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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뚜로 빼뚜로 Mar 25. 2022

두 명의 어머니, 그리고 하나의 이야기

영화 <패러렐 마더스(2022)> 리뷰

 제목에서 드러나듯, 영화 <패러렐 마더스(Parallel Mothers)>는 평행이론처럼 너무나 닮아있는 두 어머니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인 야니스(페넬로페 크루즈)는 30대 후반의 사진작가로 유부남인 아르투로(이스라엘 엘레할데)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갖게 되자, 자신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싱글맘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아나(밀레나 스밋)는 17세의 어린 산모로 아이의 아빠가 누구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이를 낳아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 한다. 같은 산부인과에서 같은 날 딸을 출산하게 된 두 사람은, 계획되지 않은 임신으로 인해 남편 없이 홀로 출산과 육아를 도맡아야하는 상황에 놓여있지만, 뱃속 아이를 지키려는 마음은 그 어떤 어머니보다도 단단하다. 서로에게 강한 동질감을 느낀 둘은 빠르게 가까워진다. 


산부인과에서 룸메이트로 만난 싱글맘 '야니스'와 '아나'


 퇴원 후,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딸을 키우고 있던 야니스와 아나. 그들은 우연히 야니스의 집 근처에서 재회하게 되고, 야니스는 무작정 가출한 아나를 자신의 집에 머무르게 한다. 같은 집에서 살며 야니스의 딸 세실리아를 아나와 함께 키울수록 야니스는 혼란을 느낀다. 병원에서 자신의 아이와 아나의 아이가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아나에게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고향마을의 유해발굴 작업 때문에 야니스가 전남친인 아르투로와 자주 만남을 갖자, 이를 질투하는 아나 때문에 둘 사이의 갈등은 더욱 깊어지게 된다. 결국 야니스는 아나에게 모든 사실을 고백하기로 마음먹는다. 이 고백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두 여자(아나와 딸 세실리아)가 떠나게 될까 너무나 두렵고 고통스럽지만, 자신의 핏줄을 찾아주는 일은 야니스 자신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함께 지내며 더욱 가까워진 '아나'와 '야니스'(좌) / '아나'와 딸 '세실리아'를 떠나보내는 '야니스'(우)


 과학적인 근거는 전혀 없으나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법칙 중에 “평행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평행이론(Parallel Life)이란 서로 다른 시대를 사는 두 사람의 운명이 같은 패턴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이론으로, 가장 유명한 사례는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평행이론이 대표적이다. 평행이론은 대체로 다른 시대에 살았던 두 인물의 동일한 삶을 다루지만, 이와 유사한 아인슈타인의 평행우주(parallel world) 이론 관점에서는 같은 시간에 나와 동일한 삶을 살고있는 자가 또 다른 세계에 존재함을 설명한다. 


 물론 <패러렐 마더스>는 미스터리영화도 SF영화도 아니기에 두 관점 모두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감독인 알모도바르는 이 영화를 통해 우리 모두의 뿌리와 역사가 사실은 (마치 평행이론처럼) 동일하게 반복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때 알모도바르가 제시하는 ‘우리의 뿌리와 역사’는 개인의 뿌리와 역사로서의 ‘어머니와 혈통’ 뿐만 아니라, 집단의 뿌리와 역사로서의 ‘민족과 국가’까지 포괄하고 있다.    

 

알모도바르 감독이 연출한 '어머니'와 관련된 영화들


 알모도바르는 자신의 뿌리와 역사에 관심이 많은 감독이다. 그는 늘 ‘어머니’에 대해 깊이 있게 몰두해왔으며, 스페인의 암흑기라 할 수 있는 ‘프랑코 독재 정권 시기’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지속해왔다.(그가 이런 시각을 갖게 된 데에는 영화를 막 배울 무렵 프랑코 정권의 독재와 억압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그동안 천착해오던 두 주제는 <패러렐 마더스>에서 가장 극적으로 결합한다. 국가의 역사를 바로 아는 것은 어머니로 대표되는 가족의 역사를 바로 아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야니스가 친자검사를 위해 딸 세실리아의 DNA를 채취하는 모습은, 유해발굴 작업을 위해 희생자 가족의 DNA를 채취하는 모습과 매우 닮아있다.    

  

영화 속 희생자 유해 발굴 장면


 이처럼 영화 <페러렐 마더스>에서의 평행이론야니스와 아나의 삶, 그리고 가족의 역사와 민족의 역사라는 두 개의 층위에서 드러난다. 여기서 필자는 또 다른 층위에서의 평행이론이 떠올랐다. 이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내전과 독재로 인한 수많은 희생자들은 비단 스페인의 역사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역사에서도, 아르헨티나의 역사에서도(임흥순 감독의 다큐멘터리 <좋은 빛, 좋은 공기>에서는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닮아있는 학살의 역사를 다룬 바 있다), 그리고 그 이외에 많은 국가에서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이 영화가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큰 울림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 같다. 


 결국 이 이야기는 야니스의 이야기이자 아나의 이야기이고, 나의 이야기이자 당신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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