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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뚜로 빼뚜로 Jun 07. 2022

손석구 입덕자여, 최고난도 공식 데뷔작을 부수어보자

'숨겨진 명작' 영화 <블랙스톤, 2015> 리뷰


  배우 손석구는 최근 JTBC 드라마 <해방일지>와 영화 <범죄도시2>로 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다. 자연스럽게 그에게 소위 입덕(덕후에 입문하다)한 팬들도 많아지면서 그의 지난 출연작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 2019>, <60일, 지정생존자, 2019>, <슈츠, 2018>, <마더, 2018>, <센스8 시즌2, 2017>을 넘어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 2021>, <뺑반, 2019>까지 진도를 얼추 나가면 제아무리 날고 기는 손석구 입덕자라고 하더라도 피해 가고 싶은 그의 공식 데뷔작 <블랙스톤, 2015>을 맞닥뜨리게 된다. 도대체 이 영화가 뭐 어떻길래 손석구 입덕자들에게 최고난도를 자랑하는 것일까.


영화 <블랙스톤, 2015> 포스터


<오염된 인간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영화 <블랙스톤>은 노경태 감독의 오염 3부작 중 세 번째 영화로 이전 작품으로는 <허수아비들의 땅, 2009>과 <마지막 밥상, 2006>이 있는데, <허수아비들의 땅>과 <블랙스톤>은 한국과 프랑스의 합작 형태로 제작되어 개봉까지 이루어졌다. 

  오염은 보통 불쾌감을 주고, 건강을 해치며, 다른 생명들의 생활을 방해한다. <블랙스톤>에서 오염은 손선의 캐릭터를 통해 시각화된다. 순수한 피가 아니라 무언가가 혼입 되어 오염된 것 같은 혼혈아 손선은 일찍부터 버림받았다. 양부모를 만나 입양되었지만, 아버지는 필리핀 출신이고 어머니는 중국 출신이라서 또 오염되었다. 군대에 가서도 손선은 종이 다른 두 동물 사이에서 난 새끼를 의미하는 튀기로 지칭되며 오염된 존재로 소외당한다. 나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 같은 상급 관리자는 성폭행으로 한 번, 에이즈 병원균으로 또 한 번 손선을 오염시킨다.

  상급 관리자를 살해하고 탈영한 손선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오염될 대로 오염되어버린 그는 과연 정화될 수 있을까. 닭공장에서 사망한 그의 어머니도 오염되었지만, 사장은 부정과 은폐의 기술로 덮기에 급급하다. 유골함을 찾은 손선은 아버지의 고향인 필리핀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그동안의 지겹고 끔찍한 오염을 끝내기 위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필리핀의 울창한 원시림 속에서 인간이 아닌 것 같은 존재들의 힘으로 손선은 살아난다. 이곳의 가족들은 시커먼 기름때들로 뒤범벅된 돌을 함께 닦는다. 불편한 사운드와 괴상한 돌들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화면은 덤으로 제공된다.


오염된 손선이 정화되는 곳


<손선과 닮은 분미>

  노경태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을 언급한 적이 있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은 영화 <엉클 분미, 2010>로 태국 최초 제63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여기에서 분미는 극심한 신장질환을 앓고 있으며, 고향으로 돌아와 남은 날을 보내고자 한다. 이 세상을 떠난 가족들은 유령의 모습이나 동물의 모습으로 분미 앞에 나타나고, 시간의 층위는 뒤죽박죽 얽혀버린다. 분미는 자신이 병든 이유가 농장에서 해충을, 전쟁에서 공산주의자들을 많이 죽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분미도 손선과 같이 어쩌면 오염된 존재이다. 분미는 자신을 정화하기 위해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영화 <엉클 분미, 2010> 포스터

 

<손선과 닮은 당나귀>

  노경태 감독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보다 먼저 자신의 영화에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로베르 브레송 감독을  꼽았다. 봉준호 감독과 돈독한 우정으로 한국 팬들에게 친숙한 배우 틸다 스윈튼은 영화 <당나귀 발타자르, 1966>에 출연한 당나귀가 가장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고 말한 적 있다. 발타자르는 처음 태어났을 때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이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폭력과 유희 또는 착취의 도구로 점차 오염된다. 발타자르를 사랑했던 마리도 여러 가지 인생의 곡절을 겪으며 오염되어간다. 마리가 떠나고 그를 오염시켰던 사람 중 하나인 제라르는 발타자르를 때리며 그에게 짐을 지워 국경으로 향하다 총소리에 놀라 발타자르를 버리고 도망간다. 발타자르는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죽는다. 이 때, 오염된 발타자르를 정화하려는 듯이 양 떼들이 모인다.


영화 <당나귀 발타자르, 1966> 포스터


  오염과 정화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영화의 이야기를 이끌어내다 보니 문장의 다소 과격한 위치에 몇몇 단어가 놓였음을 양해 바란다. 영화만이 가진 독특한 특징은 무엇일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관객에게 친절하지 않은 영화들이 탄생한다. 코로나19 이후 첫 천만 영화 타이틀을 거머쥘 것으로 예상되는 친절하고 재미있는 영화 <범죄도시2>를 부수었다면, <블랙스톤>으로 균형을 맞추어 보는 것은 어떨까. 쓴맛의 술이 있어야 단맛 짠맛 매운맛의 안주를 더 많이 먹을 수 있는 법이다.



해당 리뷰는 씨네 랩(CINE LAB) 크리에이터 '숨겨진 명작' 부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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