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 프로젝트는 계속된다
버스 터미널에서 꿈이 시작된다. 엄마와 함께 걷는데 갑자기 엄마가 걸음을 멈춘다. 토스트 가게 앞이다. 꿈이지만 냄새가 좋다. 토스트 두 개를 주문하는 동안 메뉴판을 보는 엄마가 환하게 웃고 있다. 어느새 따뜻한 토스트가 내 손에 들려 있다. 엄마에게 한 개 드리고 나도 한 입 먹는다. 달걀 반숙 노른자가 터져 마요네즈와 설탕과 섞인다. 맛있다. 엄마가 말없이 웃으며 아이처럼 토스트를 먹는다.
병원 대기실. 의자에 앉아 졸다가 테이블에 엎어져 잠이 든다. 꿈에서 꿈을 꾼다. 엄마의 진료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중인 듯하다. 문득, 진료를 보고 나면 홍대에 약속이 있다는 걸 생각하며 신나 한다. 그런데 앗!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네? 약속에 늦겠다. 얼른 진료를 보고 가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진료 접수도 하지 않고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오늘 약속은 아마 지키지 못할 것 같다. 속상해하며 꿈에서 깬다.
-
20년 가까이 신장투석을 했다는 건 마지막 10년간은 소변을 보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엄마의 신장은 기능을 멈춘 지 오래였고 소변은 멈췄다. 신장을 대신해 이틀에 한 번 투석기계에 의지해 몸속에 가득 찬 수분을 빼내 정상체중으로 되돌여놓아야 했다. 물을 약 먹을 때만 딱 반 모금씩 마시며 조심해도 하루 세 번 먹는 음식 안에도 수분이 들어 있었기에 엄마 몸속 내장기관엔 자주 물이 차올랐다. 어쩌다 폐까지 물이 차는 날이면 응급실에 가서 바로 응급투석을 해야 하는 날도 많았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포도는 포탈슘 수치를 올려 엄마의 목숨을 몇 번이나 빼앗을 뻔 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던 포도를 엄마는 여름이면 하루에 딱 두 알씩 드시고는 '포도 한 송이 다 먹으면 소원이 없겠네.' 하셨다.
엄마의 암이 재발해서 힘겹게 두 번째 항암을 할 때 엄마와 나는 다가올 죽음을 받아들이고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보양식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나면 엄마는 늘 ‘투석하고 나서 바로 먹는 밥이 제일 맛있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빨리 암이 뇌로 전이되면서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하늘나라로 가셨으니 천국에서 자꾸 못 먹은 음식 리스트들이 생각나나 보다.
그중 하나가 토스트였을까? 토스트. 그러고 보니 엄마와 토스트를 먹어본 적이 없구나. 나와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간식 메뉴가 '이삭토스트'의 딥치즈베이컨인데 엄마에게 그 맛을 한 번도 보여드리지 못했네. 컨디션이 좋아 보양 음식을 드시게 되는 날이면 추어탕이나 염소탕, 소고기 같은 메뉴에 자꾸 밀려난 탓이다. 그래도 꿈에서나마 엄마와 맛있게 먹고 나니 눈을 뜨고 나서 배가 불렀다. 엄마는 ’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 프로젝트를 천국에서도 계속하고 싶구나. 그래, 꿈에서 만나 함께 맛집을 다니는 것도 방법이겠다.
그나저나 홍대라니. 아, 20대 후반을 하얗게 불태웠던 나의 홍대. 클럽 데이 때 한 손에 맥주병, 다른 손엔 야광 팔찌를 끼고 밤새 이 클럽 저 클럽 돌아다녔던 홍대가 나는 그리웠구나. 나를 불러내려 했던 친구는 지금의 나인지도 모르겠다. 진료실에 엎드려 잠깐씩 눈을 붙이던 그때의 나를 불러내 좋아하는 마가리타 한 잔을 사주고 싶다. 그때의 나는 한 잔으로 누구 코에 붙이냐며 테킬라 한 병을 시키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