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인사철이다.
연차가 높지 않았을 때는 누가 집에 가신대, 누가 올라가신대라는 내용이 나와는 먼 이야기라 재밌는 가십으로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 연말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었던 우리들만의 도파민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연차가 쌓이고 임원들과의 업무적인 교류가 많아지면서, 더 이상 그들이 가십의 대상이 아니게 된 현재 시점에서, 특히나 나의 상사가 이번 인사발령 시 흔히 말하는 집에 가는 임원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평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내 보고가 마음에 안 들면 한숨을 쉬면 화를 참으시고
나도 잘 이해 못 한 내용을 보고하러 들어가면 "그렇게 일하면 안 돼"라고 그분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부드럽게 말해주셨던 모습이 떠오르면서 능력 있는 분이 떠난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회사라는 곳은 누구든 왔다가 언제든 떠나는 곳이다. 특히 요즘처럼 이직이 빈번한 사회에서는 이별이라는 것이 그리 낯선 이벤트는 아니라 누군가가 회사를 떠난다고 했을 때 슬프거나 아쉬워서 잘 울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번은 다르다.
내가 승진 못하고 만년 부장으로 근무할 때 뜬금없이 전화해서 타 사업장에 팀장자리 났는데 출퇴근 힘들겠지만 생각 있냐고 물어보는 전화를 주셨던 분이셨다. 물론 당시 내 의사는 5조 5억 퍼센트 하고 싶었지만 내 실력이 부족해 결국 성사되지는 못했던 사건이었다. 승진을 못해 한참 의기소침해하던 시절, 나를 다시 의욕을 갖고 내 일에 집중하게 만들어준 계기가 된 사건이었고, 내 회사 생활에 몇 안 되는 기분 좋은 기억이다. 더군다나 그분이 우리 사업장 임원으로 다시 돌아와 결국은 나를 팀장 승진을 시켜준 고마운 분이신데.. 이번에 떠나야 한다고 하니 나도 모르게 속상한 마음에 눈물이 났다.
언제였더라....
희망퇴직으로 친하게 지내던 사무운영원이 수차례 면담을 거쳐 결국은 회사를 떠나게 되었을 때, 같은 시기 아들 셋의 근속 20주년을 내가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했던 부장님 역시 수차례 면담을 거쳐 회사를 떠나게 되었을 때 친한 분이 떠난다는 것에 대한 슬픔과, 회사의 무서움을 느끼면서 울었던 것이 첫 번 째였다. 그땐 화장실에 숨어서 울었더랬다.
두 번째는 교류가 많지 않았지만 인심 좋고 항상 웃으시면서 우리를 이끌어 주셨던 상무님이 감사실에서 진행한 (내가 느끼기에는) 말도 안 되는 트집으로 시달리시다가 그 해 임원 인사 때 집에 가시게 되었을 때 억울함에 울었던 기억이 있다. 이임식이 끝나고 대강당 문에 도열해서 기다릴 때, 그분이 나가시면서 악수를 청했는데 다른 동료들이 옆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참지 못하고 서럽게 울었던 기억이다.
이번이 세 번째...
이번에는 소식을 들은 날 퇴근하는 차에서 그분과의 추억과 고마움을 상기하면서 엉엉 울었다. 능력 있는 분이신데... 좋은 분이신데.. 임원 오래 하시긴 하셨지만 아직 여전히 잘하실 수 있을 텐데...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작성하면서 카페서 훌쩍이고 있다. 청승맞게..
월요일에 출근을 하시려나..
남편에게 영양제 좋은 것 하나를 가져다 달라고 했다. 심근경색에 코피에 임플란트 7개를 하고 계신 건강을 무진장 챙겨야 하는 그분 께드릴 선물로 영양제를 드리려고 한다. 전에 유통기한 임박한 영양제를 드렸었는데 잘 챙겨드셨던 기억이 있어 이번엔 유통기한 넉넉하게 남은 정상제품으로 선물을 해야겠다. 선물을 드리면 또 눈물이 날 것 같다. 지금 미리 울어두면 월요일에 그분 앞에서는 눈물이 안 나려나...
생각이 많아지는 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