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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옙히 May 25. 2021

[알바;썰] 출장뷔페의 늪

주말 일용직

몸을 쓰는 게 익숙해졌다.


상하차 아르바이트 이후 두 번째 아르바이트는 출장뷔페였다.

몸을 쓰는 아르바이트의 특징은 생각 없이 일을 할 수 있고, 시간이 빨리 간다는 것이다. 물론, 집에 와서 몰려오는 육체적 피로는 세금과도 같은 존재다. 돈을 벌기 위해 반드시 겪어야 할 고통이었지만, 별다른 기술이 없던 새내기 대학생에게 손쉬운 업무였다.


좋은 선배들 덕분에 기회를 얻었다. 09학번 선배들이 먼저 동대문의 한 출장뷔페에서 일을 하다가 학과 후배들을 소개해주는 것이 관행으로 남아 14학번인 나에게도 기회가 왔다. 매주 목요일쯤이면 남자들끼리 있는 시커먼 단체 채팅방에 "이번 주 OO성당, O명!"이라는 알림이 올라오면 선착순으로 답을 했고 그것이 아르바이트 스케줄이 됐다. 사실상 채팅방이 인력소였다.


주로 성당이나 교회를 중심으로 돌았는데, 장지동, 명동, 강남 일대와 구파발을 자주 갔었다. 교회냐 성당이냐에 따라 술을 마시냐 안 마시냐로도 갈렸고, 하루에 같은 장소에서 결혼식이 두 번 있으면 그 날은 돈을 아주 많이 버는 날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용달차와 탑차에서 물건들을 잔뜩 내리고, 강당 같은 공간에 있는 의자에 천을 씌워 연회장 분위기를 냈다. 익숙해지면 꽤 어려움을 느끼진 않았다. 하지만 힘든 부분도 있는데, 짚어보자면 몇 가지가 있다.


▲ 잠실의 한 여고에 있는 성당에서 했던 출장뷔페 모습.


1. 뷔페 거지

우리끼리 불렀던 말이다. 보통 출장뷔페는 결혼식에 초대받은 사람들을 위해 고용되는데, 실제로 신랑 신부의 초대를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매번 투명한 비닐봉지에 각종 음식들을 쓸어 담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랬고 굉장히 점잖고 잘 차려입은 사람이어도 아무렇지 않게 음식을 담아 예측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남을 음식인데 가져가면 어떠냐! 나도 돈을 냈다!"가 이들의 논리인데, 신랑 신부가 이미 지불한 금액 안에서 음식을 준비했기 때문에 이런 식이면 초대받은 다른 손님들은 식사를 할 수 없다. 그리고 잘 차려입어서 초대받아 온 손님 같지만, 어딘가를 통해 연회장에 난입한, 불청객인 가능성이 더 높다. 사실상 음식을 훔치러 온 사람이다.


2. 갓난아이 기저귀

나는 '맘충'이라는 단어를 굉장히 안 좋아한다. 하지만 노 키즈 존의 존재 가치는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5살부터 7살 정도 되는 아이들은 뛰어다니는 것을 상상 이상으로 좋아한다. 아이가 뛰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겠냐고 할 수 있는데, 뜨거운 음식이 곳곳에 넘치는 뷔페에서 아이가 뛰어다니면 안 좋은 사고가 많이 난다. 준비된 음식이 엎어질 수도 있고, 누군가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 아이가 뛰어다니지 않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를 대비하지 않지만, 뛰어다닌다면 열에 아홉은 부모들이 방치한 경우라 제지해달라고 해도 잘 통하지 않는다.

이를 뛰어넘는 부모는 기저귀를 테이블에서 가는 부모다. 물론 우리나라에 갓난아기를 위한 공간이 얼마냐 되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모두가 식사를 하는 공간에서 기저귀를 가는 것은 몰상식하다고 생각한다. 기저귀를 열었을 때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두가 알 것이다. 문제는 기저귀를 가는 것이 끝이 아니라, 사용한 기저귀를 그대로 올려놓고 간다. 뷔페는 특성상 자리가 비면 다시 치우고 그 자리에 다른 손님이 앉아서 음식을 먹는다. 분뇨가 묻은 기저귀가 올려진 자리에서 식사를 하고 싶을까?


3. 편식쟁이

편식은 주로 젊은 사람들에게 나타난다. 오히려 중장년층에서는 보기 어렵다. 샐러드류야 처음부터 손을 대지 않지만,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편식은 초밥이다. 소위 말해 '뽕을 뽑는' 식사를 하기 위해 잔뜩 음식을 배 속에 집어넣고, 배가 부름에도 최대한의 가성비를 내기 위해 비싸다고 여겨지는 회에 손을 댄다. 초밥을 잔뜩 접시에 담아 자리에 온 후, 밥은 그대로 버리고 회만 잔뜩 먹는다. 그 초밥을 만들기 위해 하루 종일 일했던 요리사들이 앞에 있는 것은 그들에게 상관없는 일이다.


4. 술쟁이

즐거운 날에 열리는 연회지만 항상 웃음소리만 들리지는 않는다. 종종 보이는데, 한 테이블에서 유독 술을 많이 먹는 경우 경계해야 했다. 말싸움이나 고성으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멱살 정도까지 잡는 경우도 허다했다. 체면 불하고 멱살을 잡을 경우 이미 이들은 술기운에 이성을 잃은 상태라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저 물리적으로 떼어내고 다른 손님들의 식사에 방해가 되지 않게 밖으로 모실 뿐이었다.


5. 험담

이건 일을 하면서 힘든 것은 아니었다기보다 조금 씁쓸한 부분이다. 신랑 신부가 식을 마치고 사진을 찍고서 손님들과 인사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온다. 모두가 신랑 신부를 축하해 줄 성스러운 자리겠지만, 신랑과 신부가 테이블을 돌며 인사를 하고 마치면 뒤를 돌아 그들을 욕하던 사람도 종종 보였다. 물론 각자의 사연이 있겠지만, 언젠가 내가 친하다고 생각하는 소중한 사람을 내 인생의 중요한 날에 초대했는데 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다면 마음이 아플 것 같다. 이런 마음이 혹시라도 든다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것 같다.


전역 이후, 사회에 적응하며 새롭게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까지 몇 달간 일을 더 했었다. 그때까지도 과 내에서 내리사랑으로 후배들을 끌어 모으던 곳이라 처음 보는 남자 후배들과 친해지는 계기가 된 곳이기도 했다. 할 줄 아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선배라는 이유로 시급도 후배들보다 많이 쳐주셨다. 조금 힘들었지만 식사는 뷔페에 나온 음식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과 모든 뒷정리를 마치면 현금으로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덕분에 당일 번 돈을 당일 선후배들과 뒤풀이를 하며 탕진하기도 했었던 새내기의 추억이 있다.


■ 출장뷔페

장점 : 빠른 급여 지급, 맛있는 식사, 경력 대우

단점 : 비 정기적 일정, 예측할 수 없는 노동량, 온몸에서 나는 음식물 냄새

급여 : 6,000원 (2014년) ~ 7,500원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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