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잇시루 Jul 23. 2023

사별담 3

세 번째 喪

올해 들어 세 번째 상을 치르게 되었다.

나를 낳아주신 분, 나를 길러주신 분, 내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너는 어쩌면 이렇게 예쁘게 생겼니?"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분, 내 어머니의 상. 올해 세 번째 상.


어머니와의 이별은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다. 어머니와 온전히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아이들은 더 그럴 테지. 아이들에게 소식을 전하니 고개만 끄덕인다. 

아이들에게 할머니는 "무서운 할머니"였다. 엄마는 치매가 심하셨는데, 그중에서도 폭력적인 성향을 띠는 치매였다. 그 때문에 여러 데이케어센터에서 퇴소 조치됐다. 폭력의 주대상은 아버지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 긴 결혼생활 동안 서운했던 감정만을 기억해 아버지를 힐난하고 증오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안 보이면 불안해하며 아버지를 찾았다. 애증의 감정이라고나 할까? 아버지는 젊은 날의 과오에 대한 업보라며 그 고통을 감내하셨다. "엄마 먼저 잘 보내고 가야지.."가 아버지의 마지막 소망이셨다. 이루진 못했지만.

 언젠가 어머니가 좋아하는 아귀찜집에 갔다. 얌전히 잘 먹는가 싶던 엄마가 아버지에게 "뭘 잘했다고 먹어?"라며 벌컥 화를 냈다. 아버지에게 먹던 그릇을 던지고 그도 모자라 일어나서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어린 세 아이들은 얼어붙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난생처음 보는 폭력적 상황이었다. 그 이후로 아이들에게 외할머니는 "무서운 할머니"가 되었다. 하지만 이젠 그 기억도 희미해졌겠지. 십여 년이 지난 일이니까. 아이들에게 외할머니는 단어로만 존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막내가 가만히 다가와 눈물을 글썽인다.

"엄마가 불쌍해."

아이들에게 외할머니 소식을 전하고도 나는 아이스아메리카노와 함께 초코과자를 다섯 개나 뜯어먹던 참이었다. 눈물 한 방울 나오질 않았다. 빈소가 없어 내일 11시에 오라는 전언에 '조금 여유가 생겼군.'이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어? 엄마 괜찮아. @@이가 있잖아."

 과자 봉지를 치우며 희미하게 웃자, 아이가 나를 안아준다. 그제야 눈물이 난다. 내가 정말 불쌍해서인지, 내 어머니가 불쌍해서인지, 내 아이의 마음씀에 감동해서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히 눈물이 난다. 

내 마음이 고장 난 건 아닌가 보다. 



내가 사별담을 쓰는 이유는

내가 잘 이해가 가질 않아서다.

나는 왜 이렇게 덤덤하지? 나는 왜 안 슬프지? 나는 왜 아무렇지 않지?

내 심장이 고장이 났나?

아니면 내가 심장을 봉인해 둔 것일까?

천천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어 사별담을 쓴다.

그래야 죄책감이 덜해질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사별담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