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상
20대들에게 꼰대라는 단어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꼰대라고 칭하는 기준에 대한 부분은 저마다 다를 것이나 내가 생각한 꼰대의 기준은 나이와 사회적 지위가 곧 권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 속에는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상대에 대한 배려, 예의, 존중이 없다.
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유연 근무제를 시행했었다. 다만 그 기준이 명확하지가 않아서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다. 어느 날은 10시 반까지 자유롭게 출근하라고 했다가, 어느 날은 또 10시까지 오라고 하고, 또 어떤 날은 9시 30분까지 출근하라고 했다. 회사에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 주지 않았기에 직원들도 출퇴근 시간에 대해서 많이 혼란스러워했다. 어느 날 이사님이 출근 시간 관련해서 또다시 변경된 공지를 전달했다. 나의 직속 상사였던 대리님이 참다못해 회사에서 직원들이 혼란을 느끼지 않을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 줄 것을 요청했고 2분가량의 짧은 대화가 이어졌다. 대화를 끝낸 건 상사로서 보여줘야 하는 합리적인 기준이 아니라 흥분한 이사님의 목소리였다.
“시X, 마음에 들던 들지 않던 그냥 위에서 까라면 까는 거야, 그게 회사야!“ 나한테 한 말은 아니었지만 옆에 앉아있던 내 심장이 빨리 뛸 정도로 긴장이 되었던 것 같다. 인터넷에서만 보던 이야기가 내 앞에서 펼쳐질 줄이야..논리와 합의를 이끌어낼 필요가 없는 가장 비겁하고도 내뱉기 쉬운 말 앞에 대리님은 입을 다무셨다.
생각해보면 초, 중, 고등학교 때 생각한 어른의 상은 현명하고 논리적이며 예의가 자연스럽게 묻어져 나오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학창 시절에는 또래 속에 묻혀지내기 때문에 우리가 보는 어른이라고는 부모님, 친척, 학교 선생님, 학원 선생님이 전부였다. 어른이란 우리보다 최소 10년 이상은 더 살아봤기 때문에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왔다.
회사에 들어가고 보니 정말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마주하며 일을 하게 되었고 내가 알던 어른의 상에서 많이 동떨어져있는 사람들과도 매일 마주했다. 그리고 뒤따라온 감정은 혼란스러움이었다. 단순히 경험과 나이가 나보다 많다고 해서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건지, 조직 내에서는 부당함이라는 것을 느껴도 직급이 높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개를 숙이고만 있어야 하는 건지, 도덕적 가치란 아랫사람만 품고 행해야 하는 사회적 규범인 것인지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누군가를 꼰대라는 단어로 지칭할 때는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지 못하고 너무나 쉽게 무시당한 우리의 마음이 이리저리 뭉쳐져 두 글자의 단어로 세상에 말로써 던져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인지 꼰대라는 단어의 뜻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정말 생각 없이 “어쩌라고 그래 나 꼰대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어른'들이 새삼 깃털처럼 가벼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