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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Nov 28. 2023

전남편 베프의 아내가 전화했다

우리의 이혼이 영원히 비밀일 순 없겠지만

저녁 먹고 애들 숙제하는 사이 나도 일 하나를 막 하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이름 석 자가 화면에 떠 있었다. 별명도 아니고 애기 이름도 안 붙은, 아무 설명도 없는 그냥 이름 석 자. (구)남편 베프의 아내였다. 가족들이 모여 밥 몇 번 같이 먹은 적 있고, 외국살이 할 때 출장 오는 자기 남편 편에 한국 물건을 보내 준, 대단히 친하지도 않지만 아주 남인 것도 아닌 그런 사이.


이혼하면서 (구)시댁 식구들을 포함한 카톡 친구를 대거 정리했었는데 그때 이 친구도 숨김인가 차단 처리를 했었다. 남편끼리 절친하고 동갑이라는 사실 외에는 아무 접점이 없었기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정리한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친구가 내게 전화를 했다. 와이파이로 되는 카톡 전화가 아니라 내 한국 휴대폰 번호로.


받으면 필시 "한국 언제 들어왔어?," 혹은 "한국 들어왔다며?"로 시작될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았다. 그 사람에게 연락이 닿지 않아 내게 연락한 거라면 우리가 이혼했다는 얘기를 내 입으로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럴 리 없겠지만 혹여 이혼 소식을 그가 베프들에게 직접 전했다면, 구태여 더 설명하여 호기심을 채워 주고 싶지 않았다. 위로도 반갑지 않을 듯했다. 나는 이래도 저래도 불편할 그 전화를 끝내 받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일전에 어쩌다 들어간 어느 플랫폼에는 그 사람의 학업 진행 상황을 묻는 연락이 여럿 들어와 있었다. 아마도 그를 존경했고 나를 좋아했던 사람들. 나는 클릭해서 전문을 확인하는 대신 아무 연락도 못 본 척 로그아웃 했었다.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그 사람들과 인사 나눌 일은 없다.


받지 않은 전화 한 통 때문에 우스운 옛날 생각이 난다. 연락이 잘 안 되는 그의 안부를 내게 묻곤 하던 사람들에게 대신 답을 했던. 전남편 베프의 아내에게서 전화까지 오고 나니 분명 이혼을 다 했는데 여태 내가 그의 아내이기라도 한 것 같다. 남은 뒤치다꺼리가 많다, '더 신경 쓰지 않도록 신경 쓰는 일' 같은. e-피곤한 세상, 이것도 하다 보면 익숙해지겠지.



(이미지 출처=cellularnews.com)




자초지종이랄까.

https://brunch.co.kr/brunchbook/divorce-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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