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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영 Jun 22. 2022

영화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진짜 '죽여주는' 영화가 보고 싶을 때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제 2차 세계대전을 기억하는가? 
제 2차 세계대전을 논할 때에는, 참으로 애석한 이야기지만, 히틀러가 이끌었던 나치당을 빼놓을 수가 없다. 나치는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 하였으며, 그 대가로 많은 지역을 점령하였다. 또한,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유태인을 학살했다. 
우리는 그 나치와 조우해야 한다. 

영화의 첫 시작, 나치군의 대령인 한스는 한 농가에 찾아가 숨어있는 유태인 가족을 찾아내고, 그들을 향해 무자비한 사격을 가한다. 지하에 숨어있던 유태인 가족은 총을 피할 틈도 없이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하지만 한 소녀는 겨우 목숨을 건진다. 소녀는 죽은 가족들의 시신을 두고, 울면서, 쉼없이 달린다.  나치의 총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런 소녀의 등 뒤에서 한스는 웃으며 한 마디 던진다.


"또 보자, 쇼산나!"

그렇게 영화는 시작된다.


나치를 향한 복수를 다짐하며 살던 소녀. 마침내 복수의 기회가 찾아온다.
프랑스인으로 신분을 위장한 채 살고 있는 쇼산나의 극장에서 독일인의 밤 (나치들의 파티)이 열리게 된 것이다. 괴벨스와 히틀러까지 참석하는 대대적인 행사였다. 복수할 기회는 딱 한 번 뿐이다. 그런데 이 극장에는 나치가 아닌 또 다른 인물들이 숨어있다. 바로 바스터즈. 일명 '나치 잡는' 개떼들이다.



1. 나치들

우리가 제일 먼저 만날 나치는 바로, 한스 란다 대령이다. 한스 대령은 나치의 충실하고 능력있는 부하이다. 상부에서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낸다. 또한 주위 사람들에게도 친절히 대해, 그를 본 사람은 누구나, '아, 그는 아주 친절하고 배려 깊어요.' 라고 할 것이다. 그래. 겉모습은 분명 그렇다. 본인들이 점령한 프스 농민의 집에 찾아갈 때에도, 정중한 방문객의 모습을 하고, 일일이 양해를 구하고, 불어로 말을 걸어주기도 했으니까. 기존의 건방지고 공포스러운 나치와는 다르리라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친절한 모습은 모두 가면일 뿐. 
자신과 같은 '나치'가 아닌 유태인들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고, 같은 나치라 하더라도 본인의 이익과 커리어를 위해서는 무참히 살해할수 있는 그런 사람이 바로 한스다.

한스는 이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영화의 문과 같은 역할이자, 우리가 가장 증오하는 나치의 얼굴을 하고 있기도 하다.


또 다른 나치는 프레드릭.
독일 국민이라면 그의 이름과 얼굴을 모를 수가 없다. 그가 수백 명의 사람을 죽인 전쟁 영웅이기 때문이다. 그는 첫 날 60여명, 그 다음날 150여명을 죽인 화려한 전적을 가지고 있다. 그의 공을 높이 산 요제프 괴벨스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프레드릭은 이 영화의 중심사건을 만들어준다. 쇼산나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녀의 극장에서 괴벨스의 영화 시사회를 하자고 제안하기 때문이다. 
나치에 의해 가족을 잃은 쇼산나의 극장에서, (물론 프레드릭은 쇼산나를 프랑스인으로 알고 있지만) 수많은 나치와 그의 가족, 연인들을 초대하여 나치들의 밤을 열겠다는 것이다. 쇼산나는 그 역겨운 제안을 받아들인다. 복수를 위해서다.  그렇게 쇼산나의 극장에는 한스와 프레드릭, 괴벨스와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모이게 된다.



2. 나치 잡는 사람들

1941년 나치의 유대인 사냥에 대항하기 위하여, 미국은 유대인 출신의 군인들로 나치 잡는 특공대를 조직한다. 이름하여 개떼들이다. 개떼들의 수장인 알도 레인 중위는 이탈리아 출신의 유대인으로, 나치들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개떼들의 목표는 다른 부대와 달리, 나치를 급습하고 포로를 삼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쓸어버리는 것이 목표다.

개떼들은 나치를 급습한 뒤, 모조리 살해한다. 살해한 후, 죽은 시체들의 두피를 벗겨 (칼로 뭉텅뭉텅 썰어댄다) 모으는 것은 기본 옵션이다. 알도는 한 사람 당 100명의 두피는 모아야 나치 잡는 프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알도의 부대원 중에는 나치의 장교들을 살해했던 독일군들도 몇이나 있다.


알도에게 잡힌 모든 나치가 죽는 것은 아니다. 간혹 살아 돌아가는 나치들도 있다.  알도는 나치 대원을 돌려보내주기 전에 커다란 칼로 이마에 나치 문양을 그려 넣는다. 나치가 군복을 벗더라도, 나치임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나는 알도가 그들을 돌려보내는 이유를 '겁주기 용' 이라 생각했다. 알도가 그들의 이마에 박아넣은 나치 문양, 그리고 그들이 목격한 바스터즈의 무자비함들은 또 다른 나치들을 공포에 몰아넣기에 충분했으니 말이다. 알도는 히틀러가 쇼산나의 극장에서 열리는 나치의 밤에 참석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민간인으로 위장하여 시사회에 참석한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로 들어간다, 그렇게 비유할 수 있겠다. 하지만 우리는 이 대목에서 긴장할 수밖에 없다. 개떼들이 천하무적임은 틀림없지만, 전쟁 영웅인 프레드릭과, 한스가 있는 극장 안에서도  과연 진가를 발휘할 수 있을 지는 두고 봐야 하는 이야기이니 말이다.


과연 개떼들은, 그리고 쇼산나는 계획대로 복수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3. 바스터즈가 끝내주는 영화인 이유?


나치와, 나치 잡는 이들에 초점을 두고 있다보니 다른 전쟁 영화와 달리 큰 전투신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대신 각 캐릭터가 가진 에피소드를 풀어내는데 집중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를 외치고, 서로를 향해 총질하기 바쁘지만, 분명 가볍지만은 않다.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평범한 일상, 살기 위해 이웃을 팔아넘겨야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보이기 때문이다.


나치의 일원이긴 하였지만, 어제 태어난 아들 이야기를 하며 행복하게 웃던 한 아버지의 모습. 나치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쇼산나와 그 가족이 숨은 장소를 알려주고 목숨을 부지한 프랑스 농민이 울음을 터트리는 모습도, 마음에 와닿기에는 충분했다. 이런 일이 없었다면, 어쩌면, 그들도 우리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사투리까지 재연해냈던 브레드피트와 그 외 수많은 배우들의 연기력(과 비주얼)도 눈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요소 중 하나지만, 사실 이 영화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수많은 이들의 삶을 파괴했던 히틀러와 괴벨스가 정말이지 무력한 존재로 나오기 때문이다. 나치의 심볼과도 같은 히틀러를 향한 분노
 무자비하게 표출 할 수 있는, 그러니까 히틀러의 머리에 수 십번의 총질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쿠엔틴 말고 누가 또 있을까 싶었다. 처참하리만큼 가감없는 복수 가운데에서도 히틀러가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아무튼 이쯤 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다. 진짜 죽여주는, 나치 사냥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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