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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Mar 08. 2021

욕먹어도 합니다. 정시 퇴근


내가 회사를 선택할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단 하나, 야근의 유무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들어간 첫 회사에서부터 한국 전형적인 수직적 분위기의 직장 생활을 경험했다. 매운맛이 단계별로 1에서 5까지 있다면 그곳은 5에 해당되는 회사였다. 행사 기획 회사가 다 그렇긴 하지만 매일매일 반복되는 야근과 주말 출근이 얼마나 삶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는지 몸소 체험했다. 한 달에 딱 하루만 쉬고 일했던 적도 있었다. 그 회사에서 1년 가까이 버틴 내가 대견스러울 지경이다. 업무량이 워낙 많았기에 빠른 일 처리 속도와 멀티태스킹은 기본 옵션으로 탑재하고 가야 했으며 그렇게 내 업무능력은 반강제적으로 업그레이드 되어갔다. 그리고 나의 몸과 마음은 빠르게 고갈되었다.


 그래서인지 직장 생활에서 야근이라고 하면 정말 몸서리 쳐지게 싫다. 야근을 좋아하는 사람이야 당연히 없겠지만 정시 퇴근을 당연시하게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가 언젠가는 반드시 형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 스스로 선택한 직종인 행사 기획과 광고기획은 야근이 그림자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직업군이다.


 예전에 한 광고기획 회사에서 내가 업로드해놓은 이력서를 보고 면접 제의가 온 적이 있었다. 면접 당시 야근이 거의 없다는 말에 혹해 그 회사에 다니게 되었다. 그렇게 들어간 회사에서 나는 매일 내 업무를 완벽히 끝내놓은 후에 정시 퇴근을 했다. 정시 퇴근을 한다고 해서 눈치 보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사회생활에서 눈치란 필수 요소 중 하나이다. 나는 단지 나를 위해 선택적 눈치를 볼 뿐이다. 눈치가 과해지면 직장 동료, 부하직원이 아니라 만만하고 부려먹기 좋은 ‘부하’가 될 뿐이다.



면접 시 야근 없음을 자랑으로 내세우던 우리 팀 팀장님께서 정시 퇴근하는 나에게 약간의 불만을 품어왔고 그 불만이 커져 1:1 면담을 하게 되었다. 대화의 주 내용은 이렇다. 일이 다 끝났으면 예의상으로라도 도와드릴 거 없냐고 한 번쯤 물어보고 퇴근해야 하는 것이 사회생활이다. 퇴근시간에 맞춰 바로 나가는 건 좋게 보이진 않는다며 필요하다면 주말 출근도 불사하는 열정 가득한 사람과 일하길 원한다고 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동의하기도 어려웠다. 퇴근시간에 퇴근을 해야지 원하지도 않는 일을 애써 내 입으로 더 달라고 말하며 예의를 가장한 강요와 억압으로 어째서 회사에 묶여 있어야 하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업무시간이라면 모를까 퇴근시간에 다른 사람의 일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나는 그저 내 몫만큼의 일을 하고 그에 대한 임금을 받을 뿐이다. 이해관계가 똘똘 뭉쳐진 것이 회사라고 하는데 말단 사원의 이해(利害)는 무시되어도 좋은 것인가? 그리고 나의 열정을 왜 주말 출근과 야근으로 증명 해야 하는 건지 누가 나에게 설명 좀 해줬으면 좋겠다. 정말이지 이해해 보려 노력이라도 해보게. ‘그것이 사회생활이야’라고 포장하는 낡은 이데올로기를 이제 그만 버릴 때도 되지 않았는가.



아직도 많은 직장 상사들이 요즘 것들은 선배가 안 가는데 자기들은 할 일이 끝나면 휙 가버린다며 라떼 한 잔씩 들어 올린다. 그러나 세상은 변화되어가기 마련이며 낡은 사고방식에 얽매여 있다면 반드시 도태되기 마련이다.


예전 부모님 세대에서 직장의 개념은 한 곳에서 뼈를 묻을 각오로 다니는 평생의 개념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에게, 아니 적어도 나에게 직장이란 지금의 회사도, 전에 다녔던 회사도 인생이란 하나의 직선 위에 단순히 거쳐가는 작은 점이자 일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 애쓸 필요가 없으며, 상사의 말도 안 되는 업무 지시와 불편한 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 참을 수 없을 때는 그만두면 그만이다.


직장 내에서 사회 초년생 퇴사자들을 실패자 혹은 포기한 사람 취급을 하지만 그 사람들은 단지 자신의 인생과 본인을 위해 용기 있는 선택을 한 것뿐이다. 그건 포기와 다르다. 미안하지만 당신들의 불합리한 요구에 우리가 따라야 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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