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법원 정문 앞 횡단보도에서 플루트 소리가 듣기 좋게 울린다. 법원에서 음악 방송을 하는 줄 알았는데 가까이 가 보니 하얀 한복을 입은 여자가 시위용 문구가 적힌 천을 몸에 두르고 연주를 하고 있다.
신박한 시위 방식이다. 자꾸 눈길이 갔다.
법원 정원에서는 정원사들이 정원을 깔끔하게 다듬고 있다.
1주일 전 사무실을 30년 전 개업했던 동네로 옮겼다. 내가 일했던 사무실들은 모두 2호선 교대역을 중심으로 반경 500미터 이내에 있다. 그래서 거기가 거기지만 출퇴근 동선이 다르니까 다른 동네 같은 느낌이 든다.
법원을 가로질러 출퇴근을 하자 넓고 깨끗한 정원을 수시로 보는 호사를 누린다.
큰 딸이 네 살 때 함께 법원에 간 일이 있다. 아이가 법원 건물을 보자 " 9시 뉴스다"라고 소리쳤다. 내가 천재를 낳은 것이 분명하다고 세상 모든 엄마들이 갖는 환상을 가졌다.
사무실 건물이 검찰청 정원과 붙어 있어서 그 안에서 벌어지는 시위 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무슨 일인가 뉴스를 검색해서 모 정치인의 출몰을 확인한다. "생생 뉴스 현장"이다 ㅎㅎ.
퇴근길에 연수원 동기 변호사 사무실에 인사차 들렀다. 오랜만에 만난 동기는 내가 너무 말라 늙어 보인다고 살을 찌우라고 타박이다. 내가 이 살을 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ㅎ. 우리 이제 늙은 거 맞는데.
70이 넘으면 먹고 싶은 것이 없어진다는 선배할머니들의 말은 아직 상대적 젊은이인 내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요즘 티브이를 틀어도 볼 만한 것도 보고 싶은 것도 없는 건 나이 탓인지 스마트폰 때문인지 주변 조사를 해 봐야 할 것 같다.
저녁 혼밥을 마치고 예비 독거노인은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