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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지 Mar 17. 2022

영물시장①|이야기가 된 시장

영물시장 markets of mystical creature



behind story of
markets of mystical creature


어느 날 책을 만들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중부의 시장을 중심으로 도시를 조망하고, 중심과 주변부에 대한 이야기를 미시적으로 이야기하는 책이라고 했던 것 같다. 사실 처음엔 뭔 말인지 못 알아들었고, 여전히 완전히 정답을 찾진 못했다. 하지만, 세운상가에서 2년 4개월을 일하면서 가게를 지키는 상인들과 손님, 그리고 그 속의 이야기들을 언젠간 한번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한번 해보겠다고 해버렸다.  그리고 이야기를 찾는 도시의 손님이 되어 발품을 판 결과로 책을 만들었다.


이름은 "영물시장"

영물들이 밤마다 나타난다는 어느 시장의 이야기다.


『영물시장』, 황예지, (2022. 3)



중부의 시장들 - 물건을 찾는 도시 주민들의 가장 쉬운 선택지


생각해보면 서울의 특화된 거대 시장은 다 중부에 있다. 옷을 사려면 동대문에 가면 되고, 외국인 친구에게 한국 음식을 먹이려면 광장시장에 가면 된다. 사업 전 포장지를 살 땐 방산시장으로 향하면 되고 고장난 라디오는 세운상가에 가면 되며, 건어물 사장은 멀리 갈 필요 없이 중부건어물시장에서 도매로 떼 오면 된다. 대부분의 물건이 이곳에 있기 때문에 중부의 시장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주민들의 가장 쉬운 선택지이자 가장 큰 마켓인 셈이다.


 이 모든 시장이 종로 3가에서 종로 5가에 걸쳐 있는데, 불과 세 정류장밖에 되지 않는 이 공간에 모든 시장이 얽혀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멀리 보면 조그마할 이 스팟에 서울 각지에서 뚜렷한 구매 목적을 가진 손님들이 매일같이 모였다 흩어진다.


도시와 도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이만큼 상징적인 곳이 있을까. 특히나 방산시장과 중부건어물시장은 도매시장이라 상인들의 필수 목적지이다. 각 지역의 모든 상인들이 목적을 가지고 수렴해 물건을 가지고 각지로 확장해가는 세계. 이곳의 미시를 기록하면 그것은 곧 도시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오래된 시장터, 새로운 사람들, 오가는 시간 속 고이는 마음들.


이 중부의 시장들은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냥 오래됐어하고 말로만 뭉뚱그리는 것이 아니다. 구석진 곳에 그려진 빛바랜 낙서와, 오래된 난간, 스러진 콘크리트 조각들이 문화재처럼 그곳에 여전히 존재하여 공간에 새겨진 역사다.

셔터에 온갖 전화번호가 적혀있는데, 마치 이 가게의 내력처럼 보였다. 오래된 계단과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손으로 쓴 안내종이가 이 공간에 아로 새겨진 시장의 역사가 된다.


이 오래된 공간엔 여전한 사람들이 일한다. 시장을 평생직장으로 삼은 상인들 이야기다. 생각보다 많은 상인들이 변하지 않고 오롯이 그곳에 있다. 몇 평 남짓한 공간에 자리를 뜨지 못하고 앉아있는 상인들은 마치 게임 속 npc 같은 모습이다. 한 사람의 일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이 가득찬 가게. 빼곡한 가게들 안에는 수많은 상인들 인생의 희로애락이 걸쭉하게 녹아있다.


그런 오래된 공간엔 매일같이 손님이란 이름으로 새로운 사람들이 찾아온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범상치 않다. 각 지역에서 한가닥 하는, 또는 한가닥 할 상인들이 아침나절부터 찾아오기 때문이다. 오래된 단골부터 신출내기 상인까지. 요즘 방산시장엔 학생들이 찾아와 빼빼로 포장지를 찾아대기 일쑤다. 세월의 흐름을 손님으로 알고, 장사의 트렌드를 손님의 요구에서 알아채곤 한다. 상인들이 시장의 역사를 지키는 씨실이면, 손님은 시장의 미래를 엮을 날실이 된다.


가게엔 주인의 시간이 흐르고, 손님을 따라 시대의 시간이 방문한다. 시장의 사람들. 그들의 시간엔 무엇이 묻고 어디로 퍼져나갈까.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어디로 고여 어떻게 이어질까.




시장 사람들의 시간이 쌓인 곳엔 어떤 이야기가 자랄까?


 모든 것이 수렴하고 확장하는 가운데 변하지 않는 상(像)들이 있다. 바로 가게의 카운터 한편에 놓인 동물상(像)들이다. 가게를 처음 오픈할 때 지인들로부터 받은 인테리어 소품들은, 하나같이 돈을 잘 벌게 해준다는 동물들로 가득하다. 두꺼비, 부엉이, 돼지에서부터 물고기나 용까지. 연필꽂이에서 풍경까지 그 쓰임도 다양하다. 이렇게 가게의 시발점에 놓여진 동물상들은 가게의 벽이나 카운터에 놓아져 가게의 흥망성쇄를 모두 지켜본다. 가게의 내력이 오래되면 오래될 수록, 동물상 위에는 가게의 먼지가 내려앉고 또한 시간이 쌓인다.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한다. 시장의 낮과 밤의 시간이 고이는 곳이 있다면, 이 동물상(像)이 아닐까?


가게 주인은 매일 바란다. 오늘도 손님이 많이 오길, 자식들 먹여 살일 돈이라도 벌 수 있길, 내일도 진상 손님 없이 평안하길 등등. 사람이 곧 돈인 시장터. 사람에서 시작해 사람으로 맺을 가게의 홍복을 들어주는 이들이 있다면 바로 이 동물상인 것이다.


운수 대통 재물복을 가져다 준다는 동물상(像)들은 매일 상인들의 염원을 담는 그릇이 된다. 그런 말이 있다. 물건에 기운이 담기면 생명을 얻는다는. 도깨비가 의지를 얻어 빗자루에서 신령스러운 존재가 되었듯이 수십년간 염원을 경청해온 동물상들도 어느 밤, 생명을 얻어 시장 곳곳에서 발견되지 않을까. 모두가 잠든 시장의 밤. 영물들의 목소리가 가득한 시장의 새벽녘의 이야기가 영물시장이다.


가까이 보기

책을 쓰는 과정은 도시를 가까이 들여다보는 과정이었다. 시장의 깊숙이 들어가 사람과 마음과 그리고 동물상을 발견하는 것은 가까이 보기의 과정이었고, 또한 영물상이 되어 시장과 도시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야는 좁았기 때문이다. 돋보기로 나뭇잎을 들여다보면 오로지 렌즈에 비친 부분만 볼 수 있듯이 이 이야기는 이곳 시장만의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도시의 시장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또한 흩어지는 곳. 이곳에 모여든 사람들의 일부가 모여 전체의 일면을 잠시나마 관찰할 계기가 되지 않을까. 눈에 비친 돋보기 속 잎맥의 풍경이 내가 알던 잎사귀와는 퍽 낯선 모습이라도 결국 이파리의 전부인 것처럼 말이다.


영물들이 가득한 시장의 밤. 그 안의 영물들의 이야기는 생경하지만 낮의 시장과 닮아 익숙하게 느껴졌으면 좋겠다. 멀리보면 다르지만 가까이 보면 닮았다는 말을 할 때가 있다. 단풍나무 이파리와 풀잎의 모양새가 다르듯 말이다. 하지만 가까이 비춰보면 그 잎맥은 여전히 복잡하고 생경하며 또한 생생하다.


영물시장이라는 이야기가 된 시장은, 영 낯설지만 생생한 도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러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전부라고 할 순 없지만, 이런 일면에 대한 관찰을 나의 언어로 풀어낸 책이라고 봐도 되겠다.



책은 3월 19일 부터 시작해서 매주 토, 일요일 마다 청계천 새벽다리 위에서 배포한다. 읽으면서 방산시장과 중부시장을 걸으면 또 다른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현실에서 조금 비껴난 도시 여행을 할 수도 있다.


이번 책은 판매 상품이 아니다 보니 아래의 링크를 통해 예약하고 을지로에 들러 가져가야 한다. 도시를 바라본 다른 음악인 분들의 공연도 볼 수 있으니 재밌는 을지로를 경험해보길 추천한다.


예약 바로가기(클릭!)


예약 가능 일자


03.19(토) 15:00-18:00
03.20(일) 15:00-18:00
03.25(금) 15:00-18:00
03.26(토) 15:00-18:00
03.27(일) 15:00-18:00





브런치에는 이 책에 대한 후일담들을 적어놓으려 한다. 작가는 작품에 모든 것을 담아야 한다고 그러던데, 입이 근질근질한 것을 못 참겠다. 능력 부족으로 책에 수놓지 못한 언어들을 브런치를 통해서나마 이야기할 예정이다. 좋아하는 영화의 후일담들을 찾아보는 것처럼, 영물시장의 후일담을 궁금해할 독자분들에게 좋은 읽을거리가 될 수 있길 바라면서.



#영물시장 #을지로 #시장 #소설 #스토리북 #황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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