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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과의사 닥터오 Dec 14. 2021

30분의 상담.. 머리에서 스팀이 올라올 때쯤..

듣기, 공감, 존중

예전에는 그럴 때가 있었습니다.

아파서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하자고 하는 검사, 수술, 치료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해야 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병이 나빠져서 죽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또한 의료보험 체계가 만들어지기 전인 아버지, 어머니 세대 혹은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에는 농담 섞인 과장된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소'나 '집'을 팔아서 수술비를 만들어야 했을 정도로 비싼 치료비 때문에 돈 없어서 수술도 못 받는다 라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시대는 지났죠.

국가에서 보장해주는 국민의료보험과 개인적으로 다달이 비용을 지불하면서 보장받는 개인의료보험이 잘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병원에서 치료받는 것이 예전보다는 부담이 적어졌고 누구나 손쉽게 병원을 찾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병원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지고, 그 문턱이 낮아지면서 누구나 편하게 의사를 만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는 구시대적인 모습들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제는 '일방적인' '무조건' '내가 전문가니깐' '내 생각이 맞아.' '갑을' 이런 말들을 얘기하는 순간 매서운 눈초리와 질타가 쏟아지는 세상입니다. 어느분야든, 어느 직종이든 '상생' '협업' '이해' '공감' '배려' 가 필요하고 이런 생각과 가치관이 갖춰져야 함께 성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잘 들어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고, 그것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느끼게 해 준 환자가 있었습니다.


교통사고로 저희 병원 신경외과에 입원 중이던 환자였는데 사고 후 검사한 복부 CT에서 배안에 고인 ‘피’ 때문에 진료를 봤던 환자였습니다.


근데, 뭔가 차가운 분위기의 이환자는 궁금한 점이 아주 많았던 분이셨습니다. 의사 입장에서 보면 모두 비슷한 질문이었고 인터넷을 찾아보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들었던 잘못된 정보까지 답변해주다 보니 어느덧 30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아마..

불안하셨을 겁니다.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몸도 마음도 충격이 크셨을텐데.

배속의 피가 언제 멎을지, 언제 흡수가 될지, 언제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을지.

또다시 피가 나는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셨을 겁니다.

그런 마음이 크셨겠죠..


저도 사람인지라..

30분 동안의 상담.

비슷한 내용의 질문과 답변.

저를 경계하는 듯한 분위기와 차갑고 뾰족한 말투.


저도 한계치에 다달아 머리에서 스팀이 올라올 때쯤 어느 정도 저의 설명이 이해가 되고 안정이 되었던것인지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상담이 끝나고 외래 문을 열고 나가시면서

"선생님.

제가 만났던 의사 중에서 가장 친절하게 환자를 대해 주시는 것 같아요"


이 순간에 내가 가장 친절하다니??

날 들었다 놨다 하시는건가??

그럼 다른 의사들은 어땠다는건가??

나도 30분이 아니라, 몇 분만 더 상담했으면 폭발할 수 도 있었을 텐데..

단 몇 분이라는 시간이 친절한 의사, 불친절한 의사를 나누는 기준이 되었다는 것이 충격이었습니다.


길을 걷다 보면 우리 주변엔 많은 병원들이 있고 그 속엔 여러 의사들이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많은 병원을 환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찾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첫인상부터 편한 환자가 있는가 하면, 대화하면 할수록 마치 도돌이표처럼 다람쥐 쳇바퀴 돌듯 상담하기 힘든 환자들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의사가 환자를 가려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안되죠..


요즘 읽고 있는 책 중에 "기버(THE GO GIVER)"라는 책이 있습니다. 성공하는 세일즈를 위한 여러 가지 법칙들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책인데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삶이 풍성해지는지. 어떻게 해야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내용들이 있어 옮겨보려 합니다.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의 진정한 비결은 말을 잘하는 능력이 아니라 상대방과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다. 상대방의 처지를 충분히 이해한 후 입을 여는 것이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인 것이다.


자신의 관점만 고집하면서 상대방의 걱정은 별 일 아닌 것이라고 설득하려 해서는 안된다. 항상 상대방의 관점과 걱정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상대방의 얘기를 제대로 들어야 한다. 자신의 얘기를 열심히 들어주는 당신의 태도를 통해 상대방은 당신이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된다. 그런 인식이 바로 바람직한 인간관계의 초석이 되는 것이다.


잘 들어주는 것이 상대방을 존중해주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상대방을 공감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사연' 이 있습니다.

아프고 병든 ‘몸’에 대한 사연

아프고 지친 ‘마음’에 대한 사연


아픈 부위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라면 수술로 돌여내거나 잘라버리면 되지만 마음이 아픈 경우는 쉽지 않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걱정이 되고 확신이 안 들고 의심이 생기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문제인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그 사람의 기질인지?? 자라고 성장해온 집안의 분위기인지?? 아니면 특정한 사건 사고로 마음을 다친 것인지?? 참 알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있습니다.

'난 여기가 아파요. 여기가 문제예요."

이렇게 콕 찝어서 말을 하지 못할 뿐이지.

그 환자들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때론 5분, 10분, 20분, 30분 지루하게 목적지를 못 찾고 뱅뱅 돌면서 대화가 길어질 수 있지만 결국은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계속 듣다보면 문제의 실마리가 보이기도 하고 환자도 말하다보면 마음속 응어리든, 걱정거리든 해소되는 것이 있습니다.


'공감' 이란..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그들의 눈을 바라보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어느덧 그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소 시간이 걸릴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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