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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희 May 20. 2023

슬픈 할머니 넋두리

손자 유치원 가족행사에 다녀왔다. 조부모 초청모임인데 얼핏 보기에도 우리 부부가 가장 젊은 편에 속한다.


결혼 연령이 늦어지니까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는 연령도 따라서 높아진다.


딸이 다녔던 유치원이어서 30년 만에 다시 갔는데 감회가 새로웠다.


손자가 이곳에 다닌 지는 이제 20일가량 지났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모습에 내가 자꾸 긴장이 되었다.


미리 제출한 가족사진 열 장을 찾아내는 게임과 동요에 맞추어 율동하기, 간식 먹기 등을 하면서 귀여운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호강까지 행복한 시간이었다.


다만 한 가지 다시 확인한 것은 나의 별난 눈치 살피기 버릇이다. 행사 초반에 교사가 할머니들에게 손주가 어떤 아이인지 발표를 하라고 했다.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손주 칭찬이 이어지고 할머니들 사이에서 밀리면 안 된다는 표정(?)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로 저요 저요 하는데 교사 표정을 보니 허용된 시간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 미국 학교를 잠깐 경험한 바로는 이런 경우 지루해도 죽 돌아가며 순서대로 소개를 하도록 했는데 우리는 여전히 나서지 않으면 기회가 없는 구조를 답습하고 있었다.


나는 항상 그랬듯이 난감한 교사를 생각해서 나도 다른 할머니들처럼 손 들고 나서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맹랑한 내 손자가 손을 들고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수영장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장광설을 풀기 시작했다.


예전에 내 아이들은 생각 많고 우유부단한 엄마 때문에 기회를 잃고 상처를 받았는데...


나도 앞뒤 안 가리고 벌떡 일어나 " 내 손자 누구는 지금 보신 것처럼 발표력이 뛰어나다"라고 외치고 말았다.


반성한다. 남과 하나도 다르지 않으면서 다른 척한 위선을, 아이들을 적절히 보호하지 못한 나의 무능함을..


그리고 이런 환경에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내 딸을 포함한 후배들에게 안쓰러움과 미안함에 눈물이 솟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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