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팬덤이 된 이유
최근 포커스미디어코리아가 진행한 온라인 설문 결과에 따르면, 어버이날 선물로 가장 드리고 싶은 가수의 콘서트 티켓으로 임영웅 콘서트가 선정되었다. “엄마가 임영웅을 포토 카드 사달라고 한다”는 인터넷 게시글은 이제 낯선 것이 아니다. 같은 색의 옷을 입고 삼삼오오 모인 4060 트로트 팬덤이 우리에게 익숙해진 까닭이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있다. 4060은 왜 트로트의 ‘열성팬’이 된 것일까?
2024년 4월 24일, SBS미디어넷이 기획한 트로트 시상식 ‘TTMA 2024’가 열렸다. 국내 최초로 트로트만을 위해 마련된 이번 시상식의 탄생은 아이돌 문화가 주를 이루었던 한국 대중음악계가 변했음을 시사한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4060이 주를 이루는 트로트 팬덤이 있다.
2019년 TV조선에서 방영한 ‘미스트롯 1’의 우승자 송가인을 중심으로 이른바 트로트 팬덤의 시대가 열렸다. 전작의 성공을 토대로 기획된 ‘미스터트롯 1’은 우승자 임영웅은 물론, 영탁, 이찬원, 정동원 등 본선에 진출해 경합했던 후보들을 TOP 7이라는 이름으로 묶는 데 성공했다. TOP 7은 아이돌 그룹처럼 따로 또 같이 활동하며 트로트 신드롬에 불을 붙였다.
트로트 팬덤은 이른바 활기찬 인생을 살아가는 노년층(Old People with Active Life)의 약자인 ‘오팔세대’가 다수 속해있다. 탄탄한 경제력과 안정적인 삶의 기반은 물론, 여가와 사회활동 참여에 적극적인 것이 오팔세대의 특징으로 꼽힌다. 이러한 특징을 증명하듯 트로트 팬덤은 다양한 활동으로 미디어를 장식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활발한 기부다. 영탁의 팬클럽은 가정의 달을 맞아 사흘 간격으로 연달아 기부하며 화제를 모았다. 유명인이나 연예인의 팬덤이 모여 진행하는 ‘팬덤 기부’ 문화가 트로트 팬덤 문화로 자리 잡으며, 경제력이 있는 트로트 팬덤은 기부계의 큰손으로도 떠오르고 있다. 트로트 팬덤의 기부는 이태원 참사, 대형 산불 등 전국적인 참사에 공감하는 것은 물론, 송가인의 고향 진도에 기부하는 등 연예인의 고향, 모교, 관련 인물 등에 기부한다는 특징이 있다. 가수의 생일에 맞춰 기부하거나 기부 금액을 기념일과 통일시키는 등 팬덤의 아이덴티티를 담아내는 것도 팬덤 기부의 특징이다.
지역별로 ‘지부’를 만드는 등 오프라인 소모임이 활발한 것도 트로트 팬덤의 특징이다. 최근 임영웅의 팬덤의 봉사 모임은 63번째 도시락 봉사를 진행했는데, 지속적인 봉사활동 또한 오프라인 모임의 활성화에서 기인한 것이다. 함께 가수의 고향을 방문하거나 자신의 사업장을 팬들의 모임 장소로 활용하는 것도 이와 같다.
팬덤 문화에는 ‘조공’이라는 문화가 있다. 모금을 통해 모은 돈으로 선물을 구입하는 것부터 밥차, 커피차, 생일 광고 등을 진행하며 기념일을 축하하는 것을 으레 ‘조공’이라 부른다. 아이돌 팬덤에서도 ‘조공’ 문화가 활발하지만, 트로트 팬덤의 ‘조공’은 값비싼 물건에 한정되지 않는다. 임영웅이 전국 팔도에서 김치를 선물받는다고 밝힌 것처럼 정성이 가득한 음식이나 물건 등이 주를 이룬다.
기부와 봉사, ‘조공’을 위한 모금과 음식 만들기 등, ‘덕질’은 많은 시간과 돈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그럼에도 ‘덕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수많은 이유 중 하나는 트로트 팬덤의 활동에서 찾을 수 있다. 대규모 팬덤을 구성하고 있는 기존의 아이돌 그룹 팬덤이 주로 온라인에서 결집하는 데 비해, 트로트 팬덤은 오프라인 모임이 활발하다. 이는 친밀감을 느끼는 대상과 소통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기인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콘서트, 공개 방송 등 가수의 스케줄과 관련된 오프라인 행사뿐 아니라 팬덤끼리 단체 여행을 가는 등 친교의 의미를 띈 자발적인 오프라인 모임이 잦다는 것이다. ‘영웅시대 울산지부 정모’ 등 지역 단위의 모임을 넘어, 함께 음식을 만들거나 운동을 하는 등 개인의 관심사에 따른 모임도 활발하다.
여기서 두 가지를 확인할 수 있다. 먼저 팬덤이 가족과 같은 소속감을 가지게 해, 지속적인 봉사나 기부도 즐겁게 하는 것이다. 또한 팬덤 모임이 ‘덕질’을 기반으로 하지만 단순히 가수를 서포트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개개인의 취향과 욕구까지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개인이 팬덤 안에서 새로운 페르소나를 얻게 되는 것 또한 4060세대가 팬덤에 몰입하게 되는 원동력이 된다. 팬카페에서 사용하는 닉네임으로 스스로를 설명하며 누구의 엄마, 어느 회사의 부장 등 기존의 페르소나와 직함을 모두 잊게 된다. 송가인 팬덤의 깃발을 즐겁게 흔드는 아버지를 본 딸이 “평생 아빠가 과묵한 사람인 줄 알았다”라고 말한 일화와 같이, 자신을 새롭게 규정하며 자신도 몰랐던 자기의 모습과 개성을 발견하며 삶의 활력과 성취감까지 얻게 되는 것이다.
나보다 가족에 집중해야 했던 시간을 지나, 은퇴와 자녀의 독립 등으로 다시 찾게 된 나의 시간. 이 시간 속에서 팬덤이 몰두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새롭게 되찾은 자신 자신일지도 모른다.
관심 있는 연예인의 이름을 포털에 검색한 뒤 공식 카페에 가입해 인사말을 남겨보자. 좋아하는 마음만 있다면 모든 준비는 끝이다. 앞서 ‘덕질’을 시작한 이들이 기꺼이 길라잡이가 되어줄 테니까 말이다.
글 최윤영 (ANTIEGG 에디터)
사진 셔터스톡
* 쇠부리토크 트렌드 이야기(Vol.1190 (2024.05.17) 에 수록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