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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G Feb 28. 2021

연구자로서 나의 일과

지난주에 브런치 작가 선정이 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한글로 쓴 글은 별로 없어서 첫번째 작가 신청에 될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이왕 작가 선정이 되었으니 꾸준히 글을 쓸 생각이다. 뭔가 거창하게 연재를 할 생각은 없고, 일주일에 한번씩 그냥 떠오르는 주제가 있으면 그때그때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주말이 되면서 글을 한편 써야지 하고 생각을 하고는 있었는데, 막상 컨텐츠를 생각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 연구에 대한 글은 쉽게 쓸수 있을것 같은데, 너무 기술적인 부분이 많을것 같기도 하고 내 홈페이지의 블로그에서 주로 다루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브런치에서는 가벼운 글 위주로 누구나 편하게 읽을수 있는 글을 쓰려고 한다.


오늘 얘기하고 싶은 주제는 연구자, 그 중에서도 나의 일과다.


보통 나는 출근 (침실에서 거실로)을 하면 커피를 마시면서 새롭게 올라온 논문이 있는지 확인한다. 가장 먼저 확인하는 곳은 arXiv.org이다. arXiv는 저널은 아니고, 수학, 물리학, 컴퓨터과학 분야에서 논문 심사를 거치기 전 원고를 업로드하고 보관하는 사이트이다. 보통은 논문을 저널에 제출하기 전에 원고를 따로 arXiv.org에 업로드 하는게 관행이다. 왜냐하면 논문 심사를 통과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그 전에 결과를 다른 연구자에게 알리고 싶기도 하고, 심사 중에 경쟁 그룹이 비슷한 주제의 논문을 발표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arXiv에 올라온 논문은 심사를 거치기 전의 원고라 일종의 ‘날것’의 느낌이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주장을 하기에 충분한 데이터를 갖고 있지 않지만 꽤 과감하게 주장을 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arXiv에 “Discovery of ABC” 라는 파격적인 제목의 논문이 올라왔다면, 많은 경우 이 논문은 심사를 거쳐 “Evidence of ABC”라는 제목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나는 이러한 이유로 arXiv에 올라온 논문을 상당히 좋아한다. 물론, 리뷰를 거치기 전의 논문이라 모든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지만, 과학 분야에서 어느정도 트레이닝을 받은 연구자들은 무엇이 신뢰할 수 있는 주장/데이터이고 무엇이 추론에 불과한지 알 수 있다고 본다. 어쨌든 arXiv를 확인하고나면 매일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한번정도는 미국 물리학회의 Physical Review와  Nature, Science 저널을 확인한다. 이 저널들은 보통 일주일에 한번 혹은 한달에 한번씩 논문들을 발행하기 때문에 간간히 생각날때 한번씩 확인해주면 된다.


그 다음은 연구 노트를 확인하며 오늘 해야할 일들을 정리하고 우선순위를 정한다. 보통은 나의 메인 연구 프로젝트에 상당부분 시간을 할애하고, 나머지는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데 시간을 쓴다.후자의 경우 예를 들면


• 슈퍼컴퓨팅 센터에 시뮬레이션을 제출하는 일 (이쪽 일은 크게 하루 2사이클로 아침에 일어나면 전날 밤에 제출한 계산 결과를 확인하고 새로운 계산을 제출한다. 이렇게 제출한 계산은 저녁이나 밤에 끝나는데, 이 결과를 확인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다시 계산을 제출한다.)

• 코드에 간단한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거나 버그를 수정하는 일

• 간단한 질의응답 (보통 슬랙 채널에 수시로 질문이 올라오는데, 보통은 크게 집중을 하는 상태가 아니면 곧바로 답장을 한다. 내가 질문을 할때도 많다.)

• 학생 지도 (필요하면 미팅을 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슬랙 채널을 통해 매일매일 진행되는 일을 간단히 토론한다)

• 발표자료를 만드는 일

• 이메일 작성


정도가 있다. 그리고 일주일에 1-2회 정도의 세미나가 있고, 연구 프로젝트 미팅이 있다. 프로젝트 미팅은 평균적으로 하루에 한시간정도. 


나의 경우 메인 프로젝트는 크게 3개가지로 나뉜다.


• 대규모 시뮬레이션 연구: 초반에는 코드가 재대로 작동하는지 확인을 해야하기 때문에 수없이 많은 디버깅을 하며 시행착오를 거치지만, 어느정도 시뮬레이션이 궤도 위에 오르고 나면 하루에 1-2번씩 슈퍼컴퓨팅 센터에 계산을 제출하고 데이터를 확인해주기만 하면 된다.

• 새로운 물리현상을 예측하고 수식으로 이를 기술하는 일

• 새로운 물리현상을 기술하기 위한 시뮬레이션 방법론 개발


추가로 논문 작성이 있는데, 나는 논문을 쓸때는 프로젝트 진행을 하지 않고 일주일정도 집중해서 초안을 뚝딱 작성하는 스타일이다. 초안이 아주 나쁘지만 않으면 보통은 동료 연구자들의 피드백을 토대로 퇴고를 거치면 일이 금방 진행된다.


학생때와 비교할때 가장 큰 차이점은 학생때는 내 연구프로젝트 하나만 집중하면 되지만, 박사 후 연구원이 되고나서는 내 개인 프로젝트 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우선순위를 정해놓고 일을 하지 않으면 이것 저것 다양한 일은 많이 하지만 정작 메인 프로젝트는 진전이 별로 없는 상태가 반복된다.


이런 저런 일들을 하다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고 계획했던것보다 좀 더 일을 해야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오후 4시-5시가 지나가면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일이 더 남아있어도 접고 조깅을 하러 나간다. 조깅 후 샤워를 하고 저녁식사를 하고나면 다시 머리가 맑아져서 저녁에 1-2시간정도 일을 더 하기도 한다. 그래도 효율이 높은것 같지가 않아서 가능하면 저녁에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연구만한 재밌는 일이 많지가 않아서 저녁에 일을 하고싶은 유혹이 상당하지만, 너무 일만 하게되면 심리적으로 여유가 없어지고 건강 상태가 나빠진다거나, 파트너와 관계가 소홀해지는 등 삶의 다른 부분들이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잃는게 더 많다고 생각한다. 


저녁에는 요리를 하거나, 여자친구와 얘기를 하거나, 독일어 공부도 하는 등... 딱히 연구를 하지 않아도 다른 할일이 많다. 가끔씩은 영화도 보고싶고, 게임도 하고싶고, 책도 읽고싶고. ‘아, 학생때처럼 2달 이상 방학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종종 상상을 해본다. 



내 책상. 주기율표가 모니터 위에 있어서 수시로 원자의 정보를 확인할 수가 있다. 코드 수정을 하는 중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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