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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재미양 Jun 06. 2023

언어 수업

"으아앙!"


갑자기 머리가 하얘진다. 날카롭게 고개를 들어 소리의 주인을 찾는다. 몇 발짝 떨어진 곳에 어떤 아이와 아빠가 작은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후우. 시선을 돌리는데 나도 모르게 작은 한숨이 새어 나온다. 모든 소리지름이 나의 아이가 아닐 텐데, 반사적으로 긴장하고 만다. 정작 둘째는 내 앞에 마주 앉아 천진하게 주먹밥을 오물거리고 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 햇빛을 등진 담벼락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짜잔, 호기롭게 도시락 뚜껑을 여니 급하게 뭉쳐 담은 주먹밥들이 한쪽으로 쏠려 죄다 달라붙어있다. 둘째는 방긋 웃으며 감탄해 준다. 


'이야아~ 맛있겠다!'


뭉개져 엉망이 된 모양은 아랑곳 않고 칭찬일색 미소만발이다. '엄마 주먹밥 맛있다.' 냠냠. 오물거리기 바쁜 와중에 한마디 더 덧붙여준다. 배가 고팠는지 허둥지둥 입에 넣어 볼이 꼭 햄스터 같다. 처음 몇 개를 따라먹으며 그런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오후의 햇살을 받은 아이의 정수리가 반짝거린다. 입가에 붙은 밥풀도 뽀샤시하다. 눈부신 풍경이다.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걸린다. 이렇게 일주일에 두 번, 점심시간 전 아이를 하원해 도시락을 먹이고 있다. 언어수업을 가기 때문이다. 바람이 살랑이고 햇살이 뜨거운 5월의 가운데 아이와 단둘이 앉아 도시락을 나눠 먹고 있노라니 아침 일이 꿈만 같다. 


아침, 등원준비를 시키다말고 아이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일곱 살보다도 작은 사람이 되어 바닥에 주저앉아 자꾸만 흐르는 눈물을 주먹으로 닦으며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쌓인 감정의 둑이 터지면 이렇게 되는 것일까. 나란 사람의 감정이란 너무 사소하게 쌓이고 무너지는 듯했다. 사람이란 어쩌면 커다란 감정덩어리일지도 모른다고, 눈물을 훔치며 생각했다. 마음덩어리, 감정덩어리인 존재가 비워내고 또 쌓이며 하루를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고. 


일곱 살 둘째는 어떤 과정을 지나고 있는지 부쩍 혼잣말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어떤 징후를 예고하는지는 모르나 나는 덜컥 걱정이 앞섰다. 둘째는 언제나 나의 걱정담당이었다. 뭐든지 알아서 해내는 첫째와는 달리 둘째는 생활습관도, 기관도 모두 크고 작은 방지턱을 밟은 것처럼 머뭇거리던가 불편해했다. 울거나 소리 지르며 거부했다. 쉬운 길은 없었다. 타고나길 예민했으니 아이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가뜩이나 느린데 그 복잡하고 깊은 속을 무슨 재주로 설명하겠는가. 다행히도 아이의 마음은 작은 관찰로도 읽혔다. 대신 내겐 거대한 돋보기가 생겼다. 모든 촉이 아이에게 향하고 행동을 분석하고 심각한 해석을 내리게 만드는 돋보기. 혼잣말이니, 홀로 놀이니, 자꾸 등을 돌리고 자기 만의 세계에 빠져들려는 아이를 돌려세우면서 어느샌가 힘들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있었다. 


아이는 당황했는지 혼잣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난감한 듯, 저쪽으로 후다닥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내 앞에 되돌아와 앉더니 나지막이 속삭였다. 


"괜찮아, 엄마." 토닥토닥. 작은 손이 내 어깨를 두들긴다.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이때의 마음을. 부끄러움? 서러움? 안도감? 나는 통곡을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이를 더 이상 놀라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과 아이에게 엄마의 슬픔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뒤섞였다. 


"너의 잘못이 아냐." 


아무 소용없는 말이지만 그래도 말했다. 아이는 미안함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정말 엄마의 눈물이 자신의 잘못이 아닐꺼라고 생각할까 자신 없었다. 엄마라는 사람은 이렇게 영양가 없는 말과 흘리면 그만일 눈물을 보이며 울고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인데 까마득히 먼 순간 같다. 아침의 절망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화창한 날씨 틈에 숨었을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아이와 도시락을 나눠먹는 이 시간이 너무 평온해 그때 그 감정들의 행방이 문득 궁금해졌다.


옆자리에 할머니가 다가와 앉는다. 길 건너 아이스크림 가게를 초점 없는 눈으로 바라보며 덜덜덜 턱을 떨고 있다. 할머니 옆에 바퀴가 달린 시장바구니가 보인다. 아이가 주먹밥을 오물거리다 말고 내 시선을 따라 할머니를 바라본다. 그러더니 갑자기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그런데 할머니는 왜 마스크 껴요?"


할머니가 떨림을 멈추고 이쪽을 본다. 초점 없던 눈빛이 반가운 듯 환해진다. "아이고, 예뻐라!" 아이의 말을 못 들으셨는지 대답 대신 감탄하신다. 나도 인사를 한다. "감사합니다." 아이가 이번에는 나를 본다. "할머니는 마스크 껴, 엄마. 오늘은 미세먼지 있어?"


아이에게 날씨를 설명하고 있자니 할머니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이쪽 벤치로 다가온다. 자리에 작게 접은 신문지가 보인다. 아무 데나 털썩 털썩 앉곤 했는데 신문지 방석은 오랜만이다. 할머니는 갑자기 며느리 이야기를 꺼낸다. 위풍당당한 자신의 며느리는 더 이상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다며 서운한 기색을 표한다. 할머니의 큰아들은 유학도 대학도 다 보내놨지만 정작 결혼은 보내지 못했단다. 돈도 벌고 일도 하지만 결혼을 안 했다며 느릿느릿 감정 없는 말을 이어가신다. 느닷없는 하소연이지만 왠지 친숙해 가만히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조금씩 할머니의 서운함과 나의 오전이 겹친다. 할머니는 어떤 마음으로 자식을 키웠을까. 이분에게는 어떤 육아의 역사가 있을까.


"괜찮아요, 결혼 안 해도 괜찮아요." 나의 대꾸에 할머니 눈이 커진다. "그래도 잘 살 거예요."


둘째는 가만히 주먹밥을 오물거리며 나와 할머니의 대화를 듣는다. 괜찮아요. 할머니도, 나도, 우리의 아이들도 다 괜찮아요. 어쩌면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도, 그리고 아직은 꼿꼿하게 앉아있는 나도 알고 있을 것이다. 아주 많은 것들이 사실은 괜찮다는 걸. 많은 일들이 걱정의 산에 가려져 보이지 않기에 주저앉아 울고, 그리고 또 살고, 그러다 보면 정말 산도 없고 방지턱도 없는 평지가 있단 걸 여러 아침과 도시락을 비워가며 발견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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