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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잇시루 Nov 21. 2021

할머니 유치원

동화_2016년 한국안데르센상 동상 

 다솜이네 할머니는 유치원에 다닙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다니는 유치원입니다. 아기같은 행동을 하게 되는 “치매”라는 병에 걸리고부터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름은 평화데이케어센터입니다. 할머니들이 다니는 곳을 유치원이라고 하면 좀 이상하지만, 유치원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작은 셔틀버스를 타고 다니고, 재밌는 것들을 많이 합니다. 노래나 율동을 배우고, 만들기도 하고 동화도 듣습니다. 그러니 유치원이라고 불러도 되겠지요?

 할머니는 집에 올 때마다 그날 유치원에서 만든 것들을 가지고 옵니다. 점토나 종이접기 같은 것들인데, 할머니는 그것들을 무척 소중하게 여깁니다. 한 번은 사촌동생 선우가 점토로 만든 송편을 만지다가 "먹지 마! 내 꺼야!" 라며 할머니가 호통 치는 바람에 깜짝 놀라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 할머니가 가장 아끼는 것은 구슬점토로 만든 가족사진 액자입니다. 액자 속의 할머니는 참 젊고 예쁩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참 멋집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무릎 위에는 네다섯 살 정도 되는 남자 아이와 아기가 앉아 있습니다. 어릴 때의 아빠와 고모입니다. 할머니는 이 액자를 항상 손에 들고 다니고, 유치원에 갈 때도 꼭꼭 챙겨 다닙니다. 할머니가 늘 챙겨놓는 작은 보퉁이 깊숙이 액자를 넣어서 가지고 갑니다.      

 그런데 주말에 놀러온 선우가 또 말썽이었습니다.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는 이 녀석이 할머니 보퉁이까지 손을 댄 모양입니다. 할머니 액자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입니다. 

 "없어! 없어!"

 할머니는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이 방 저 방 돌아 다녔습니다. 온 식구들이 같이 찾았지만 액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빠가 고모네 서둘러 전화를 걸었습니다. 역시나 액자는 사촌동생의 작은 배낭에 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엄마 아빠가 난처한 얼굴을 했습니다. 

 할머니 셔틀시간과 엄마 아빠의 출근 시간이 얼마 안 남았기 때문입니다. 엄마 아빠는 슬쩍 눈을 맞추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어머님 그거 센터에 있대요."

 엄마가  할머니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습니다.

 "없어! 없어!"

 할머니가 서랍장 맨 아래 서랍을 ‘끙차’ 하고 뺏습니다. 엄마가 손짓을 하자 아빠가 냉장고에서 곶감을 꺼내왔습니다.

 "어머님 곶감 드실래요?"

 "곶감"이라는 말에 할머니가 손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엄마는 곶감을 작게 잘라 할머니 입에 넣어주고, 하나는 할머니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어머님 곶감 드시고 센터에 가셔요. 사진 거기에 있대요."

 "있대?"

 할머니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물었습니다.

 "그럼요. 거기 선생님이 잘 가지고 있대요."

 할머니는 그제야 안심한 듯 보퉁이를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손에 들고 있던 곶감은 손수건에 정성껏 싸서 보퉁이에 넣었습니다. 엄마는 할머니가 또 어깃장을 부릴까봐 얼른 신발을 신겼습니다. 할머니가 문 밖으로 나가자 아빠가 말했습니다.

 "다솜아, 고모가 10분쯤 뒤에 액자 가지고 온대. 그거 받아서 네가 센터 갖다 줘. 응? 고모도 출근 해야 돼서 센터까지는 못 간대. 알았지?"

 학교 가는 길에 할머니 유치원이 있지만, 다솜이는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빠는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서둘러 출근을 했습니다.     

 다솜이는 한 번도 할머니 유치원에 들어가 본적이 없습니다. 물론 사거리를 지나 빵가게 골목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혼자 가려니 조금 겁이 났습니다. 고모라도 붙잡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다솜이는 혼자 유치원으로 향했습니다. 건물은 제법 크지만 대문은 아주 작았습니다. 그 문도 꼭꼭 닫혀있습니다. 다솜이는 용기를 내서 벨을 눌렀습니다. 

 "누구세요?"

 "저……. 김영순 할머니 손녀예요."

 덜컹하고 대문이 열렸습니다. 작은 정원에는 사루비아꽃이며 봉숭아꽃들이 심어져 있었습니다. 나팔꽃들도 담장을 타고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2층짜리 건물을 몇 바퀴 돌아도 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통유리로 된 건물 안으로 안내데스크가 보였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서너 번 더 건물 주변을 돌고나서야 소나무 뒤 쪽 작은 문이 눈에 띄었습니다. 거친 나무로 만들어진 문은 버스 손잡이처럼 생긴 검은 문고리가 달려있었습니다. 

 다솜이는 힘껏 문을 잡아당겼습니다. 문이 천천히 열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분명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다니는 유치원에 아이들이 가득했습니다. 다솜이 또래의 열 살 남짓한 아이들도 있고, 그 보다 어린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남자 아이들은 밤송이처럼 머리가 짧고, 여자 아이들도 겨우 턱까지 내려오는 짧은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옷도 보통 아이들이 입는 티셔츠나 청바지가 아닌 수수한 셔츠에 고무줄바지나 치마를 입었습니다. 그래도 깨끗하고 단정해 보였습니다. 아이들 한 무리는 바닥에 금을 그어놓고 폴짝 폴짝 뛰어 놀고 있었고, 한 무리는 말뚝 박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몇몇 여자아이들은 서로 봉숭아물을 들여 주기도 하고, 공기놀이도 하였습니다. 모두들 행복한 얼굴이었습니다. 

 다솜이는 얼음이라도 된 것처럼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눈으로 이리저리 어른들을 찾았지만, 어른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얘, 너 여기 처음 왔니?”

 갑작스러운 질문에 옆을 보니 다솜이 또래의 여자 아이가 생긋 웃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도 역시 짧은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반달처럼 웃고 있는 여자 아이의 눈을 보니 어디선가 본 듯한 것 같았지만, 어디서 봤는지 잘 생각나지는 않았습니다.

 “얘, 처음 오면 다 그래. 괜찮으니 우리 같이 놀자. 아침은 먹었니?”

 여자 아이는 다솜이 손을 잡고 이끌었습니다. 다솜이는 대답할 틈도 없이 여자 아이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습니다. 

 “얘, 너 머리가 참 길구나. 내가 빗겨 줄까?”

 여자 아이는 다솜이를 등받이가 없는 작은 의자에 앉혔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일찍 나오는 바람에 다솜이는 머리를 빗지 못하고 나왔습니다. 나무로 된 투박한 빗으로 여자 아이는 정성껏 머리를 빗겨주었습니다. 누군가가 머리를 빗겨주는 것은 참 오랜 만이었습니다. 예전에… 할머니가 유치원에 다니기 전에는 늘 할머니가 머리를 빗겨주곤 했습니다. 어떤 날은 양 갈래로 쫑쫑 땋아주기도 하고, 어떤 날은 말 꼬랑지처럼 하나로 시원하게 묶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러질 못합니다. 다솜이 혼자 대충 빗기만 하고 다닙니다. 오랜만의 부드러운 손길에 저절로 눈이 감겼습니다. 학교에 가야겠다는 생각은 아예 잊어버렸습니다. 

 “아 이쁘다!”

 여자 아이가 동그란 손거울을 보여주었습니다. 솜씨 좋게 땋은 머리가 다솜이 양 어깨에 얌전히 늘어뜨려 있었습니다. 

 “땋은 머리는 오랜만이야. 고마워.”

 다솜이의 인사에 아이는 방끗 웃어 봉입니다.

 둘은 마주보고 앉아 공기놀이를 했습니다. 플라스틱 공기가 아닌 작은 차돌멩이로 하는 공기였습니다.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훨씬 잘 됐습니다. 한번에 7년까지 점수를 냈습니다. 신이 났습니다. 여자 아이도 공기를 아주 잘했습니다. 그런데 꺾기를 하는 아이의 손이 거무튀튀하고 아주 거칠어 보였습니다. 그런 손을 가진 아이를 다솜이는 처음 보았습니다. 빤히 손등을 바라보니 여자아이는 부끄러운 듯 손을 감췄습니다.

 “너는 손이 참 곱구나. 넌 빨래 안하니? 설거지는?”

 다솜이는 고개를 저으면서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랫마을 더부살이 다녀오는 바람에 손이 더 못난이가 됐어.”

 아이가 씁쓸하게 웃어보였습니다. 

 “더부살이?”

 “응? 더부살이 몰라? 남의 집에 살면서 일해 주는 거야. 일하는 건 견딜 만한데, 밥도 제때 안주고, 걸핏하면 매질이라 그게 힘들었어. 여기는……. 여기는 말이야. 정말 천국 같아. 매일 놀아도 되고, 배불리 먹을 수도 있고, 다들 친절하고, 당연히 매도 안 때려.”

 아이는 여전히 싱글거리는데, 그 모습이 왜 그런지 더 슬퍼보였습니다. 

 “아참 곶감 줄까?”

 아이는 치마를 훌쩍 들추더니 안에 입은 바지 주머니에서 손수건에 싸인 곶감을 내밀었습니다. 다솜이는 곶감을 받아들었습니다. 

 “아! 선생님 오셨네.”

 아이가 복도 쪽 문 밖을 가리켰습니다. 문 밖에는 파마머리를 한 선생님이 보였습니다. 그제야 다솜이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생각났습니다. 

 “나 할머니 찾아야 돼. 나중에 또 만나자. 안녕!”

 다솜이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미닫이문을 열었습니다. 문은 무척이나 묵직해서 다솜이가 온 힘을 다해서야 겨우 열렸습니다. 다솜이 뒤에서 여자 아이가 “잘 가!”하고 크게 소리쳤습니다. 그 소리는 마치 메아리 같이 울려 퍼졌습니다.      

 다솜이는 선생님에게 액자를 전해주고 다시 문 안쪽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는 아이들이 한명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뿐이었습니다. 때마침 눈이 마주친 다솜이 할머니가 손을 신나게 흔들었습니다. 다솜이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문을 다시 열어보아도 할머니 할아버지들뿐이었습니다. 다솜이는 손에 힘이 빠져 문을 놓았습니다. 문은 맥없이 스르르 닫혔습니다. 

 “얘, 학교 갈 시간 아니니?”

 선생님의 말에 다솜이는 허둥지둥 할머니 유치원을 나왔습니다. 한참을 있었던 것 같은데, 아직 학교에 가는 아이들은 많았습니다. 천천히 학교를 향하던 다솜이는 여자아이에게 받은 곶감을 열어보았습니다. 하얀 가루가 잔뜩 묻은 곶감이 참 먹음직스러워 보였습니다. 다솜이는 곶감을 한 입 깨물다가, 하얀 손수건에 삐뚤빼뚤하게 적힌 이름을 보았습니다.

 “김영순” 

 할머니와 똑같은 이름이었습니다. 다솜이는 손수건을 조심스럽게 접어 주머니 속에 넣고, 천천히 곶감을 먹었습니다.

 달콤하면서도 조금 슬픈 맛이 입안에 가득 찼습니다.



엄마는 사랑 표현이 참 서툰 사람이었다.

어릴 때는 그것이 참 서운했는데,

엄마의 유년기를 상상해보면 그럴 수 밖에 없었음을 안다

가여운 내 엄마

부디 다음 생에는 사랑 담뿍 받는 고명딸로 태어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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