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4일 월요일
침 7시가 되기도 전에 눈을 떴다. 성지순례팀이 떠나고 나니 펜션이 고요했다. 단체여행객들을 받는 곳이라 우리가 머무는 동안에는 식사 제공이 어렵다고 한다. 엄마는 한식 파여서 서양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 힘들어하셨던 터라 잘됐다 싶었다. 예전에 둘이 이태리 여행을 갔을 때도 음식을 잘 못 드셔서 중국집을 많이 갔던 기억이 있다. 이번 성지순례 때 한식을 한 번도 못 드셔서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컵라면이 당긴다고 하신다. 아침식사로 짜파게티 컵라면, 햇반, 그리고 한국에서 싸 온 고추장멸치볶음을 꺼냈다. 펜션 앞마당 벤치에 앉아서 먹는데 엄청 맛있을 줄 알았던 한국 음식이 이상하게 맛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은 인근 도시인 모스타르(Mostar)를 가보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메주고리예로 오는 길에 경유했던 곳인데 너무 아름다워서 들러보고 싶었다. 버스 출발 시간이 11시 10분이라 오전에는 시내를 돌아보기로 했다. 펜션에서 나오면 바로 메인 도로이고 양 옆으로 펜션이나 기념품숍이 즐비해 있다. 마을이 작고 아기자기하면서 평화로운 느낌이 가득하다. 그리고 도로를 건너려고 서있는 것을 보면 지나가는 차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멈춰서 기다려준다. 관광객들이 많아서 일일이 양보하기도 쉽지 않을 텐데 교통 매너가 참 좋다.
성야고보 성당(Church of Saint James)에도 다시 가서 찬찬히 둘러보았다. 메주고리예 시내로 들어오는 길에 바로 보이는 쌍둥이 건물이 성당이다. 이 성당 뒤편이 야외 제대이고 야외석은 약 5천 명의 신자가 앉을 수 있는 규모다.
크로아어티어 미사 외에 독일어, 영어, 이태리어, 프랑스어, 폴란드어, 체코어 등 다양한 언어로도 미사를 집전한다. 한국어 통역을 듣고 싶으면 라디오 94.7 FM 주파수를 맞춰서 미사에 참석하면 된다고 한다.
메주고리예를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관광객들 사이에 유명한 치유의 예수상(Estatua de Cristo Resucitado)이 나온다. 예수상에서 나오는 물이 치유의 기적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엄마한테 보러 가자고 했는데 여행사에서 명확한 근거와 사례가 있는 게 아니라고 들으셨대서 보러 가지 않기로 했다.
시내에서 기념품 쇼핑도 했다. 똑같아 보이는 묵주와 성물도 숍마다 가격이 조금씩 달랐는데 자세히 보면 퀄리티나 마감이 조금씩 차이가 났다. 한국 어르신들 사이에 소문났다던 기념품 숍을 갔는데 너무 이쁜 묵주가 눈에 띄었다. 가격도 더 저렴하고 사장님이 친절하시다. 마음에 드는 묵주들을 눈도장 찍어둔 뒤 저녁에 구매하기로 하고 나왔다.
레스토랑 겸 카페도 들러서 마키아또(3유로), 레몬주스(4유로), 그리고 복숭아 주스(4유로)도 시원하게 한잔하고 잠시 쉬어가자니 좋았다.
버스 시간에 맞춰 정류장으로 갔다. 메주고리예를 들어오고 나가는 대중교통은 버스가 유일하다. 보통 단체 성지순례가 아닌 경우에는 크로아티아에서 여행하면서 올라오다가 메주고리예를 들르거나 보스니아 여행을 왔다가 메주고리예로 내려오거나 하는 두 가지 루트로 온다. 그래서 개인 여행은 렌터카로 많이들 다닌다.
메주고리예에서 모스타르까지 버스 요금은 1인당 5 마르크(2.55유로)이다. 우리는 11시 10분 출발인데 경험상 버스가 좀 늦을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고 기다렸다. 크로아티아 스플리트에서 출발해서 경유지들을 거쳐서 오기 때문에 시간 지체는 자주 있는 일이다. 다행히도 11시 44분에 버스가 도착했고 모스타르로 출발했다.
메주고리예는 산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흰색 십자가를 지나면 굽이굽이 돌아 내려가는데 풍경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운전을 험하게 하는 버스를 만나면 조금 무섭기도 하다. 약 1시간 정도 달려서 호텔 정류장에 들렀는데 여기서 다 내리라고 한다. 원래 모스타르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버스인데 왜 여기서 다 내려야 하냐며 몇몇 손님들이 컴플레인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모스타르 버스정류장에서 구시가지까지 도보로 10분 내외로 갈 수 있는 거리고 길도 캡처해 놨었다. 내가 구매해 온 유심은 유럽 대다수 국가에서 사용이 가능하지만 보스니아는 제외다. 며칠이면 떠날 거라 유심을 별도로 또 구매하기 번거로워서 대충 버티려고 했더니 이렇게 변수가 발생한다.
모스타르에서 메주고리예로 이동했을 때도 호텔에 들렀었는데 모스타르 버스정류장에서 꽤 가까웠던 것 같아서 걸어서 구시가지로 가도 될 것 같았다. 주변에 물어서 방향을 정하고 걷기 시작했다. 중간에 젤라또도 사 먹고 더위를 달래며 30분을 넘게 걸었는데 구시가지가 보이지 않는다.
길을 물어 가는 길에 성당도 하나 발견했다. 문은 닫혀있었지만 반가운 마음에 가서 짧게 기도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1시간을 넘게 걸어서 구시가시 입구에 도달했다. 바로 택시를 타고 이동할 걸 꽤 걷게 해서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걸어오는 길이 외곽으로 와서 그런 지 모르겠지만 한적하고 문 닫은 곳이 많았는데 구시가지 입구에 오니 관광객들이 꽤 많이 보였다.
모스타르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남부의 네레트바 강(Neretva River)에 걸쳐있는 도시이다. 오스만 제국 시대에 네레트바 강 위의 스타리 모스트(Stari Most; old bridge)를 지키던 지기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고 한다. 스타리 모스트는 재건된 중세 아치형 다리인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가장 방문객이 많은 랜드마크 중 하나이고 발칸 반도 이슬람 건축물로 간주된다. 1566년 완공된 스타리 모스트는 1994년 내전으로 파괴되었다가 2004년에 재건을 했고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입구로 들어가면 좁은 골목골목마다 상점과 노점상이 즐비하며 박물관도 있어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모스타르에는 터키식, 이슬람식 등 여러 문화가 어우러진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다.
모스타르 시내는 그렇게 한산하더니 여기 다 몰려있었나 보다. 어마어마한 인파에 치여 사진 찍기도 어려울 정도다.
여기가 유명한 스타리 모스트이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정말 아름답다.
날도 덥겠다 네레트바 강에 내려가서 물에 잠깐 몸을 담가보기로 했다. 물이 어쩜 이렇게 맑고 깨끗한지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강은 엄청 차가웠는데 막상 입수하니 시원하고 좋았다. 스타리 모스트에서 한 다이버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돈을 한참 걷더니 다이빙을 했다. 높이가 24미터인데 보는 내가 아찔해질 정도다. 돈 버는 방식은 정말 다양하다 싶다.
시원하게 물놀이를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 골목에 있던 식당 중에 손님이 많아 보이는 곳에 들어 체바피(ćevapi)(7 유로)와 송어요리(16.5 유로)를 주문했다. 체바피는 발칸반도 여행에서 빼먹을 수 없는 국민 음식 중 하나이다. 터키의 케밥을 뜻하는 오스만 튀르크어 케바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기, 양파 등을 납작 빵에 곁들여 먹는다.
체바피는 맛있었고 송어 요리는 바짝 굽지 않아서 그런지 조금 비린내가 났다. 엄마는 입맛에 맞지 않으셨는지 거의 못 드셨다. 골목을 한 바퀴 돌아본 뒤 밖으로 나왔다.
모스타르 버스정류장까지 도보로 10분 남짓 걸리는 가까운 거리였다. 호텔에서 내려주는 바람에 올 때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했다. 버스정류장 바로 앞에도 다리가 있는데 거기서 본 풍경도 기가 막혔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해 저녁 5시 15분 버스를 예매하고 맥주와 스프라이트를 한 잔 시원하게 마신 뒤 메주고리예로 다시 향했다.
메주고리예에 도착하자마자 눈도장 찍어두었던 묵주를 사고 미사를 드리고 나니 밤 9시경 되었다.
숙소로 오는 길에 무화과와 빵을 사 와서 간단히 먹고 오늘 하루도 기쁘게 잘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