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을 대체 몇 개나 쓴 겁니까 어머니
엄마가 반찬을 보내왔다. 분명 물김치랑 겉절이랑 보낸다고 했었는데 현관 앞에 엄청 큰 스티로폼 상자가 와 있었고, 낑낑대며 옮겨서 개봉한 상자 안에는 시래기국, 얼갈이김치, 연근이랑 우엉이랑 메추리알 조림 등이 들어 있었다. 배송 완료 문자가 갔는지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들깨가루를 국에 넣어야 했는데 깜빡했다는 것, 그리고 반찬을 조금 더 보냈다는 것, 대쪽갈비는 이렇게 저렇게 해서 먹어야 한다는 것 등을 설명했다. 고맙다고 잘 먹겠다고 인사를 했다.
참 오랜만에 받은 반찬이었다. 명절마다 방학 때마다 가면서도 엄마 반찬을 거의 안 가져왔었다. 나는 다만 엄마가 어린이 두 명과 사는 내게 보내온 음식이 생각보다 많은 걸 보며 엄마는 지금 나에게 미안하다 말하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친척들에게 내 이혼을 감춘다는 사실을 내가 안다는 걸 엄마도 안다. 엄마는 내 딸의 입단속을 바란 적도 있다. 그 일이 있은 후 결혼식장에서 나를 다시 만났을 때 엄마는 신부보다 내가 더 예쁘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몇 번이고 했다. 마치 그런 말로 뒤늦게 반창고라도 붙이려는 듯 말이다.
집에 반찬이 없어 저녁을 사 먹을까, 배달시켜 먹을까 했었는데 일흔 넘은 노모가 정성을 가득 넣어 만든 국과 반찬으로 끼니를 잘 해결했다. 그리고 며칠이나 지났나, 시킨 적 없는 택배가 또 한 상자 도착했다. 뼈해장국이었다. 엄마는 지난번에 끓인 감자탕이 뭐가 이상하게 됐어서 그래서 사서 보냈다고 했다. 딸 이혼한 거 아무한테도 말 안 하고 숨기면서 제일 신경 많이 써 주는 게 우리 엄마다. 아이들과 내려가면 항상 아이들한테 게으른 나는 안 해 주는 맛난 음식을 해 주는 외할머니가 우리 엄마고.
"공주야, 겉절이 어때? 할머니가 배추 선물 받아서 그걸로 만든 거래."
"엄청 맛있어. 입맛에 딱이야! 할머니가 저번에 나한테 뭐 먹고 싶냐고 물어봤었거드은~"
"저번에? 저번에 언제?"
"어, 저번에 무슨 요일이었지? 할머니 전화 왔었거드은~ 뭐 먹고 싶은 거 없냐고 해서 내가 할머니 김치 먹고 싶다고 했었어."
"진짜? 할머니가 그래서 공주 먹으라고 이것도 보낸 거구나~ 엄마는 아무것도 몰랐네에~"
둘이서 그런 얘기를 나눈 줄 나는 정말 몰랐다. 그래도 이거 하나는 잘 알겠다. 이것이 우리 엄마가 살아가는 법이라는 걸. 나의 노모가 살아가고 사랑하는 법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