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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G Aug 03. 2021

박사후 연구원을하면서 배우는점들

자연계열의 경우 박사학위를 받고나면 진로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학계에 남거나 혹은 기업에 취업하거나. 물론, 완전히 다른 일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수가 많지는 않다. 이 때, 학계에 남는 사람들은 소위 박사 후 연구원(포스닥)으로 일을 하게 된다. 거창한 타이틀은 전혀 아니고, 쉽게 말해 학계 내 정규직(대학 교수 혹은 연구소 선입급 연구원)을 잡기 전에 임시직이라 보면 된다. 과거에는 포스닥의 숫자가 많지 않아 말 그대로 '임시직'의 역할이었다면, 최근에는 학계 내 경쟁이 심해지면서 포스닥은 박사학위 다음 단계로 인식되고 있다. 즉, 박사학위 소지자는 한없이 많아졌는데, 이에 비해 대학 및 연구소의 규모, 특히 정규직의 숫자의 증가폭은 훨씬 작은게 문제다. 학계 내 비정규직 이슈에 대해 할 말이 많긴 하지만, 이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글을 써볼 생각이다.


포스닥때 경험은 사람마다 꽤 다른것 같다. 그나마 한가지 특징이 있다면, 포스닥 초반 (1년차)에는 하는 일이 사실상 박사과정 학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그저 대학원생때처럼 연구 주제를 생각해서 연구를 진행하고 종종 지도교수에게 조언을 듣는 식이다. 물론, 대학원생때는 모든걸 하나하나 다 익혀야 해서 진행이 느렸지만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대부분 기본적인 테크닉을 익혔기 때문에 연구의 진행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그런데 경험이 쌓이면서 연구 그룹 내에서 맡는 역할과 내가 하는 일도 점차 달라지는것 같다. 나는 이제 포스닥 3년차에 접어드는데, 최근 들어 하는일을 보면 이제 대학원생때와는 확연히 다른 일들을 주로 하고 있다고 느낀다. 먼저, 내 연구 주제에 스스로 고민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어들었다. 현재 진행하는 연구주제가 두개정도 있긴 하지만, 일주일에 이틀을 할애할 수 있으면 다행이고 보통은 알짜 시간으로 주 5일중 하루정도를 내 연구주제에 신경을 쓴다. 


그럼 나머지 시간은 뭘 하는데 쓰냐고? 뭐 크게 3-4가지 경우로 나뉘는데,

1. 연구비 제안서 작성

2. 연구 그룹 내 학생 및 포스닥 지도

3. 다른 연구 그룹과 진행하는 공동 프로젝트

4. 논문 작성 + 발표 준비 (이는 내 연구라고 할 수도 있는데, 학생때처럼 한 주제를 연구하고 논문을 쓰는식이 아니라 써야할 논문이 "항상" 있다. 이는 내 논문 말고도 그룹 내 학생과 포스닥의 논문, 그리고 다른 그룹의 논문을 포함한다.)


박사학위를 갖 받았을때는 어린 생각에 연구비 제안서 작성은 아주 부차적인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일" 정도로 간주했는데, 최근에 몇가지 제안서를 쓰면서 느낀점은 제안서 작성은 본인의 생각을 명확하게 하고 향후 연구 방향을 고민하는데 필수적인 과정이라는 것이다. 물론 연구를 진행하면서 나름 다음 방향을 생각하게 되지만, 머릿속에 맴도는 아이디어를 응집시켜 글로 표현하지 않으면 연구 방향에 일관성을 잃게 쉽다. 연구 아이디어를 글로 구체화해놓지 않으면 생각한 대로 연구를 진행하는게 아니라 연구가 되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한 분야에 획기적인 방향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그 순간 반짝 떠오르는 아이디어보다 오랜 기간 일관되게 꾸준히 한 주제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를 하는게 중요하다고 본다. 나는 최근에 연구비 제안서를 쓰면서 항후 5-10년간 방향을 고민하게 되었다.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을 글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았고 어떤 일보다 지적인 능력과 체력을 소모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포스닥이 되면서 맡게된 다른 업무 두번째는 학생 및 포스닥 지도다. 내가 있는 그룹에서는 어떻게 하다보니 내가 개발한 테크닉이 그룹의 주력 방법론이 되었고, 내 지도교수 또한 내 연구 주제의 방향에 대해 큰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에 내 연구 주제를 연구하는 학생과 포스닥이 여럿 생겼다. 당연히 지식과 테크닉을 전수하는건 내 몫이 되었고, 작년부터 여러번에 거쳐 강의와 튜토리얼을 그룹 내에서 진행했다. 다행히 최근 들어서는 지난 1년간 내가 알려준 테크닉을 익힌 동료 포스닥이 지식 전수 역할을 함께 분담한다. 일상은 아침에 출근을 하고 사무실 문을 열어놓으면 다들 차례차례 내 사무실을 찾아온다. 한명당 짧게는 15분, 길게는 한두시간 가량 함께 연구 주제를 고민하고 토론하다보면 어느덧 퇴근할 시간이 다가온다. 다른 해야할 일은 손도 대지 못한 경우가 많지만... 


특히 대학원생 지도를 하면서 느낀점은 워낙 학생별로 성향이 다르고 배경지식도 다르기 떄문에 '정도'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내가 생각하는 큰 방향은 아래와 같다.

1. 연구의 큰 비전을 항상 생각하고, 학생이 특정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 이 문제가 왜 흥미로운지, 왜 중요한지, 그리고 이 문제를 풀었을때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 등을 계속 질문하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가도록 장려한다.

2. 마이크로매니징은 하지 않는다. 특정 현상에 대해 연구를 하라고만 얘기하고 이를 어떤 테크닉으로 계산하고 어떻게 그래프를 그리는지 등은 전적으로 학생에게 맡겨둔다. 학생이 이를 물어보면 조언을 해주긴 하지만 구체적인 해결방법은 결국 본인이 찾고 풀어내야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3. 아직 논문 출판을 경험해보지 않은 학생들은 연구 방향이 산발적으로 되는 경향이 있는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가 어느정도 모이면 논문화 작업을 일찍부터 시작한다. 아무래도 학생 입장에서는 논문을 쓰기 시작하면 스스로 연구의 논리적 흐름을 생각하게 되고 빠진 내용이 있다면 추가하는 등 학생의 반응을 능동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인 듯 하다.


그리고 세번째, 공동프로젝트는 단순히 같은 문제를 함께 푸는게 아니다. 각자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보고 결과를 취합하고 다시 해야할일을 생각하는 무한루프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뚜렷한 아이디어와 리더십을 겸비한 사람이 없으면 프로젝트가 산으로 가기 쉽다. 


마지막, 논문 쓰기. 개인적으로 포스닥을 하면서 논문 글쓰기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생각한다. 연구비 제안서 뿐만 아니라 논문을 계속 작성하고 수시로 발표를 준비하다보니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개인적인 목표는 최소 하루에 한페이지정도는 글을 쓰는데 할애하는 것이다. 하루에 한페이지정도만 글을 쓰더라도 소위 "마인드셋"이 바뀌는 듯 하다. 글을 쓰지 않을때와 비교해 동료들과 토론할때 훨씬 논리적으로 내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듯.


포스닥을 하면서 하루가 바쁘게 지나가고 동시에 여러일을 하다보면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경우도 많지만,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그만큼 많이 배우고 성장하는 시간이라 생각된다. 물론 조만간 교수직을 구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특히 포스닥을 처음 시작할 때 진로의 불안정과 막연함에 부담이 되었지만), 이제는 나름 여유가 생겼는지 조급해하지 않게 된 것 같다. 오히려 대학에서 교수를 하기 전에 충분히 연구자 뿐만 아니라 매니저로써 나의 역량을 발전시키고 싶다. 


ps. 최근 들어 한글로 글을 쓰지 않다보니 문채가 엉망인 경우도 있지만 글을 다듬을 시간이 딱히 있는것도 아니라 그냥 떠오르는대로 글을 썼으니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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