가 가득한 추억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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