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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안 Dec 29. 2022

담임 선생님께 엄마가 쓰는 편지

선생님 안녕하세요. 00 엄마입니다. 감사를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 편지를 씁니다. 내일이 공식적인 담임으로서 마지막 일정이시라니 지난 시간을 되돌아봅니다. 그리고 저를 되돌아봅니다. 올해 초 사고로 다친 아이를 지켜보며, 끝없이 가라앉고만 싶은 마음을 붙잡아야 했어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인지요. 그리고 망각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얼마나 축복인가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은 다시 사소한 걱정으로 하루를 채워 보냅니다. ‘회복만 하여라’, ‘건강만 하면 된다’는 그때의 그 마음을 잊어버린 채로요.


아이를 아이 마음으로 바라보시는 선생님을 보며 감동하고 반성합니다. 선생님을 생각하면 아이 곁에서 옹그리고 앉아 눈을 맞추시는 모습이 떠올라요. 엄마로서 저는 00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보다, 부족한 것을 늘 채워주려 조바심을 냈었던 것 같아요. 아이가 수줍음이 많다는 핑계로 늘 제 아이보다 앞서 나가는 엄마 마음을 선생님께서는 유연하게 붙잡아 주셨지요.


교사로서 저는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서 이따금 저를 봐요. 아이들에게 헌신하는 것도 어쩌면 ‘꽤 괜찮은 선생’이라는 자기애의 연장이 아닌가. 냉정하게 스스로를 돌아보면 그런 생각에 미칠 때가 있어요. 고등학생쯤 된 아이들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도 알고, 저를 쉽게 잊지도 않을 테니까요. 그렇게 저를 사랑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아이들을 살펴왔던 이기적인 저를 반성하게 됩니다.


선생님께서 온전히 아이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볼 수 있는 것은 잊힐 각오를 하셨기 때문이 아닌가요? 결국 ‘날려 보내기 위해 새들을 기른다’지만, 온 마음을 쏟았던 아이들에게서 잊힐 각오를 하는 것은 가장 높은 단계의 헌신이 필요한 일이 아닐까요? 새삼 선생님들을 존경합니다. 아마 이 아이들은 아주 높은 확률로 유치원에서의 하루하루를 잊을 겁니다. 그렇지만 선생님들께 처음 배운 것들은 마음에 오래도록 깊이 남을 겁니다. 부모가 아닌 존재에게 내 아이가 세상을 보는 기준을 배우고-그것도 아주 정직하고 따뜻한 방법으로-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제가 떼를 써서라도 선생님과 내년을 기약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더 좋은 것을 주셨을 것이란 믿음으로 새해를 맞으려 합니다. 그간 이루 말할 수 없이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덧없는 걱정이나 하며 감사 인사를 나눌 수 있어서 그 또한 감사합니다.


새해 선생님 건강과 행복을 진심으로 기도하겠습니다.


00 엄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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