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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과의사 닥터오 Dec 10. 2021

과장님이 '저승사자'인 줄 알았어요.

회진, 관장, 꿈

회진이란..

입원하고 있는 환자를 확인하고 전날에 비해서 증상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현재 불편한 것은 없는지, 앞으로의 검사와 치료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 환자의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치료계획을 결정하는 자리입니다.


'회진'이라는 말은 미국의 유명한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하는데, 이 건물의 중앙 구조가 원형으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환자 회진을 하기 위해서는 둥글게 돌아야 해서 '라운딩(rounding)'이라는 단어가 회진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즈음도 "회진 돌다." "라운딩 돌다."라는 말이 병원 내에서는 쓰이고 있습니다.


의학드라마를 보면 흰가운을 입은 대학교수님이 회진을 돌 때면 그 주위로 레지던트, 인턴, 담당 간호사, 의과대학생까지 많은 사람들이 회진에 참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이 많고, 경력이 오래된 시니어(senior) 교수님일수록 따라다니는 흰 가운의 인력들이 많아지는데, 간혹 젊은 주니어(junior) 교수님들의 회진이 시니어 교수님들과 겹치게 된다면 안타깝게도 레지던트 주치의 없이 혼자 회진을 돌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여전히 '외과'는 힘든 '과'라는 인식이 많아서 서울의 유명한 대학병원(서울아산병원, 서울삼성병원, 서울대병원, 연세 세브란스병원 등등)을 제외하고는 지원율이 떨어지다 보니 외과 레지던트를 뽑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외과 레지던트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대학병원 주니어 교수님들은 외로이 회진 도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는데 꼭 주치의와 같이 회진을 돌고 싶은 경우 시니어 교수님들의 회진이 다 끝나는 시간에 맞춰 주치의와 상봉할 수 있지만 시니어 교수님의 회진이 길어지거나 훈화 말씀이 길어지는 날이면..

마치 전날 기분 좋은 꿈을 꾸고 부푼 기대감으로 복권을 긁다가 '꽝' 나온 것처럼 또다시 혼자 회진을 돌아야 합니다.


저는 오전에는 입원 치료받고 있는 모든 환자의 회진 돌지만 오후에는 수술받았던 환자나 회복이 더딘 환자, 집중치료가 필요한 환자 위주로 회진을 돕니다. 하루 동안 환자의 생체징후(vital sign)는 어땠는지, 수액양과 소변량(input/output)은 어땠는지, 배액관(JP, L-tube)은 어땠는지, 대변은 보았는지, 피검사, X-ray 등 검사는 어땠는지 여러 가지를 확인한 후 오전 회진을 시작합니다.


"수술했던 상처는 좀 어떠세요??

통증은 좋아졌나요??

식사양은 좀 늘었나요??

소변 색깔은 어때요??

방귀는 나왔나요??

대변은 보셨어요??

대변양은요?? 대변 횟수는 어때요??"


"이제 미음에서 죽으로 바꿔드릴께요.

폐 엑스레이가 안 좋으니깐 심호흡 많이 하시고 가래 잘 뱉어내셔야 합니다.

장에 가스가 많이 찼으니깐 운동 좀 많이 하셔야 해요.

이약은 구역감이 있으니깐 다른 약으로 바꿔드릴께요.

수술한 부위 좋아지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내일은 복부 CT 찍을 거예요."


이렇게 회진 돌면서 직접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얼마나 좋아졌는지, 불편한 점은 무엇인지를 파악한 다음에 치료 계획을 세우거나 변경하기도 합니다.


외과에서 하는 많은 수술 중에 1차 수술 후 얼마의 시간이 지난 다음 2차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최근 2차 수술을 받은 환자의 배액관(JP, 피주머니)이 기능을 잘 못한다고 하여 확인하기 위해서 오후 수술이 끝나고 환자를 보러 갔습니다.


병실로 가서 환자의 상처를 확인하고 내일 소독이 있는 날이니깐 내일 소독하면서 체크하기로 하고 외래 진료실로 내려왔습니다. 의자에 앉아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배액관 상태를 좀 더 자세히 확인하고 필요하면 배액관 자리를 단단히 봉합하려는 생각으로 병동으로 전화해서 환자를 외래로 내려달라고 했습니다.


외래 문을 열고 들어오는 환자를 보니 조금은 긴장된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배액관 들어간 자리랑 수술했던 상처 좀 볼께요.

이쪽으로 누워보세요"


"아.. 아..

과장님..

내일 본다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뭐가 안 좋은 건가요??"


"아니요.

그런 거 아니고, 어차피 내일 볼 거.

오늘 보고 뭔가 손봐야 하면 빨리하는 게 좋잖아요.

필요하면 배액관 들어간 자리 살짝 꼬맬수도 있는데 좀 확인해보고 결정할께요."


치료실 침대에 누워있던 환자가 어젯밤에 꾸었던 '꿈'얘기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까지 해주었습니다.


"과장님..

예전 1차 수술하고 가스가 잘 안 나와서 관장해주셨을 때 수술했던 상처가 진짜 아팠거든요.

근데, 그다음 날 운동하면서 보니깐 간호사 스테이션 옆에 또 관장 준비가 되어 있는 거예요.

설마 내것은 아니겠지 하면서 병실에서 과장님 회진 기다리고 있는데.

과장님이 걸어 들어오시는 거 보니깐.

순간 '저승사자' 가 걸어 들어오는지 알았어요."


"근데, 또다시 관장해야 한다고 하니깐..

아.. 그 준비되어있던 관장이 내 거였구나 했어요."


"아이고..

그때는 관장이 좀 필요한 시기였는데, 수술한 지 얼마 안돼서 아프실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근데..

제가 어제 이상한 '꿈' 을 꿨거든요.

조카랑 딸아이가 나무에 올라갔는데.

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무에서 조카가 떨어지는 거예요.

그 조카는 제가 얼른 잡았는데, 딸아이는 못 잡았어요."


"그렇게 잠이 깨서 아침에 딸아이에게 전화를 했거든요.

딸이 시험 보는 날이어서 '오늘 좋은 일이 있을 거야'라고 얘기해줬어요.

다행히 시험을 잘 보았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 꿈이 딸아이가 아니라 저한테 해당되는 거 같네요."


"이거 조금 따끔하시면 돼요.

금방 끝나요.

너무 걱정 마세요."


치료가 끝나고 외래 문을 열고 나가려던 환자가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과장님이 오후에 회진 오시면 불안해요.

오전 회진 말고 오후에 2번, 3번 이렇게 오시면

내가 뭔가 문제가 있나?

수술한 부위가 이상이 있나?

이런 걱정을 하게 돼요."


외과 수술은 수술이 잘되었다면 그 이후부터는 환자 스스로 병을 이겨내고 치유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장이 터지거나 암이 있었다면 그런 병변들은 외과의사가 해결해야 하지만 살이 차고 새살이 돋고 열심히 운동하는 것은 환자의 기본 체력과 의지가 많은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때 외과의사는 환자가 건강하게 합병증 없이 퇴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환자가 느꼈던 불안감과 걱정..

그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내일 치료하기로 한 것을 오늘 갑자기 한다면..

환자 입장에서도 내 몸에 문제가 생긴 것인지, 치료가 잘못되고 있는 것인지, 오늘 해야 할 정도로 위급한 것인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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