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석증, 가족, 며느리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아주 큰 결심입니다.
작은 '혹'을 제거하는 것부터 '암' 수술하는 것까지..
수술의 범위와 수술 시간, 수술의 위험성까지 차이가 있겠지만..
수술받는 환자 입장에서는 어떤 수술이든 "금방 끝나는 작은 수술이니까 별거 아니야"라고 할 수 없습니다.
병원에서 환자를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때론 가슴 아픈 이야기와 다양한 사연 때문에 울컥하는 때도 있고 담당 의사로서 환자의 병력, 수술했던 이력, 현재 몸 상태 등 여러 가지를 확인하다 보면 가끔은 집요하게 물어볼 때도 있습니다.
며칠 전 할머니 환자분이 외래로 오셨습니다.
2달 전쯤인가 복통으로 저희 병원 응급실로 오셔서 복부 CT, 피검사를 하고 담석증, 담낭염이 확인되었는데도 입원 치료 안 받으시고 그냥 약만 가지고 퇴원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만약 그 염증이 진행이 되었다면 아마 더 일찍 병원을 오셨겠지만 다행히도 그 이후로 2달간은 괜찮으셨던 모양입니다. 근데, 요 며칠 소화가 안되고 가끔씩 명치가 불편해서 다시 병원을 찾으셨는데.
"할머니.
안녕하세요.
2달 전에 응급실 오신 적이 있네요.
그때 복부 CT 보니깐 쓸개에 돌이 아주 많아요.
피검사에서도 염증수치가 좀 올가가있었고요.
그동안 괜찮으셨어요??"
"약 먹고 괜찮았는데, 며칠 전부터 소화가 안되고 명치랑 오른쪽 갈비뼈 아래가 가끔씩 아파."
"어.. 근데..
검사한거보니깐 복벽에 탈장이 크게 있어요.
예전에 배 수술한 적 있으세요??"
"오래전에 수술한 적 있어.
이거 뱃가죽에 이렇게 나오는 것은 오래됐어.
예전 수술할 때 잘못해서 그래.
망할 놈의 병원."
"할머니.
배 상처랑 탈장 좀 확인해볼 테니깐.
여기 이쪽으로 누워보세요.
수술을 두 번 하셨네.
흉터가 위에도 있고 아래도 있어요.
어떤 수술하셨어요??"
"뭔 수술했는지 나도 몰라.
하도 오래돼서 기억도 안 나고.
암튼 2번 한건 맞아."
"할머니.
쓸개에 돌도 많고, 통증이랑 소화불량 있어서 쓸개 제거하는 수술은 해야 하는데요.
배에 튀어나오는 거 있죠??
탈장인데 그것도 같이 수술해야해요."
"소화 안 되는 것만 고쳐주면 안 되나??
늙은이가 수술을 한꺼번에 같이 어떻게 해.
뱃가죽 이렇게 된 건 아프지도 않고 오래돼서 그냥 살다가 죽으면 그만인데.
뭘 먹을 수가 있어야지."
"예전 수술했던 자리에 탈장 생긴 것은 수술이 어렵지 않아요.
쓸개 수술할 때 같이 하면 돼요.
근데 할머니 연세가 많아서 다른 젊은 보호자와 상의해야 하는데요.
젊은 보호자는 안 오셨어요??
수술 설명도 해야 하고 이것저것 설명할게 많아요."
70세가 넘으신 환자분이셨는데, 웬일인지 아들이나 딸이 같이 오지 않았고 할아버지도 없이 혼자 방문하신 것입니다.
"보호자 없어.
나 혼자야.
할아버지는 오래전에 갔고 집에는 나 혼자야."
"할머니.
그래도 다른 젊은신 보호자 있지 않으세요??
아들, 딸들은 다른 지역에 사시나 봐요??
다음에 올 때 같이 오셔야해요.
그래야 수술 설명하고 치료도 어떻게 할지 말씀드리지."
잠시 생각하시던 할머니는 천천히..
"딸은 없어.
아들 하나 있던 거 얼마 전에 죽었어.
지금은 며느리 하나뿐이야.
그놈도 멀리 살고 있어서 아프다는 얘기도 안 했어.
걱정할까봐.."
저는 순간 어떤 얘기를 해야할지??..
혹시나 건넨 위로의 말이 할머니의 아픈 기억을 다시금 떠오르게 할까봐.
너무나 조심스러웠습니다.
할머니는 참 고민이 많으신 얼굴이셨습니다.
하나뿐인 아들을 가슴에 묻어두고 이제 남은 건 며느리 한 명인데, 행여나 짐이 될까봐 얘기를 못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자식보다 오래 살아서 뭐하냐며 조용히 살다 가야 한다고 자책하시는 할머니에게 수술받으면 충분히 좋아지시니깐 며느리에게 얘기하고 같이 외래 오시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환자 중에 비슷한 연세의 할머니 환자분이 있습니다. 3년 전에 대장천공으로 장루 만드는 수술과 복원술까지 큰 수술도 잘 이겨내신 분이신데, 올해 봄에 할아버지가 폐렴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이후에 우울증 때문에 식사도 못하시고 몸상태가 안 좋아져서 입원 치료를 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하셨는데, 외래에서 진료를 하다 보면 가끔씩 놀랄 때가 있습니다.
"며칠 전에 요양병원에서 퇴원했어요.
내가 집에서 있다가 아프고, 체력 떨어지면 자식들한테 얘기해서 병원에 입원시켜 달라고 해요.
우울증 약도 잘 챙겨 먹고 정신과 치료도 잘 다니고.
자식들도 잘 몰라요.
내가 어디가 아프고, 얼마나 아픈지.
아프면 아프다고 해야 해."
맞습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해야 합니다..
친자식이 아니여서..
괜한 걱정만 할까봐..
미안함에 고민하지 마세요.
그래도 가족이니깐 얘기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