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3일 일요일
어젯밤에 엄마 성지순례팀과 함께 숙소로 들어왔다. 펜션 Pero Sego에서 묵고 계셨는데 큰 대로변에 위치해 있었고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집주인이 사는 저택 뒤로 펜션이 있었다. 2인이 한 방에 묵고 계셨고 우리 모녀의 일정은 여행사와 미리 이야기를 해 두었던 터라 엄마는 룸메이트와 3인실에서 지내고 계셨다. 짐을 정리하고 침대에 누우니 자정이 넘었던 것 같다.
신부님께서 새벽 5시에 성모발현 언덕(Brdo ukazanja; Apparition Hill)인 돌산을 오르신다고 하셨다. 한번 가볼까 싶어 일찍 일어나 엄마와 몇몇 분들과 함께 신부님을 따라나섰다. 새벽 공기가 너무 상쾌하고 돌산으로 가는 길도 이뻐 보였다.
한 20분 정도 걸어서 돌산 입구에 도착했다. 곳곳에 표지판이 있긴 했지만 초행길이면 헤매기 쉬운 길이다.
그런데 이 돌산을 다들 신발을 벗고 맨발로 오르기 시작하셨다. 메주고리예에 도착한 날부터 맨발로 산을 오르셨다고 한다. 내 발바닥은 지압 슬리퍼도 못 신을 정도로 약한 데다 반평발이다.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 신발을 신은 채로 올랐다. 신기하게도 돌이 단단히 박혀있는지 밟아도 흔들리는 돌은 없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몇몇 다른 외국인들도 맨발로 오르는 분들도 계셨고 흰머리의 나이 지긋하신 분들도 이 돌산을 올라가고 있었다.
초입부터 묵주기도의 신비가 새겨진 돌이 띄엄띄엄 세워져 있다. 미리 챙겨온 묵주를 들고 기도를 하면서 산을 올랐다. 언덕을 오르는 길은 여러 군데가 있는데 우리는 시간관계상 빠른 길을 택했다. 언덕 꼭대기를 향할수록 펼쳐지는 풍경이 눈을 사로잡았다. 중간에는 신발을 벗고 양말을 신은 채로 올라가 보기도 했다.
30분 정도 지나서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상이 있는 언덕에 도착했다. 메주고리예가 성지순례로 유명해진 이유가 성모 발현지이기 때문인데, 1981년부터 유고슬라비아(현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조그만 산골 마을인 여기 메주고리예에서 6명의 어린아이들에게 목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도 성모 마리아의 발현과 메시지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교황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성지순례는 허용되고 있어 매년 약 100만 명의 순례자들이 다녀간다고 한다.
성모상 왼쪽 측면을 보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하여'라는 문구가 한글로 새겨져 있다. 여기에 순례를 오는 많은 분들이 같이 기도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감사한 마음이 든다. 신부님과 엄마팀은 한참을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셨다. 전 세계의 인류가 평화롭게 살기를... 그리고 우리 가족의 평화와 내 삶의 평화를 위해서도 기도했다.
성모상을 마주 보고 왼쪽에는 예수님 십자가가 있다. 사람들이 줄 서서 십자가에 손을 대고 기도를 한다.
돌산을 내려오는 길에도 묵주의 신비가 새겨진 돌이 곳곳에 있다. 다른 쪽 입구로 내려왔는데 파란색의 십자가와 작은 성모상이 있었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니 오히려 몸이 개운하고 좋았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도 맑은 공기를 마시며 넓은 들판을 보며 걸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침식사는 펜션에서 준비해 주셨다. 엄마가 속한 성지순례팀은 메주고리예에서 오로지 기도와 묵상을 하러 오셔서 하루 한 끼는 금식하시고 두 끼만 펜션에서 준비해 준 대로 드셨다고 한다. 여행사 대표님도 가톨릭 신자이신데 메주고리예 성지순례만 전문으로 하신다. 돌산도 먼저 맨발로 올라가시면서 몸소 보여주시고 프로그램도 기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준비하셨다고 한다.
주일 미사는 작은 소성당을 빌려 신부님의 집전하에 미사를 드렸다. 해외에서 드리는 한국어 미사는 항상 새롭고 반갑다. 점심식사 전에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성지순례팀은 오늘 저녁 비행기로 한국에 귀국하신다. 성지순례 일정이 타이트해서 기념품 쇼핑 시간이 없으셨다며 다들 기념품을 사러 가셨다. 메주고리예 마을 자체가 엄청 작아서 시내만 둘러보면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점심식사도 펜션에서 코스로 준비해 주셨다. 펜션 주인아저씨와 와이프가 요리를 직접 해주시는데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점심식사 후에 신부님과 성지순례팀은 짐을 싸고 떠날 준비를 하셨다. 약 2주간의 자유 여행을 떠나는 우리 모녀에게 무사히 잘 다녀오라고 말씀도 해주시고 생필품과 사발면 등 나눠주셨다. 작별인사를 하고 다들 버스에 올라 공항으로 출발하셨다. 여행사 담당 직원이 모시고 같이 한국으로 귀국한다.
우리 모녀와 여행사 대표님 그리고 메주고리예 젊은이 축제(International Youth Festival)에 참여했던 청년 몇몇만 남았다. 엄마와 나는 여기 펜션 Pero Sego에서 3박을 더하고 8월 16일 아침에 떠난다. 1박에 1인당 20유로를 추가로 내기로 했다. 여행사 대표님과 청년들은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에 메주고리예를 떠난다고 하신다. 청년 중 한 자매님이 메주고리예에 왔다가 크로아티아에 아예 자리를 잡아서 가이드와 통역가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여행사 대표님께서 미사 때 자매님이 통역을 해줄 테니 수신기 들고 시간 맞춰서 오라고 해주셨다. 메주고리예의 현지어는 크로아어티어이다.
엄마하고 펜션에서 쉬다가 저녁 미사를 드리러 성당 뒤편의 야외 제대로 나갔다. 워낙 순례자가 많다 보니 밤낮으로 여기서 미사가 열린다. 미사 말미에 치유의 기도 시간과 기념품(성물)을 축복해 주는 시간도 있다. 당일에 산 기념품을 들고 앞으로 나가면 신부님이 성수를 뿌려주시면서 축복해 주신다.
여행사 대표님과 청년들을 만나 같이 미사를 드렸다. 여행사에서 미리 프린트해서 나눠준 책자에 미사 통상문이 라틴어/한국어/크로아어티어로 번역이 되어 있었다. 자매님께서 통역까지 해주시니 미사에 집중이 너무 잘돼서 좋았다. 이제 엄마의 성지순례도 공식적으로 오늘로써 마무리되었다. 내일부터는 모녀의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