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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G Dec 20. 2021

대학원생 지도: 좋은 질문보다는 솔직한 나만의 질문을

올해 가을에 들어 나도 드디어 공식적으로 석사과정 학생을 지도하게 되었다. 물론, 나는 작년부터 연구 그룹 내 다른 박사과정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었지만, 공식적인 지도교수는 내가 아닌 나의 지도교수이다보니 나의 권한이 크지가 않았다. 물론 나의 지도교수는 인간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매우 합리적인 분이라 항상 내 의견에 귀를 기울여주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전적으로 학생을 지도하다보니 연구 주제의 선정부터 지도 방식까지 많은 부분을 내가 주도적으로 이끌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내 아이디어를 주제로 지도 학생과 자유롭게 연구를 진행할 수 있어서 좋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담감이 상당하다는 것을 부인하기 힘들다. 특히, 3-4년간의 시간이 있는 박사과정 학생과 달리 석사과정 학생에게는 1년밖에 시간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리스크가 큰 아이디어를 과감히 시도하기보다는 연구에 운이 따르지 않더라도 탄탄한 연구가 될 수 있는 주제를 골라 성실하게 진행하는게 중요하다. 특히, 연구결과에 운운하기보다는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주제를 고르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연구 분야를 어느정도 파악한 박사과정 학생과는 달리 석사과정 학생은 정말 기본기 말고는 이 분야 연구에 대해 전혀 아는게 없다. 그러다보니 나는 기회가 될때마다 이 새로운 석사 학생에게 연구의 큰 맥락을 설명해주고, 본인이 진행하는 주제가 연구의 큰 흐름에서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왜 이 문제가 중요한지, 이 문제를 해결했을때 어떤것들을 알게될 것이며 어떻게 이 분야의 다른 주제와 접점을 갖게될지 등을 알려주려고 한다. 좋은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연구의 큰 동향을 파악하고 "본인만의 질문"을 던져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함으로써 본인 주도의 흐름을 만들어내는게 중요하다. 물론, 주어진 문제를 잘 풀어내는 능력도 필수인데, 석박사과정을 생각하고 있는 학생이라면 대부분 학사과정의 기본기를 잘 익혔기 때문에 학생간의 실력은 그리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내가 강조한 "본인만의 질문"은 단순히 좋은 질문을 의미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좋은 질문"은 해당 분야를 잘 파악하고 있는 전문가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질문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질문은 주관적인 성격을 갖기보다는 이미 해당 연구 분야에서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내용을 다루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질문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면 "좋은 질문"을 통해 연사가 나를 기억하게 함으로써 발표 후에 심도있는 토론을 할 기회를 만드는 식이다. 혹은,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학회나 미팅에 참석했을 때, 내가 당신을 잘 이해하고 있고 우리가 같은 페이지 상에 있다는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질문을 곁들이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좋은 질문"은 새로운 연구 주제로 이어지기보다는 이미 진행이 상당히 된 연구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연구를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본인만의 질문"을 해야한다는 것을 항상 학생에게 강조한다. 이러한 질문의 출발은 매우 주관적인 호기심에서 출발하는데, 마치 끊임없이 이어지는 어린아이의 질문과 비슷한 식이다. 아주 기본적인 수준으로 질문을 던져야만 내가 아는것과 모르는게 무엇인지, 내가 모르는 것이 나만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모두가 모르는 것인지, 그리고 이 문제를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것에서 풀 수 있는지 아닌지를 파악할 수 있다. 당연하지만 모든 연구는 지식의 경계를 명확히 파악하는 것에서 출발하며, 비유를 하자면 과학적 진보는 두 다리의 한쪽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영역에 있으면서 다른 다리를 찢는식으로 지식의 영역을 확장함으로써 이뤄진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항상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 어떻게 보면 멍청해 보일 수 있는 질문을 하려고 노력하고, 이는 내가 지도하는 학생들에게도 강조하는 부분이다. 알베트 아인슈타인은 멍청한 질문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멍청한 질문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알게 위해 하는것이 아닌 목적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겉만 봤을때는 멍청해 보일 수 있어도 매 순간 솔직하게 본인이 궁금한 것을 질문하고 답을 찾아간다면 이것들이 쌓여 이후에 훌륭한 과학적 발견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을 지도하다보면 이런 날것의 질문을 마주칠 때가 많고, 나도 이러한 질문을 통해 배우는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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