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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뚜로 빼뚜로 Jul 13. 2022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감춰진

영화 <로스트 도터(The Lost Daughter)>(2021) 리뷰

 

 <로스트 도터>는 숨겨진 명작으로 입소문 난 HBO 시리즈 <나의 눈부신 친구>의 원작자이기도 한 엘레나 페란테의 나쁜 사랑 3부작 중 "잃어버린 사랑"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더 파더> 등 굵직한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올리비아 콜먼과 감독으로서 처음 연출을 맡은 매기 질렌할의 만남만으로 영화는 화제가 되었다.

 

 신선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드라이브하는 주인공. 그리스의 한적한 해변 마을로 휴양 온 이 여성은 이탈리아 문학을 전공한 비교문학 교수 '레다'이다. 해변가에서 한가로이 홀로 휴가를 즐기던 그녀 앞에 보트를 탄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대가족으로 보이는 이들의 요란스러움에 눈살을 찌푸리던 레다의 눈에 '니나'가 눈에 띈다. 어린 딸아이를 안고 있는 니나의 모습을 찬찬히 그리고 집요하게 살피던 레다의 시선 끝에는 너무나도 매혹적인 여성과 완전히 지쳐버린 엄마 니나가 충돌한다. 그리고 레다는 자신의 과거를 그 위에 겹치기 시작한다. 


 언뜻 딸을 잃은 어머니의 처절한 드라마를 상상하게 하는 제목과 다르게 영화는 레다의 감정선을 좇으며 시종일관 관객을 혼란스럽게 한다. 사라진 니나의 딸을 찾아 그녀에게 안겨주다가도 아이의 애착 인형을 몰래 훔쳐 모두를 괴롭게 하는 등, 도통 저의를 알 수 없는 강박적이고 충동적인 행동과  편집증적으로 양극단을 오가는 레다의 무질서한 감정선을 쉽게 따라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레다의 현재와 과거의 회상을 오가는 서사 전개는 이러한 혼란을 가중시킨다. 


 그러나 니나를 통해 자신의 지난 시간을 반추하는 주인공의 양가적 감정을 그대로 좇는 것이 바로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촉망받는 예이츠(W. B. Yeats) 연구자였던 레다에게 두 딸은 마냥 사랑스럽지많은 않은, 마치 신발 속의 돌멩이 같은 존재다. 자연스러운 아이들의 성장기가 레다에게는 중압과 속박으로만 느껴진다. 매 순간 자신의 연구에 집중할 수가 없어 고통스러워하면서 동시에 그녀는 죄의식에 움츠러든다. 염증이 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학계에서 만난 저명한 학자와의 학문적, 성적 교류다. 그리고 결국 레다는 어머니로서, 어머니의 장소로 대변되는 가정의 울타리에서 머물러야 하는 자신의 파편화된 삶을 뒤로하고 딸들을 떠난다. 

 이러한 레다의 이면과 내재된 모순적 충동을 자극하는 것이 니나와 그 딸이다. 영화는 '날 것'의 레다를 통해 그동안 직시하지 않았던 여성과 모성성의 간극에 대해 토로한다. 딸을 감당하지 못하고 버거워하는 니나에게 레다는 3년 동안 아이들을 떠나 있을 때 느꼈던 희열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터뜨린다. 질식할 것 같은 삶에서 빠져나와 레다는 그녀의 이름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머니로서의 무게가 영영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잉태하는 그 순간부터 부여되는 모성의 이름은 희생적인 어머니의 서사를 강요한다. 사회적으로 날조된 모성의 신화는 어머니의 자격을 규정한다. 그리고 이에 반하는 수많은 모체의 삶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견딜 수 없는 죄책감과 죄의식이라는 상흔을 남긴다. 여성으로 태어나 어머니가 된 이들에게 부과되는 모성의 신화가 사회적 숭배와 혐오 사이에서 개개인의 정체성을 제거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내적 충돌이 우리에게 드러난 순간 불편하고 고통스럽고 기괴한 육체만이 남게 된다. 


  겉으로는 누구보다 여유로워 보이는 레다이지만, 그녀의 주변에는 언제나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다가오는 이들을 자신의 경계 밖으로 내몰았다가도, 누군가의 삶에 불쑥 끼어들기도 하는 레다를 보며 관객은 그녀의 널뛰는 감정에서 무엇이 진심인지를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며 이 같은 양가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감정들이 모두 레다의 것으로 타당했음을 이해하게 된다. 어머니라는 이름이 덧붙여졌을 뿐, 누구나 이 같은 관계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독은 그럴듯한 부연을 늘어놓으며 이 혼란함을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배우들의 섬세한 표현이 불친절하지만 필요한 인물 서사의 공백을 적절히 채워 놓는다.


 이를 담아내는 질렌할 감독의 세심한 연출 역시 돋보인다. 말로 전달되지 않는 내면의 충돌은 다양한 영화적 장치를 통해 표면화된다. 예를 들어, 푸른 바다에 몸을 맡긴 레다를 담는 쇼트에서 그녀의 몸은 반쯤 잠겨있다. 수면 위로 드러나는 평화로움과 다르게 물 밑의 감춰진 레다의 다른 한쪽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또한 레다가 숙소에 놓여있는 과일을 먹기 위해 들춰보는 장면도 유사한 맥락에서 읽어낼 수 있다. 노랗게 잘 익은 과일 하나를 들어 올리자 겉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던 새까맣게 썩은 뒷면에 구더기가 득실 거린다. 레다는 과일을 내다 버리지 않고 바구니가 놓여 있는 테이블을 통째로 눈앞에서 치워버린다. 그러나 한 번 폭발한 감정의 덩어리들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훔쳐온 인형을 찬장 깊숙이 숨겨놓은 레다 앞으로 수 십 장의 인형 사진 전단지가 뒤덮이고 인형 입에서는 꿈틀거리는 벌레가 기어 나온다. 레다 안에 깊숙이 감춰 둔, 하지만 더 이상 피할 수 없이 그녀를 잠식한 어떤 잠재의식이 아브젝시옹의 이미지로 그녀를 집요하게 좇는다. 


 영화의 마지막이 되어서 관객은 다시 영화의 첫 장면으로 돌아간다. 니나에게 선물 한 모자 핀은 레다의 배에 상처를 남겨 놓는다. 배꼽 바로 옆쯤 생긴 천공에서 피가 묻어 나온다. 레다는 그대로 앉아 아이들이 좋아했던 방식대로 오렌지 껍질을 깎으며 이제는 성인이 된 딸들과 통화한다. 뱀의 표피처럼 끊기지 않는 오렌지 껍질은 마치 모체와 태아 사이를 이으며 마지막까지 그 흔적을 남겨놓는 탯줄과 같이 이어진다.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감춰진 개인의 서사가 발화하기 시작하는 근래, 영화는 오랜 시간 걸쳐 만들어진 모성의 신화에 생채기를 내기 시작한다. 어머니로서의 의무감과 개인의 욕망 사이에서 고뇌하는 이들에게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틈새를 열어 놓는 것이다. 



* 해당 리뷰는 씨네 랩(CINE LAB) 크리에이터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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