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큰 어른들이 더할 때가 있다
"너무 오래 두면 반죽이 뭉쳐지지 않아"
취미로 배운 제빵학원에서 친해진 제빵사 오빠가 말해주었다. 반죽을 뭉치고 쪼개고 뭉치고 그렇게 한 덩어리의 빵을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빵을 만드는 내내 자꾸만 치솟는 빵값에 투덜거리던 순간들을 반성했다. 빵값은 충분히 받아야 하는 게 맞다. 오빠는 낑낑대면서도 끝까지 반죽을 놓지 않는 나를 보고 이런저런 제빵의 기본 기술들을 알려주었다. 정말 미안하게도 거의 다 기억나지 않았다. 그 모든 과정을 기억하는 건 내 오른쪽 어깨의 통증뿐이었다. 제빵사는 힘이 좋아야겠어. 나는 그렇게 우스갯소리로 우는 소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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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 알겠다. 이들(직원들)은 서로를 싫어한다. 나는 결코 뭉쳐지지 않을 두 덩어리의 반죽 사이에 와버린 것이다. 내가 입사한 A지점은 매출이 잘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입주사가 거의 들어서지 않은 새 건물이라도 그렇지 손님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외진 위치도 한몫했다. 시간이 필요했는지, 홍보가 필요했는지 그 둘을 애써도 열악했다. 본사는 고민했을 것이다. 돈은 들인 만큼 배신하지 말아야 하는데 배신을 하니까. 결국 회사는 오피스 상권에 있던 B지점과 담당자를 맞교환하기로 했다. 마침 B지점은 커피 맛이 다소 부족하다는 평이 있었다. 바리스타 대회 수상경력이 있는 A지점의 담당자와 평범한 직원에서 시작해 여러 지점을 거쳐본 B지점의 담당자. 회사는 이제 돈을 들인 만큼 들일 수 있으리라 믿었을 것이다.
당시 A지점의 담당자는 제안했다. 그럼 각자 두 명의 직원을 함께 데리고 옮기자고.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B지점에서 온 관리자 그리고 철이와 미애가 A지점에 왔다. 그리고 그들은 낙담했다. 세 사람이 보기엔 A지점은 체계 하나 없이 무질서로 버티는 곳이었다. 자유롭고 개성 강한 직원들은 그들 눈에 해야 할 것을 미리 하지 않는 무질서의 근본처럼 보였다. 더구나 오피스 상권에서 매출이 나쁘지 않았던 그들은 넓은 매장의 텅 빈 모습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당황한 건 A지점의 기존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말에 따르면 건너온 세 사람은 처음부터 너무 '이곳이 싫은 표정'이었다고 한다. 마치 모든 것을 고쳐내야 한다는 태도를 보이는 세 사람을 보면서 기존 직원들도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게다가 새로 온, 그러니까 A지점의 새 담당자는 첫 면담에 기선제압이라도 하듯이 직원들을 한 명 한 명 불러내 "나가세요"를 외쳤다고 한다. 개인적인 첫인사였다. 기존 직원들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럴 거면, 그렇게 모든 것을 싫어할 거면 왜 여기로 왔는가 하고.
체계화를 추구하는 자들과 융통성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이들은 너무나도 달랐다. 이러한 상황이 된 지 한 달이 다되어갔나. 내가 온 것이다. 나는 이들의 날것의 전쟁을 고스란히 체감해야만 했다. 이런 상황이라 면접 내내 배려를 언급했구나. 나도 당황스러웠다. 어느 쪽도 끼고 싶지 않았다.
한 번은 휴게시간에 밥을 먹고 들어왔는데 두 덩어리처럼 직원들이 떨어져 있었다. 일하는 포지션이 다른 것도 맞고, 매장이 넓어서 그럴 수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달랐다. 나는 눈치 없이 빨대만 입에 물었다. 철이가 말했다.
"저쪽 하고 놀지 말아요. 으이구, 일 못하는 사람들."
나는 멋쩍게 '저쪽'을 보았다. 나는 슬슬 일할 시간이네요 하면서 저쪽도 이쪽도 아닌 사무실로 도망갔다. 철이는 굉장히 신중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의외다라고 생각하면서. 돌이켜보면 내가 가장 먼저 눈치챈 불화는 철이와 현이었다. 철이는 키가 크고 덩치가 있는 남자 직원이었는데 효율과 합리성을 좋아했다. 현은 한국에서 오래 지낸 외국인 여자 직원이었는데 생활력이 강해 이런저런 생활지식을 많이 알려주었다. 두 사람은 책임감이 높은 직원들이었지만 일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방식은 많이 달랐다. 특히 의사소통에서 격돌이 가장 컸는데 아무래도 한국어 억양이 서툴고 말이 거칠었던 현은 말을 직설로 이야기하는 현이와 자주 부딪혔다. 두 사람은 서로의 작은 실수를 그저 눈에 보여 꼬집어주곤 하였는데 그것이 시비조로 들렸다. 더구나 둘은 일을 '잘' 그리고 '빨리' 끝내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도 비슷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생각을 고집스레 전하거나 말부터 툭 뱉어놓고 뒤늦게 자책하는 면모도 비슷했다. 내가 싫어하는 단점을 똑같이 지닌 사람을 보면 싫어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던 흔한 포스트의 글귀처럼 둘은 서로가 서로를 계속 할퀴었다.
"아, 됐어요. 그냥 제가 할게요."
실수가 잦은 현을 향해 담은 종종 그렇게 말했다. (현은 한 번씩 하필 눈에 보이는 실수를 하는 편이라 안타까웠다) 어쩌면 그 말은 부딪히지 않기 위한 노력이나 체념은 맞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 목소리 속에 애정은 없었다. 그들은 티 내지 않았다고 생각하겠지만 껴있던 나의 마음이 계속 불편했던 거 보면 티가 났다. 일을 하기 위해 합을 맞추려는 노력이 보였으나 역부족이었다.
벌써부터 숨이 막혔다. 누군가를 멸시하고 미워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나는 그래서 누군가를 쉽게 미워하는 이들을 경멸한다. 미움이나 화만큼 쉬운 게 어디 있는가. 그렇기에 감정을 다스리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어른이고, 우린 그러한 길을 추구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정말 괜찮아서 하는 말과 누군가에 대한 혐오가 담긴 문장은 그 어조부터 다르다. 지역별로, 나라별로 억양이나 톤이 다르다고 하듯이 저마다의 감정마다 다른 목소리를 품는다. 그걸 생생하게 목격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들과 있으면 어떠한 보이지 않는 적의를 느꼈다. 누가 누구를 특별히 더 싫어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은 일단 안 맞았다. 싫어하기 이전에 안 맞아서 싫어할 필요까지 없을 정도로 그냥 맞지 않았다. 다만 이들의 미움이 어느 정도일까 아직 새내기인 나는 알 수 없었다. 융화할 수 없을까? 다 같이 잘 지낼 수 없을까? 나는 조용히 관망했다.
친구들 말에 의하면 나는 미친 친화력의 소유자이자 굉장한 평화주의자였다. 그들의 융화는 내 능력 밖의 일이었지만 관리자도, 직원들도 아직은 이 사실을 몰랐다. 나를 그저 조용한 새내기쯤으로 여기지만 간과하고 있다. 애초에 나의 편애란 누군가를 더 사랑하는 것이지 한쪽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누군가를 미워하지는 못했다. 미워할 정도의 관심을 갖는 게 내게 너무 무의미했다. 어느 쪽에도 끼지 말자.
간간히 겹치는 시간마다 내게 넌지시 건네는 이들의 말들이 투덜거림으로 받아들여졌다. 양쪽 다 내게는 고작 이틀 본 남이었다. 젠장, 귀찮게 되었군. 이때까지 내 소감은 그거였다. 땅따먹기의 땅, 그게 내가 맡은 역할 같았다. 누구에게 먹힐 바에는 모두를 내 땅에 들여올 수는 없을까. 일단은 눈치 보지 말고 해맑게 다 공평하게 어울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