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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시 Sep 01. 2024

‘짐 싸기 파티’ 프로젝트를 아시나요?

필요한 것만 남기는 과감한 도전

지난 수요일 밤, 갑자기 번뜩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집 안의 물건을 여러 개의 종이봉투에 마구 담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당장 내일 이사라도 갈 사람처럼 말입니다. 야심한 밤, 제가 이와 같은 기행을 벌인 것은 출근길에 읽던 책에 등장한 ‘짐 싸기 파티’라는 것에 도전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미니멀리즘 : 오늘도 비우는 사람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미니멀리즘 : 오늘도 비우는 사람들>을 보신 분 계신가요?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 있는 두 남자 조슈아 필즈 밀번과 라이언 니키디머스의 여정을 그린 비디오입니다. 라이언은 미니멀리즘을 실천한 뒤로 언젠가부터 달라보게 행복해진 듯한 오랜 친구 조슈아를 보고 자신도 미니멀리즘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들여 천천히 물건을 줄여나가기엔 조급함이 들었던 그는 미니멀리즘의 효과를 빠르게 체험하기 위한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고안해 내는데요. 그것이 바로 ‘짐 싸기 파티’입니다.


당장 내일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하고서, 우선 집 안의 모든 물건들을 박스에 다 담습니다. 칫솔 등의 욕실용품부터 부엌의 조리도구, 옷과 가방, 작은 소품들까지 남김없이 다 이삿짐 박스에 넣어 둡니다. 그리고는 3주 간 필요한 물건들을 박스에서 꺼내 사용합니다. 그렇게 3주가 지나고 나면 내가 꺼낸 도구들과 박스에 포장된 채로 그대로 들어있는 물건들이 남게 됩니다. 그렇게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은 버리거나 기부합니다. 3주가 지난 뒤, 어떻게 되었냐고요? 그의 물건들은 무려 80% 이상 박스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가 사용한 물건은 고작 20% 뿐이었습니다. 라이언이 말하길, 박스 안에 어떤 물건이 들어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작년부터 조금씩 물건을 비워왔던 저는 최근 들어 고착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만 필요한 것을 알면서도 버리기 아까워서 쟁여둔 물건들, 벌써 몇 년째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뉴욕 기념품’이라며 모셔두고만 있던 가방, 컵을 수집하던 과거의 취미 탓에 1인 살림치고 찬장을 가득 채우던 컵들이 그대로 있었지요. 불필요한 물건을 몇 달간 신나게 버리고 나니, 점차 취향과 욕심, 실용과 추억의 경계에 남게 된 물건들만이 남아 어쩔 줄 모르고 방치하고 만 까닭입니다.


마음이 어수선하던 이번 여름도 끝자락을 향해 달려가니,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라도 조금은 특단의 조치를 취하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볼 땐 ’재밌겠다‘ 하고만 넘겼던 라이언의 프로젝트를 마침 읽고 있던 책에서 다시 마주쳐, 이번에야말로 한 번 도전해 보자고 마음을 먹은 것입니다. (‘계시다!’라는 생각이 들었달까요)


종이 봉투에 모아 둔 물건들


이삿짐을 싸기에는 현실적으로 너무 좁은 방 크기 탓에 제가 활용한 것은 그동안 모아둔 종이 봉투입니다. 큼지막한 사이즈의 종이 봉투들을 골라 책상 위의 물건들부터 부엌의 상부장, 영양제, 헤어 용품까지 가능한 만큼 쓸어 담듯 그 안에 넣었습니다. 그러고선 비장한 마음이 되어 속으로 회심의 각오를 다졌습니다. ”이제부터 한 달간, 필요한 물건들만 꺼내어 사용해 볼 테다.“ 어떤 물건부터 꺼내게 될까 하는 설렘 반, 한 달이 지난 뒤 실제로 내가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은 물건은 각각 얼마나 될까 하는 호기심 반, 그리고 결국 꺼내지 않은 물건들은 이번에야말로 거의 처분하겠다는 약간은 겁이 나는 단호한 결심과 함께 스타트를 땅! 울렸습니다.


텅텅 빈 책상 위와 물을 마시기 위해 꺼낸 컵 하나.


시작하자마자 텅텅 빈 책상 위와 상부장 등을 보니 마치 일상이 환기된 듯 상쾌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가장 먼저 꺼낸 물건들이라고 하면 이런 것들입니다. 칫솔과 치약, 물통과 물컵, 아이패드와 충전기, 스킨케어 용품, 일기장. 비워진 자리에 다시금 하나씩 소박한 물건들이 올라오는 모습이 꽤나 흥미로웠습니다. 비록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오, 이렇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것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물을 마시기 위한 컵, 스킨케어 제품들, 일기를 쓰기 위한 물건들.


1. 의외로 청소 도구가 빨리 필요해졌습니다.

가구 위의 물건들을 드러내니 그 위에 쌓여 있던 먼지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평소 자주 쓰지도 않던 먼지떨이를 급히 찾아 먼지를 털고, 소창 수건으로 책상을 닦느라 금세 분주해졌습니다.


2. 물건 하나하나를 깨끗이 하고 싶어집니다.

눈에 보이는 물건이 몇 없다 보니 물건 하나하나의 존재감이 전보다 훨씬 선명히 다가왔습니다. 자연스레 그 물건의 뚜껑이나 윗면에 쌓여 있던 먼지가 보여 하나씩 닦아나갔습니다. ‘선택된 물건’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니 새삼 애틋한 마음이 떠올라, 이제부터 다시 깨끗하고 소중히 다루고 싶다는 기분이 됩니다.


3. 물건을 쓸 때마다 쓰임을 깊이 의식하게 됩니다.

물을 마셔야 해서 컵을 꺼낸다, 양치를 해야 하니 칫솔을 꺼낸다, 일기를 써야 하니 볼펜을 꺼낸다... 평소에는 별생각 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썼던 물건들을 필요에 따라 다시 찾고 사용하다 보니 물건마다 쓰임이 더욱 또렷하게 다가왔습니다. 동시에 쓰임에 맞게 그 물건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소창 수건으로 텅 빈 책상을 닦습니다


4. 무엇을 사용할지 신중하게 고르게 됩니다.

책상을 닦기 위해 물티슈를 꺼낼 것인지 소창 수건을 꺼낼 것인지 고민을 하다 소창 수건을 골랐습니다. 소창 수건을 물에 적시고 물기를 짜고 두어 번 가지런히 접어 책상을 닦는 기분이 물티슈로 허겁지겁 닦고 말 때와는 다르게 무척 포근하게 느껴졌습니다. 또한 룸스프레이를 쓰고 싶은데 원래 가지고 있던 세 가지 중에 지금 어떤 걸 고르면 좋을지 더욱 신중하게 고민하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막상 선택한 것은 평소 책상에 가장 가까이 놓여 있어 자주 손을 뻗곤 했던 제품이 아닌, 저멀리 한켠에 방치해 두고 있던 이솝 룸스프레이였습니다.


5. 사용 유무를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됩니다.

일단 종이봉투에 모조리 담겨 있으니, 물건을 찾아 꺼내는 일이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꺼낼까?’ 싶다가도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니면 ‘에이, 말자’하고 관두게 됩니다. 물건 더미를 뒤져서라도 꺼내야 할 것과 굳이 수고를 감내하고 싶지 않은 것, 그 구분이 결국 내게 정말로 필요한 것과 아닌 것을 구분 짓게 되는 것이겠지요.


짐 싸기 파티 2일 차에는 퇴근 후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설레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왜인지 집에 돌아가는 기분이 아니라 나를 위해 쾌적하게 세팅된 호텔에 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책 한 권과 찻잔 하나


얼마 전 법정 스님의 책을 읽다가 이런 일화를 마주했습니다. 소중히 사용하던 만년필을 여행지에서 우연히 발견해 하나 더 사들였더니 하나만 갖고 있었을 때의 살뜰함이 사라져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필요한 것만을 딱 맞게 가지고 있을 때의 알차고 풍족한 기쁨. 그 공기가 집 안에 다시 감돌고 있는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그 ‘살뜰함’이라는 것을 다시금 물건마다 수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짐 싸기 파티’를 다시 소개한, 요즘 읽고 있던 책의 서두는 미켈란젤로의 일화를 인용하며 시작됩니다. 누군가 다비드 상을 어떻게 조각했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다비드가 아닌 것을 다 없애고 나니, 다비드가 되었다.”


내가 소유한 물건들이 나다움을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오히려 나다움을 가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 듭니다. 정말 필요한 물건만을 곁에 두게 되었을 때의 내 모습과 방 안의 풍경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거듭날지 기대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부엌 상부장에 다시 놓이게 된 그릇들


‘짐 싸기 파티’는 다소 극단적일지도 모르지만, 물건을 비울 때 머릿속으로만 필요한지 아닌지 떠올리는 게 조금은 막막했던 분들이 있다면 한 번쯤 도전해 보면 어떨지요. 한 달이 지나면 내가 실제로 ’손을 댄‘ 것과 아닌 것, 심지어는 있었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되는 것까지 그 결과를 투명하게 마주하게 될 테니까요.


그럼, 저의 한 달간의 ‘짐 싸기 파티‘ 프로젝트를 응원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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